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도 변한다] (3) “아프지마, 대구야”

6월부터 대구 시민 인터뷰 영상 제작
“보수적인 대구, 나름의 이유 알 수 있는 계기”

12:45

[편집자 주] 2016년 11월부터 지난 3월까지 대구에서 17차례 전 대통령 박근혜 탄핵 촉구 촛불집회가 열렸다. 연인원 21만 명이 집회에 참여했다. 하지만, 두 달 뒤 대구는 다시 ‘역적’의 도시가 됐다. 탄핵 국면에도 불구하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가장 많은 득표를 했기 때문이다. 손가락질이 빗발쳤다. 요지는 변할 줄 모른다는 거였다. 그러나 대구도 변하고 있다. 다만 속도가 느릴 뿐이다. <뉴스민>은 탄핵 정국을 지나오면서 변화를 맞은 대구 시민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얼마나 진행될지 알 수 없다. ‘이 사람이 딱 인터뷰 대상이다’ 싶은 독자들의 제보도 받는다.

6월 4일, 대구 모 음식점에서 네 사람이 모여 앉았다. 소주잔, 맥주잔, 물잔까지 다양한 잔이 네 사람 앞에 놓였다. 취향은 다르지만, 네 사람은 같은 ‘갈증’을 느꼈다. “뭔가 해야 한다”

▲대구 시민 인터뷰 영상 제작을 진행한 ‘대구야 아프지마 위원회’ 멤버들, 왼쪽부터 김기명, 김정윤, 장정훈(가명), 손형민 씨 (사진=손형민 제공)

의기투합한 네 사람은 매 주말마다 만나 ‘뭔가’ 하기 시작했다. 대구 동구에 있는 대구콘텐츠코리아랩을 거점으로 삼고, 대구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카메라 한 대를 짊어지고, 앞산, 달성공원, 두류공원, 대구 지하철 2호선 신매역, 수성구 자유한국당 대구시당 사무실 앞···. 때론 차량을 이용해 대구 도심을 가르며 달리기만 한 적도 있다.

7월 24일 네 사람이 의기투합한 첫 번째 결과물이 유튜브에 공개됐다. 10분 25초짜리 영상은 대구 시민들에겐 ‘대구타워’나 ‘우방타워’로 익숙한 83타워가 멀리 보이는 비 오는 성당못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 위로 “대구야, 아프지마” 타이틀이 떠오른다.

네 사람은 자칭 ‘대구야 아프지마 위원회’를 구성하고 대구 시민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박근혜 탄핵을 거쳐 정권 교체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대구시민들이 보여준 행동과 선택은 여느 도시와 달랐다. 네 사람은 그 이유를 직접 시민들을 만나 들어보고 싶었다.

27일 현재까지 ‘대구야 아프지마 위원회’는 비슷한 분량으로 영상 네 편을 공개했다. 시민 인터뷰가 중심이지만 영상마다 주제가 한 가지씩 있다. 1편은 대구의 보수성을, 2편은 변화하는 대구 시민을, 3편은 자유한국당 해체를 요구하는 모습, 4편은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대구 시민들의 모습이다.

1편 등장 인물들이 하는 발언은 어떤 측면에서 당연해 보이고, 부분적으로 경악스럽다. 한 할머니는 문재인 대통령을 싫어하는 이유를 묻자 “비 안 오는 거 보이소, 문재인 (대통령)되고 나니 비 안 오고, 밤만 되면 바람 분다”고 말한다. 가뭄이 들면 왕에 부덕을 탓했다는 100여 년 전 그 시절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할머니가 문재인 대통령 때문에 비 안 온다고 해서, 일부러 비 오는 날 찍으러 나갔어요” 83타워가 멀리 보이는 비 오는 성당못 장면은 그렇게 탄생했다.

처음 영상 작업을 준비할 때까지만 해도 네 사람은 인터뷰가 잘 성사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형민(34) 씨는 “인터뷰하려고 한 첫 취지는 좀 나빴어요. 우리가 어르신들 만나서 엄청 혼나고, 인터뷰 거절하는 장면을 넣자는 게 첫 계기였어요”라고 불순(?)했던 의도를 자진해 밝혔다. 하지만 달성공원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이들과 대화 나누는 걸 꺼리지 않았다.

이들이 ‘투 머치 토크(too much talk, 말이 너무 많은) 할아버지’라고 이름 붙인 한 할아버지는 스스로 문재인 대통령 지지로 변한 과정을 장황하게 설명해 지치게 만들었다. 정윤(34) 씨는 2편에 등장하는 이 할아버지 이야기가 인상에 오래 남았다. “본인이 지금까지 자유한국당을 지지했는데 한순간에 돌아선 게 박근혜 탄핵이었어요. 저는 그분이 대구에서 보수라는 콘크리트가 균열하는 상징으로 보였어요”

어려움도 있었다. 젊은 층 인터뷰를 위해 치맥페스티벌이 열린 두류공원을 찾았을 땐 냉랭한 반응에 충격을 받았다. “치맥 축제 가서 완전 까였어요. 어르신은 젊은 사람이 와서 이야기 들어주는 게 고마웠는지 이야길 잘해줬는데, 젊은 사람은 너무 차가워서···” 민경 씨가 말했고, 기명(34) 씨도 “멈추지도 않고, 쳐다도 보지 않고 지나가는데, 너무 기분이 안 좋더라”고 말을 받았다. 이들은 이 경험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에도 허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자유한국당 지지자는 나름대로 논리나, 정치에 대한 지식을 갖고 지지를 하는데, 그게 아닌 사람은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이 대부분인 것처럼 보였어요. 그게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표본이 적긴 하지만, 주변 사람을 봐도 그런 경향이 보이거든요. 민주당 지지하는 애들보다 다른 정당 지지하는 애들이 정치에 관심이 많아요” (정윤)

“젊은 층은 대세를 따른다고 해야 할까? 이명박, 박근혜 때도 그랬는데요. 그렇게 이명박, 박근혜는 안 된다고 이야길 해도 후배들은 ‘형이 뭔데 그러냐’고 하고, ‘부모님이 말씀하시는데 나쁜 거 모르겠다’고 해요. 부모님 이야길 따라가지 자기 생각은 없는 거죠. 지금도 큰 대세가 민주당이니까 거기에 따라갈 뿐이지 스스로 생각해서 민주당을 지지하는 건 없는 것 같아요” (기명)

▲[사진=손형민 제공]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인터뷰 요청하고, 거절당하는 수모는 굳이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스스로 시민을 만나러 나서고, 인터뷰하고 영상까지 만든 데는 ‘뭔가 해야 한다’는 욕구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마땅하게 없었기 때문이다. 생업을 병행하면서 하고 싶은 활동도 하는데 기존 시민사회단체의 경직성이 부담이었다.

정훈(가명, 33) 씨는 “이런 활동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는데, 활동할 수 있는 단체나 조직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사회단체는 목적의식이 있잖아요? 노조는 노동 의제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다거나··우리는 그런 게 아니라 일반 정치에 분노하고 있는 건데, 그런 활동을 하는 단체는 없었어요”라고 설명했다.

정윤 씨도 “광우병 파동 때 촛불을 들기도 했는데, 그때 시민사회단체 분들한테 너무 많이 불려 다녔어요. 활동을 지속해서 참여하길 바라는 게 많더라구요. 사실 자기 일도 있고, 생활도 해야 하는데, 모든 것에 참여할 순 없는 거잖아요. 한두 번 참여가 소홀해지면 뭐랄까 상대방이 ‘너는 해이하다’는 시선으로 보는 게 느껴지니까 지속 참여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그냥 이렇게 놀면서, 하고 싶은 건 할 수 있는 모임이 필요했죠”라고 덧붙였다.

기존 사회단체의 활동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3개월을 활동했다. 자진해 주말을 반납하고, 때때로 평일에도 작업해야 했다. 생업이 있는 그들로선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에너지 소모가 컸던 3개월이었다. 7월 24일 1편을 공개한 후 보름에서 한 달 간격으로 4편(9월 18일)까지 공개를 마쳤다. 빠르면 추석 연휴 전에 5편을 공개하고 나면 이들도 잠정 휴식에 들어갈 예정이다. 말 그대로 휴식이다. 아직 찾지 못한 답이 있고, 답을 찾기 위한 시간은 더 필요하다.

“보수든, 진보든 광장에 나오는 이유가 궁금한 거죠. 그게 극단적으로 가면 활동가가 되는 건데, 이 사람들은 자기 삶을 희생해가면서 나오는 원동력이 뭔지. 자기 소신이 뭔지, 궁금했어요. 저는 어떤 이유에서 조직에 있는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 있거든요. 답을 아직 찾질 못했어요” 형민 씨가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