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음주운전 바꿔치기’ 논란 구의원과 함께하는 청렴결백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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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정재목 대구 남구의원이 음주 후 운전대를 잡았다. 남구의회 부의장을 맡고 있던 그는 음주 단속 중인 경찰을 확인하곤 단속 직전 동승자에게 운전대를 넘긴 혐의까지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시작되고 언론 기사가 나자 그는 소속 정당(국민의힘)에서 탈당했고, 의회 안팎에선 공직자의 윤리성을 두고 비판이 일었다.

동료 의원 일부는 그에게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 곧바로 의회는 윤리특별위원회(윤리특위)를 구성했는데, 하필 당사자가 윤리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부위원장을 맡고 있던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의원들 간 합의를 통해 위원도 새로 호선하는 절차를 거쳤다.

그 결과 의장과 당사자를 제외한 국민의힘 의원이 전부 윤리특위 위원이 됐다. 남구의회 구성은 국민의힘 6명(정재목 포함), 더불어민주당 2명으로 되어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자동 패스됐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2명은 “음주운전에 운전자 바꿔치기까지 한 의원을 계속 부의장 자리에 둬선 안 된다”며 불신임 안건을 상정했으나, 부결됐다. 현재 진행 중인 윤리특위도 솜방망이 처벌을 내릴 확률이 높다. ‘음주운전 정도론 제명되지 않는다’라는 게 업계 중론이기 때문이다.

설사 윤리특위에서 외부 전문가 자문을 받아 제명이라는 결과를 내려도, 최종 징계 수위는 의회 본회의에서 의원 간 표결로 정해진다. 윤리특위에서 제명 결과가 나왔는데, 의회 본회의에서 뒤집힌 사례는 발에 챌 정도로 많다. 같은 당이라서, 국회의원 선이 있어서, 서로 봐주기 한 동료라서 등 적당히 넘어간 이유도 제각각이다.

진짜 코미디는 이제 시작이다. 민주당 의원 중심으로 정 부의장이 부의장직을 수행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불신임 안건이 제출됐지만, 27일 본회의에서 당연하다는 듯 부결됐다. 불신임안을 부결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표결 직후 정 부의장과 함께 청렴 캠페인을 진행했다. ‘함께하는 청렴의정, 신뢰받는 남구의회’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어깨에는 ‘부패는 OUT, 청렴은 IN’이라 적힌 어깨띠를 둘렀다. 정 부의장이 정중앙에서 함께 청렴을 강조했다.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욕이 없음.’ 내가 아는 청렴의 뜻이 그새 바뀌었나 싶어 다시 한번 검색했다.

▲남구의회 사무과는 사진만 찍고 헤어진 이날 캠페인에 대해 “의원님들 행사 일정으로 부득이하게 축소해 진행했다. 추후 조금 더 정비해 캠페인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사진=남구의회)

2021년 대구경북학회 등 7개 단체가 대구시민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지방자치 의식조사에선 ‘지방자치로 지역주민 삶의 질이 나아졌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63.8%의 시민이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지방자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서 절반가량(49.8%)이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자질과 역량 부족’을 꼽았다.

물론, 일상의 이슈를 정치로 풀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지방의원도 있다. 그들이 행정 집행의 근거를 만들고 지역에 밀착한 정책을 제안하는 장면도 봤다. 지역구 관리, 민원 해결, 예산 심사, 조례 제정, 정책 개발, 홍보 등 일인 다역을 하는 훌륭한 지방의원들도 있다. 최근에는 대구 기초지자체 최초로 노동기본조례를 제정한 뒤, 이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토론회를 열고 민관 사이 소통을 자처한 구의원을 만나기도 했다.

문제는 이들보다, ‘음주운전한 동료의원의 잘못을 감싸는 구의원들의 청렴결백 캠페인’ 같은 일이 더 뉴스가 되는 시대라는 점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리지만 곳곳에서 소명감을 갖고 일하는 기초의원들은 도매급으로 욕을 먹는다. 시민의 눈높이에서 미꾸라지를 솎아내고, 의미 있는 기초의원을 소개하는 게 언론의 역할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