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꽃들에게 물어보자 /김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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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소성리에 핀 봄까치꽃 [사진=김수상]
꽃들에게 물어보자

김수상

물어보자
여기 소성리의 꽃들에게 물어보자
너 혼자 힘으로 피었는냐고
사월의 꽃들이 봄볕에 고개를 흔든다
아니, 우리는 바람과 흙과 물의 뜨거운 동맹이야

자, 이번엔 그들에게 물어보자
성주에 꼭 가봐야 하느냐는 대권후보에게 물어보자
저 혼자 힘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느냐고
여름에 시작한 평화 항쟁이 300일이 다 되어가는데,
광장에서 쫓겨나고 눈비가 퍼부어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촛불을 들었는데,
거길 꼭 가봐야 하느냐, 이런 막말을 하는 사람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나
물에 빠진 놈을 건져놓았더니 내 봇짐 내놔라, 하는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촛불을 등에 업고 권좌에 오른 자가
촛불을 밟아 뭉개려고 한다
캄캄한 길을 촛불로 밝혀주었더니
촛불의 이름을 팔아서 권력을 차지하려 한다
다투어 피어나지만 남의 자리를 뭉개지 않는
꽃들이 혀를 차고 있다
표에만 눈독을 들이는 저 파렴치를
우리가 어떻게 심판해야 하는지 꽃들에게 물어보자
롯데 골프장의 잔디도 미안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피어나는 잔디들한테도 물어보자

소성리 할매들이 팔이 아파 반팔 만세를 부른 게 아니다
사드가 가기 전엔 봄이 봄이 아니고
평화가 오기 전엔 만세가 만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드 때문에 지금은 사는 기 사는 기 아니야. 작은 마실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든 기 바로 저 놈들인데. 우리가 살 날이 얼매나 남았다고 이 우환을 일으키는가 몰라. 내사 마, 지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 해볼 때까지 해볼란다”
우리가 싸워 이겨서 할매들의 나머지 절반의 팔을
활짝 들게 해드려야 한다
수천 명이 다시 모이고 깃발의 대오가 소성리를 뒤덮고
평화버스가 수백 대 달려와도
오만한 권력을 정신 차리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싸움은 죽 쑤어 개 주는 일이 될 것이다
꽃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항쟁이 되려면 우리는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다시 한 걸음을 더 내디뎌야 한다

길을 막는 할매들의 낡은 유모차가 무서워서
시누크 헬기로 전쟁의 장비를 실어 나르는 저들이야말로
비겁한 겁쟁이지 않은가
찌그러진 세숫대야를 두드리며
사드배치 원천무효 팻말을 목에 걸고 싸우는
소성리의 할매들이 역사 앞에 더 떳떳하지 않은가

소야의 봄꽃들이 다 지켜보고 있다
평화를 능멸하고
꿈자리를 더럽힌 저들이 누구인지
소성리의 꽃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소성리의 할매들 말마따나
어떤 놈이 암까마구인지 수까마구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하우스의 참외꽃을 믿듯
자연의 섭리를 믿을 것이고,
철조망 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푸른 하늘의 흰 구름을 믿을 것이고,
마을회관 할매들의 반팔 만세를 믿을 것이고,
부녀회원들이 장만한 국밥의 힘을 믿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모인 깃발들의 자세를 믿을 것이다

파리 떼 같은 저들이 권력의 단맛에 미치기 전에
저들을 다시 우리의 땅으로 끌어내려야 한다
우리는 어중간한 성명서 발표나 들으려고 싸우는 것이 아니다
해마다 논둑에 피어나는 쑥들에게 민들레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어린 후손들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다
선거의 꽃놀이패에 취해 흥청망청하는 시절에
울면서 이를 악물고 싸우는 성주의 사람들이 있다
천 길 낭떠러지 위로 평화의 길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마주 보고 웃는 맑은 거울,
꽃들을 따라 진군하는 평화와 생명의 동맹군이다
사드배치 원천무효!
사드 가면 평화 온다!
전쟁은 가고 평화여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