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기득권과의 전쟁이다

[민중총궐기 연속기고] (3) 홍승용 현대사상연구소 소장

17:48

[편집자 주] 뉴스민은 오는 11월 12일 민중총궐기를 앞두고 12대 요구안과 관련해 대구경북지역 시민의 목소리를 매일 싣습니다.

(1) 최일영 민주노총 대구본부 정책교육국장
(2) 최창훈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 부의장
(3) 홍승용 현대사상연구소 소장

오늘은 너나없이 하야와 탄핵을 외치고 있지만, 바로 얼마 전만 해도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태도는 기세등등했다. 경찰은 온갖 비난여론을 묵살하며 백남기 농민 부검 영장을 집행하겠다고 영안실로 쳐들어갔다. 문재인을 상대로 한 새누리당의 상투적 종북몰이도 극성스러웠다. 정부여당이 발산하는 밀리면 다 죽는다는 식의 결전태세 앞에서, 진실을 말하려면 많은 것을 각오해야 했다. 막강 보수언론 조선일보조차 정부와 벌인 일차전에서 주필을 잃었다. 우병우는 의혹의 태풍 속에도 요지부동이었다. 실로 두려움과의 싸움이 필요했다.

그 사이에 박근혜 정부는 주민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벌이듯이 사드배치를 결정했다. 개성공단 입주 업체들의 운명 역시 전격적으로 결정되어 사업을 접고 짐을 싸야 했다. 무리한 대북정책으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함께 전쟁위험도 증폭됐다. 학계 전문가들과 국민들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였다. 세월호 7시간은 여전히 성역인데, 세월호특조위 예산조차 아끼는 정부가 박정희 우상화 사업에는 2000억 가까운 예산을 책정했다.

호시탐탐 노동법 개악을 밀어붙일 태세고, 재벌 감세와 관련해서는 일체 양보도 없었다. 빈부격차는 아예 신분제처럼 고착돼왔다. 심지어 국민 99%를 개·돼지로 보는 통치철학까지 등장해 국민을 허탈과 분노로 몰아넣었다. 그동안 새누리당 정부가 추진해온 정책들의 본질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그것은 소수 가진 자들이 절대다수 국민을 겁박하고 쥐어짜내며 민족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반민주, 반민중, 반민족 정책이었다.

그래도 두려움과의 싸움을 딛고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을 폭로한 영화 <자백>이 나왔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물대포의 살인적 위력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JTBC 뉴스룸은 그동안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가 그토록 감추고 싶어 했던 최순실의 국정농단 실상을 낱낱이 밝혀 국민적 저항에 불을 붙였다. 이제 새누리당은 존립의 위기를 맞았다. 박근혜 정부가 내놓는 어떤 해법도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을 것이다. 어떠한 은폐공작도 물 건너간 듯하다.

그렇다고 한국 사회 앞길이 그냥 순탄할 것 같지는 않다. 야대여소가 된 이후 야당이 보여준 전투력에서 도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오리무중이다. 차기는 보장이라도 된 듯이 이 눈치 저 눈치 표계산에 바쁜 이들이 집권하면 사드는 막아낼 수 있을지. 재벌권력, 보수언론권력에 맞서 중소기업, 자영업, 서민, 노동자, 농민 편에 설 수 있는지, 사람 살 만하게 공평하고 정의로우며, 삶의 질과 가치를 서민이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새 질서를 꿈이라도 꾸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보수권력들끼리 대연정은 노무현 정치의 한 가지 결론 아니었던가.

법적, 제도적 절차는 민주주의의 최소한이다. 민주주의의 알맹이는 민중이 주인 되는 정치체제다. 말로, 형식적으로, 헌법 조문을 들먹이며, 보수언론까지 깃발 바꿔들고 합세해 최순실-박근혜를 욕하고 있지만, 이 와중에 그동안 고착되어온 반민주, 반민중, 반민족 지배구조에 대한 근본적 개조를 소홀히 하면, 잘 해봐야 그저 약간 개선되고 점잖아진 또 하나의 보수 정권이 탄생할 것이다.

오늘의 국민적 에너지가 보수 정치권 전리품이 되지 않으려면, 그리하여 민중이 주인 되는 실질적 민주사회를 만들어가려면,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여온 반민주적 정책들의 중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근본적으로 기득권과의 전쟁이 불가피하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도화선일 뿐이다. 불은 붙었다. 그동안 억눌려온 민중적 에너지의 폭발이 기득권의 장벽들을 얼마나 일소해 버릴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