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퀴어문화축제 연속기고] (2) 함께 걸어요, 대구퀴어문화축제에서

들킬 걱정, 미움받을 걱정, 배척당할 걱정 없는 세상을 원한다

10:24

[편집자 주] 7월 1일부터 19일까지 제7회 대구퀴어문화축제가 열립니다.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억압받았던 성소수자가 자신의 존재를 그대로 드러내고 표현하는 장입니다. 2014년 제6회 대구퀴어문화축제부터 기독교단체를 중심으로 동성애 ‘혐오’ 입장에서 축제를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이 때문에 중구청의 장소 대여 거부, 최근 법원의 결정으로 다행히 퍼레이드를 열 수 있게 됐지만 대구지방경찰청이 행진 금지를 통보하기도 했습니다. 뉴스민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대한 현실과 대구퀴어문화축제를 지지하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의?글을 연재합니다. 이 연속기고는 뉴스민과?더불어 평화뉴스에도?게재됩니다.?두 번째는?진냥 인권교육센터 오리알(준) 활동가의?글입니다.

올해는 서울 퀴어퍼레이드에 갔었어요. 대구에 사는 저는 퀴퍼 기간에 서울에 머무르며 서울퀴어축제를 구경한 적은 있긴 했지만 퍼레이드에 함께한 건 처음이었거든요. 같이 가는 사람들과 며칠 전부터 옷을 사네 마네 야단법석을 떨었죠. 결국엔 서울 숙소 바로 앞 가게에 막무가내로 들어가 옷을 샀어요. 그야말로 온갖 설레발을 떨었답니다.

그 난리 후에 퍼레이드에 입고 간 옷은 어깨가 끈으로만 된 원피스였어요. 평소엔 절대 입을 수 없는 옷이었죠. 정말이지 엄두도 못 낼 옷이었어요. 하지만 이날은 뭔가 숙소 문을 열고 나올 때부터 당당했어요. 주변 사람들의 훑어보는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퀴퍼 가는 거니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괜찮더라고요. 심지어 서울퀴퍼가 있던 6월 28일은 햇볕이 정말로 짱짱한 날이었어요. 부스를 돌아다니는 참가자들이 날씨에 지쳐 두 번 세 번 쉬어야 했죠. 근데도 같이 간 일행 한 명이 재킷을 걸치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덥지 않느냐고 물어보았어요.

“아 근데 이걸 벗어도 되나 싶어서…”

말끝을 흐리던 그 사람도 오후가 되자 결국 재킷을 벗을 수밖에 없었어요. 뭐, 날씨가 워낙 더웠으니까. 근데 그녀 역시 안에 입은 옷이 끈원피스였답니다. 그렇게 여자 사람 둘이 서울시청광장을 끈 하나 있는 원피스 입고 돌아다녔어요. 근데 정말 신기했던 것은 전혀, 정말 손톱만큼도 무.섭.지 않.았단 거예요. 생애 처음이었어요.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고도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은 건.

여성인 저는 몸을 드러내지 말라고 늘 요구받아요. 몸을 드러내면 낼수록 ‘너는 위험해지는 거야!’는 무언의 협박도 많이 받죠. 계단을 올라갈 때 모르는 누군가가 바짝 붙어서 소스라쳐 놀라면 별거 아니니 고마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으로 뒤에서 싱긋 웃는 배려로운 사람들을 종종 만난답니다. 뒤에 바짝 붙어서 제 몸을 가려주는 거예요. ‘자기 기준에서 친절한’ 그 사람이 너무 황당하기도 하면서도 나는 왜 그렇게 가려져야 하는 거지, 왜 저 사람은 날 지켜주려 저리 배려심을 발휘하는 거지 싶어 우울해지기도 해요. 비치거나 파인 옷을 입으면 성추행을 당할 거 같고 짧은 치마를 입으면 강간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 날 뒤덮을 때도 숱하게 많아요. 근데 이건 절대 저 혼자만의 오버가 아니에요. 우리나라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뭔지 아세요? ‘왜 그런 싸 보이는 옷을 입고 다니니. 쯧쯧’ 이런 거예요.

그렇게 평생을 살았던 제가 퀴어퍼레이드가 있던 날엔 낯선 사람들이 득실득실한 공개적인 장소에 있는데도, 끈원피스 딸랑 하나 입고 돌아다니고 있는데도 두렵지 않았어요. 누가 내 몸을 함부로 만질 거 같아 움찔거리지도 누가 날 훑어보지 않을까 걱정하지도 않았어요. 마음에 두려움 한 톨 없이 길거리를 걸을 수 있다니. 그 감격스러움이란…

퍼레이드를 반쯤 했을까? 우연히 올려다본 상가건물 2층엔 제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은 광고문구가 적혀있었어요. NEVER HIDE.

더 이상 숨지 말라는 말은 마치 줌인 된 정지장면처럼 제 눈에 들어와 박히더군요. 나도, 내 몸도, 나의 성도. 내가 어떤 몸을 가지고 있든 내가 어떤 사랑을 하든 내가 숨을 이유는 없다는 그 말에 정말 한참을 올려다봤어요.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 범성애자, 트렌스젠터, 인터섹슈얼, 퀘스쳐너리, 에이섹슈얼… 그 수많은 성소수자를 둘러싼 호칭들은 사실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끈 원피스를 입든 망사스타킹을 신든 그 역시 상관없죠. 혹은 내가 장애가 있던 내가 공부를 못하든 내가 가난하든 직업이 없든 내가 노숙을 하든 세상 그 누구도 날 숨어 있으라 요구할 수 없는 거니까요. 수없이 많은 ‘나’들이 두려움 없이 그저 ‘나 자신’으로 퍼레이드를 걷고 있었고 그래서 퀴어퍼레이드는 그 자체로 해방이었어요. 나를 그리고 누군가를 숨어있으라 말하는 세상을 바꾸어내는 것이 남았을 뿐.

한숨을 몰아쉬고 나서 시선을 돌려 앞을 보자 눈앞엔 수많은 무지개가 펄럭이고 있더군요. 무지개 무지개 무지개… 어딜 봐도 펄럭이는 육색 무지개들. 도로 위에 수천 명이 무지개를 두르고 걷고 있었어요. 그야말로 장관이었죠.

성소수자의 운동과 자긍심을 상징하는 육색 무지개. 그래서 저는 무지개가 있는 옷이나 소품들을 좋아하고 모으고 있어요. 그리고 퀴어행사가 있는 날이면 온통 몸을 무지개로 치장하죠. 재작년에도 그랬어요. 퀴어행사에 갈 거라며 무지개 팔찌를 찬 손목을 흔들며 친구에게 자랑했더랬죠. 그러다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어요. ‘넌 무지개 악세사리를 왜 하지 않아?’라고. 악세사리를 좋아하고 늘 많이 하던 그 친구는 일그러진 얼굴로 대답하더군요.

…. 나는… 무서워서 잘 못하겠어.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 손목에 끼워져 있던 무지개 팔찌가 갑자기 천근만근 무거워진 느낌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그 친구는 단 한 번도 퀴어행사에 온 적이 없었습니다. 다른 영역으로는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것을 드러나게 하는 아주 작은 단서도 그 사람에겐 절대 넘어갈 수 없는 위협이었던 거죠. 퀴어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가장 큰 용기가 필요한 건 퀴어라는 사실을 그제야 고민해볼 수 있었어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사람이 사람을 반대할 수 있는 걸까요? 존재 자체를 반대하고 존재 자체를 거부하고 혐오하는 권리는 그 어떤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이번 대구퀴어문화축제에도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 반대집회를 연다고 하더군요. 그 사람들 손에는 온갖 피켓과 더불어 카메라가 들려 있을 겁니다. 늘 그랬듯 퀴어문화축제 참가자 아무에게나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어대겠죠. 미움으로 가득 찬 표정으로 셔터를 눌러대는 그 사람들이 참으로 참으로 싫습니다. 하지만 가장 싫은 것은 사진을 찍는 행위가 위협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기록이, 여기에 있는 나의 존재의 흔적을 위협의 도구로 사용하는 거예요. 그건 너는 여기에 나타나지 마라! 벽장 안에 숨어 있어라! 소리치고 압박하는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네가 여기에 있는 것을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들킬까봐 무섭지?’라고 위협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초대장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진냥 인권교육센터 오리알(준) 활동가

저는 정말로 이번 주에 있을 대구퀴어문화축제에 그 친구가 올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 친구가 그럴 용기를 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보다는 ‘들킬 걱정’없이, ‘미움받을 걱정’ 없이, ‘배척당할 걱정’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훨씬 더 큽니다. 누구나 어디에 있든 지간에 찍힌 사진 한 장으로 위협받는 세상보다 들킬 걱정 없고 배척당할 걱정 없는 세상을 더 원하지 않아요? 더 이상 그 카메라가 위협이 될 수 없도록. 우리 함께 걸어요, 대구퀴어문화축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