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내란의 교훈과 뉴스민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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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종식에 몰두하느라 그냥 지나쳤지만, 지난 5월 1일은 뉴스민 창간 1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2012년 1월부터 뉴스민 제호 아래 보도는 시작했지만, 공식적인 창간일을 5월 1일 노동절로 정한 건 뉴스민이 어디에 가치를 두는 언론이 될 것인가를 선언하는 의미를 가졌다. 몫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마당이 되자. 광장이 되자. 해방구가 되자. 노동절에 창간하는 언론사는 모름지기 그러해야 한다고 믿었다.

돌아보면 그것은 욕심이었다. 13년 동안 뉴스민은 몫 없는 사람들의 이야길 풀어내는 마당, 광장, 해방구가 되기보다 그들에게 마당을 빚지고, 광장에 기대면서, 해방구는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 늘 휘청이며, 간신히 지금에 이르렀다. 창간 10주년을 갓 넘어선 2023년엔 새로운 10년을 이야기하기는커녕 폐간을 걱정하며, 어려움을 읍소했다. 다행히 많은 분들의 호응에 힘입어 지금까지 뉴스민이 간판을 지키고 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갑자기 뉴스민의 시작과 오늘을 짧게나마 톺아보는 이유는 윤석열 내란과 조기 대선을 지나오면서 광장에서 만난 시민들에게서 들은 언론에 대한 비관적 전망, 비판적 평가 때문이다. ‘광장 : TK리부트’ 기획 보도를 준비하면서 뉴스민은 대구·경북 광장에서 응원봉을 든 시민 41명을 만났고, 다양한 이야길 나눴다.

개인적으로 놀란 건, 이야기 과정에서 그들 중 많은 수가 자주 ‘언론’을 입에 올렸다는 점이다. 언론은 내란의 원인으로 지목됐고. 내란 이후 더 심각해질 사회 문제로도 꼽혔으며, 내란이 반복되지 않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변화되어야 할 과제로도 선정됐다. 심지어 검찰 개혁 보다 언론 개혁을 과제로 꼽은 인원이 3배에 가깝게 많았다.

특히 광장 시민들은 언론이 내란 이후 윤석열 탄핵에 이르기까지 123일 동안 내란의 진상을 드러내는데 복무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가짜뉴스’나 써대고, ‘편향보도’, ‘받아쓰기 보도’ 뿐 아니라, 의도적인 왜곡과 기계적 중립, 침묵 또는 은폐에 이르기까지 온갖 병폐를 드러내보이며, 저널리즘 가치를 쓰레기통에 쳐박아 버렸고, 그 탓에 윤석열에게 내란 이후 123일이나 이어지며 마치 내란이 민주주의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대화의 파트너처럼 여겨지게 됐다는 거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2014년 4월 16일 인천을 떠나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이 여러 섬이 엇갈리는 전라남도 진도군 앞바다에서 침몰했을 때, 더 이상 숨길 것 없이 언론의 비루한 민낯이 드러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땐 상업성과 정파성이 결합해 참사마저 돈벌이의 수단이자 정치적 정쟁의 소재로 삼는 저열함을 보였다면, 이번엔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순간에도 상업성과 정파성이 더해진 비겁함으로 기본적인 역할마저 방기하는 모습을 드러내 보인 셈이다.

다시는 민주주의가 위협받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시민들은 사회대전환을 요구했고, 언론도 대전환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 문제는 ‘어떻게’이다. 답은 사실 정해져 있다. 언론계를 지배하는 상업성과 정파성을 배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돈 때문에 진실에 눈감고, 내 편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미력하지만 뉴스민도 역할과 책임을 더 느끼게 하는 취재 결과였다. 실제로 광장의 시민들 중에서도 뉴스민 같은 독립언론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 홍승현(27) 씨는 “언론의 개혁은 편향적인 보도가 계속되지 않도록, 저널리즘을 갖고 긍지에 맞게 행동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했고, 구민호(39), 손기백(47) 씨는 뉴스민과 같은 지역 독립언론이 자생력을 키우고 강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건 뉴스민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달성할 순 있지만, 온전한 달성에는 더 많은 독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온고이지신으로 삼을 상징적인 사례가 있다. 2019년 7월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 아이콘으로 부상한 검찰총장 후보자 윤석열의 거짓말을 폭로하는 보도를 내놨고,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로부터 크나큰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비난의 주요 논지는 ‘이 시국에 굳이 이런 보도를 해야 했느냐’, ‘진보 언론이 진보 정부를 배신했다’는 거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내 편인 줄 알았는데, 내 편을 ‘공격’하다니, 너한테 주던 내 돈, 이제 줄 수 없다’는 정서가 해당 보도의 댓글창을 장악했다. 고위공직 후보자의 도덕성, 특히 그가 정말 검찰 개혁의 적임자인지를 알 수 있는 보도였지만, 직후 약 3,000명이 후원을 해지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상업성과 정파성에 휘둘리지 않고 ‘정론’을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바꿔말하면, 정론하는 언론은 그런 언론을 원하고 행동하는 독자의 수에 비례해 지켜질 가능성도 커진다. 뉴스민은 뉴스민대로 정론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거다. 최근엔 리영희재단과 녹색전환연구소가 함께 진행한 ‘지역언론 기후위기 취재지원 사업’에 선정돼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기획보도를 준비하고 있고, ‘준표청산’ 기획을 통해선 홍준표 전 시장이 남겨 놓은 적폐를 청산하는데도 힘쓰고 있다. 기획보도에 그치지 않고 ‘TK 리부트 : 광장의 미래’ 기획 강연을 통해 지역사회와 함께 고민하는 시간도 마련했다. 내란이 일단락됐지만, 편집국은 여전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뉴스민이 지금처럼 계속 달릴 수 있는 힘은 결국 바른 언론을 원하는 독자 여러분에게서 나온다는 점만 기억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