[광장 : TK리부트] ⑦ 내란을 넘어 대전환으로 : 어떤 민주공화국인가

이상적인 나라, 민주주의, 민주공화국으로 가는 길
사회공공성과 안전망을 강화해 실질적인 다양성 존중
나와 다른 시민을 인정하는 민주 시민의 사회로
더 많은 비빌 언덕과 피난처, 커뮤니티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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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민>은 12.3 내란 이후 매주 대구와 경북 곳곳의 광장에 선 시민 41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이 바라보는 내란의 원인과 그로 인해 악화된 문제는 무엇이며, 대구·경북이 그것에 더 기여한 것이 있는지를 물었다. 뿐만 아니라 12.3 내란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완수해야 할 과제에 대해서도 물었다. 광장의 힘으로 우리는 대구·경북을 새롭게 태어나게 할 수 있을지 엿보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TK리부트는 가능할 것인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한 시도인 셈이다.

[광장 : TK리부트] ① 박정희를 청산해야, ‘윤석열 내란’도 청산할 수 있다
[광장 : TK리부트] ② ‘윤석열’과 ‘윤석열들’을 만든 사회
[광장 : TK리부트] ③ 내란으로 핀 혐오의 꽃
[광장 : TK리부트] ④ 내란 청산이 제1과제
[광장 : TK리부트] ⑤ 내란이 들춘 언론의 민낯
[광장 : TK리부트] ⑥ 양당체제가 키운 내란의 씨앗

조기 대선으로 지난해 12월 3일 이후 이어져 온 내란은 일단락됐지만,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이 우리 앞을 기다리고 있다. 무도한 권력자는 교체됐지만, 무도한 권력자의 더 무도한 행위가 이어지기까지 상호 협조한 ‘내란 생태계’를 바꿔내는 일이다. ‘윤석열들’을 제거하는 사회의 대전환 없이는 언제든 같은 일은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혁 의제는 너무 많다. 다종다양한 개혁의 요구를 광장 시민들을 통해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방향이다.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 “어떤 민주주의를 만들 것인가?”, “어떤 민주공화국을 만들 것인가?”와 같은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방향 말이다. 광장의 시민들이 그리는 나라, 민주주의, 민주공화국은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은 하나의 모습으로 수렴된다. 그것은 혐오와 차별, 배제가 없어서,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적대하지 않으며, 민주 시민으로서 공론의 장에서 토론과 대화로 합의점을 찾아가는 평범하지만 이상적인 나라·민주주의·민주공화국이다.

▲광장의 시민들이 그리는 나라, 민주주의, 민주공화국은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은 하나의 모습으로 수렴된다. 그것은 혐오와 차별, 배제가 없어서,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적대하지 않으며, 민주 시민으로서 공론의 장에서 토론과 대화로 합의점을 찾아가는 평범하지만 이상적인 나라·민주주의·민주공화국이다. (사진=ChatGPT)

이상적인 나라, 민주주의, 민주공화국으로 가는 길
사회공공성과 안전망을 강화해 실질적인 다양성 존중
나와 다른 시민을 인정하는 민주 시민의 사회로

그 출발은 당연하게도 내란 세력에 대한 단호한 처벌과 단죄 그리고 권력 구조의 변화이지만, 사회공공성, 안전망을 강화해서 다양성이 실질적으로 존중받고, 무엇보다 나와 다른 시민을 동료로 인정하는 민주 시민이 바로 서는 사회적 대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공공성, 안전망 강화라고 해서 단순히 복지의 확대를 말하는 건 아니다. 광장에서 <뉴스민>이 만난 시민들은 여성과 이주민, 청년,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를 여럿 이야기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노동의 권리와 차별의 금지가 중요한 의제로 제시됐다.

이은진(33, 대구) 씨는 “뉴스나 정치에 관심을 가질래도 당장 내 생활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거다. 아침 8시에 집을 나가서 밤 9시에 집에 들어오면 뉴스 볼 여유, 정치에 관심 가질 여유가 전혀 없다. 그래서 주 4일제, 기왕이면 주 30시간 근무. 이런 식으로 여유가 생기면 집에서 저녁 챙겨 먹고, 뉴스도 보고, 책도 보면서 공동체를 위한 시간도 낼 수 있을 것”이라며 노동시간을 줄여야 민주 시민이 바로 설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 씨는 “노동 시간을 줄여 크고 작게 자신과 비슷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만나 교류하면서 정신적으로 안정이 되도록 공동체를 만들어 갔으면 한다”며 “예전에 들은건데, 태극기 부대에 나가는 할아버지들, 극우집회에 나서는 아저씨들이 거기에 나가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소속감이 생겨서 사회활동을 한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나간다고 하더라. 이런 부분이 해결되어야 태극기들고 소리 지르는 분들이 유의미하게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엄해웅(30, 대구) 씨도 노동시간을 중요한 과제로 짚었다. 엄 씨는 “노동시간이 줄어서 소득도 비례해서 줄어드는 게 아니라 소득도 최소한 유지할 수 있도록 하면 결국엔 다른 걸 할 시간이 많아진다”며 “노동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아지면, 당연히 정치, 사회 문제에 간섭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보탰다.

이건희(25, 대구) 씨는 “노동 있는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그는 “최장집 선생이 말한 대목인데, ‘민주화 이후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 부분에 있어 우리 민주주의가 노동을 경시하고 있다’는 이야길 했다. 확실히 우리가 여태까지 성장이나 혁신에 대한 이야긴 많이 했다. 노동자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는 측면이 크다”며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가 중요하고, 특히 제조업이 강하다면 그만큼 노동자를 신경 써야 되는데 산업과 기업은 걱정하는데 노동자는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노조를 탄압하고 무시한다. 이런 걸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홍성탁(27, 대구) 씨는 “성소수자들, 장애인, 그리고 특수고용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던 사람들, 그리고 정치적 기본권 자체를 박탈당했던 공공부문의 노동자 등등 수많은 피압박 대중들이 우리 주변에 살아가고 있다”며 “그래서 노란봉투법이 필요하고, 차별금지법이 필요하고, 생활동반자법이 필요한 것”이라고 했고, 팡자(가명, 20대, 대구) 씨도 “법적 안전망이 생기면 좋겠다. 차별금지법, 노조법 2, 3조 개정이 있고, 생활동반자법이라든가, 각자의 의제가 있으니까 그중에서 특히 우리에게 시급했던 것, 광장에서 많이 호명되고 있는 것들부터 기본적으로 마련이 됐으면 좋겠다”고 보탰다.

▲대구시민들이 대구 동성로 구한일극장 앞에 모여 윤석열 퇴진 시국대회를 열고 있다.

김기훈(40대, 대구) 씨는 “차별금지법이 민주주의 완성은 아니다.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읽었던 책 중에 ‘벨 훅스’라는 사람의 책이 있는데 미국 얘기다. 미국에 차별금지법이 있지만, 미국을 차별 없는 나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공공연하게 차별금지법을 우회해서 법 기술을 써서 차별이 그냥 일어난다”며 “결국 문화를 만드는 일인거다. 차별금지법을 만들어 가면서 우리는 하나의 문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혜인(32, 대구) 씨는 “나와 다른 사람들, 예를 들면 성소수자라든지 아니면은 서울에서는 장애인 단체에서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달라고 시위를 하는 일도 있다”며 “그런 것도 자기 주장을 하는데 있어서 ‘왜 저러지?’ 이렇게 보지 않고, 우선 좀 들어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호(가명, 대구) 씨도 “정치 성향을 막론하고 생각해야 하는 주제”라며 “우리 사회가 숨기려고 하고, 호명하지 않았던 존재를 사회에서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게 할 장치들이 필요하다. 성적 지향, 정체성, 국적, 나이, 노동, 종교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도록 명시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더 많은 비빌 언덕과 피난처, 커뮤니티를 위해

▲뉴스민 TK리부트 인터뷰에 응해준 대구경북 광장 시민들.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공공성과 안전망이 만들어내는 힘은 시민들에게 ‘비빌 언덕’, ‘피난처’, ‘커뮤니티’가 되어 각자도생 현실을 넘어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힘으로 발전한다. 이것이 정치적 효능감과 일상의 민주주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돌봄을 통해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실질적인 에너지라는 점을 시민들은 강조했다.

김기훈 씨는 “우리에게 더 많은 비빌 언덕과 피난처가 있어야 된다. 공생과 공락을 고민할 수 있는 그런 공동체들이다. 광장에서 우리는 신나고 즐거운 일을 많이 경험했다. 나도 비건 간식을 나누었는데, 뻥을 좀 치자면, 간식을 나눠주는데 간식이 줄지 않았다. 내가 간식을 나눠주니 자기도 주머니에서 꺼매 무언가를 계속 넣어주셨다. 그런식으로 연대라는 걸 알게 됐다. 광장이 딱 그치고 난 후엔 허전함도 있고, 우리가 일상에서 잘 버티고 있는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작은 광장을 만드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며 연대의 힘을 이야기 했고,

윤수빈(31, 대구) 씨는 “시국대회에 모여 우린 시민의 힘을 봤다. 윤석열을 몰아낸 건 헌법재판소도, 국회의원도 아닌 시민이다. 시국대회에 모인 시민들, 이걸 이끌어 간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건 12월 3일 계엄 선포로 갑자기 모일 수 있었던 게 아니다. 평소 스스로의 과제를 지니고, 부당한 것에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이 나선 것이다. 이 거대한 부정의 앞에 우리가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고 생각해 모일 수 있었다. 우린 이 다음에도 계속 내 의제를 갖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관심 갖고 투쟁하거나 최대한의 목소리를 내는 행동을 해나가야 한다”며 시민의 힘을 이야기했으며,

소결(가명, 29, 대구) 씨는 “커뮤니티가 생겨야 한다. 정치에 대한 이야길 너무 할 수 없으니까 각자 모여서 ‘사회가 더 좋게 돌아가려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는 논의의 장이 없다. 공론까진 아니더라도, 의논을 할 장이 없다. 그냥 이렇게 사사롭게 의논할 장도 없다는거다. 그런 커뮤니티가 있어야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돼’가 아니라 ‘우리 좀 같이 잘 먹고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를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뉴스민 TK리부트 취재팀
이상원, 박중엽, 김보현, 장은미 기자 / 여종찬 PD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