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은 서로 돕는다.”: 표트르 크로포트킨 ②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는 자의 절대자유-아나키즘](14)

09:54

4. 상호부조론

“상호부조는 인류의 본능이다!”

19세 후반에서 20세기 초 당시 유럽의 지성사회에서는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의 <종의 기원에 대하여>(On the Origin of Species, 이하 <종의 기원>)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생존경쟁’이야말로 거친 자연환경에서 생물 종을 살아남게 하는(즉, ‘적자생존’) 핵심 원리이며, 그 종은 ‘자연선택’과 ‘분화’를 거쳐 진화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생물진화론을 보완하여 헉슬리(Thomas Henry Huxley, 1825~1895)는 “생존경쟁과 그것이 인류에 미치는 영향”이란 논문을 발표하고, 생존경쟁은 인간진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하였다.

다윈에 의해 주장된 생물진화의 근거로 제시된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이라는 관념은 당시 급속하게 부를 축적하고 있던 산업자본가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또 이를 정당화하는 논거로 활용되었다. 또한 이 관념은 생물계뿐 아니라 인간사회도 적자생존법칙에 의해 진화하고 진보한다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따라서 인간을 사회에서 자유롭게 생존경쟁하게 하면 가장 적자만 살아남게 되어 결국 그들에 의해 사회는 진보?발전한다고 보았다.

생물진화론자들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크로포트킨은 “만일 낯선 종에게도 먹이를 베푸는 행위가 모든 자연계에 걸쳐 일반적 법칙으로까지 받아들여지는 것이 사실이라면 많은 수수께끼가 풀릴 것이다.”라는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말을 인용하며, <상호부조론> 제1판의 서문에서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밝히고 있다.

“나는 자연법칙이자 진화의 요인으로서 상호부조를 다루는 책이 씌어지면 중요한 간극을 메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상호부조론>, 서문, 17쪽)

크로포트킨은 ‘자연법칙이자 진화의 요인’은 ‘생존경쟁’이 아니라 ‘상호부조’라고 본다. 그래서 그는, 먼저, “상호부조가 동물들 사이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인간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스펜서(Herbert Spencer)의 주장을 비판한다. 그의 주장은, “원시인간사회에서는 만인에 맞선 개개인의 투쟁이 곧 삶의 법칙”(만인 대 만인의 투쟁)은 홉스(Thomas Hobbes) 이래 충분한 비판 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크로포트킨의 생각이다.

또한 크로포트킨은, 근대사회의 기반인 “각자는 자신을 위해, 국가는 모두를 위해”라는 원리는 실제로 성공한 적도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 따라서 그는, “야만 혹은 반(半) 야만 집단의 창조적인 천재성에 의해 발전된 상호부조제도의 수와 중요성은 인류 최초의 씨족 시기 동안, 그리고 뒤이은 촌락공동체시기 동안 더더욱 증진되었다”고 결론 내린다(<상호부조론>, 19쪽). 요컨대, 동물계뿐 아니라 인류에게 있어서도 ‘생존본능’보다도 ‘상호부조의 본능’이 사회발전과 진화의 근간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출처=https://anarchyisorder.files.word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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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크로포트킨은 ‘상호부조는 인류의 본능’이라는 결론을 입증하기 위하여 개별 주제에 대한 철저한 고증과 현지조사, 그리고 관찰을 통하여 과학자로서의 그의 지식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는, 크게 ‘동물의 상호부조’, ‘야만인의 상호부조’, ‘미개인의 상호부조’, ‘중세 도시의 상호부조’ 및 ‘근대인의 상호부조’의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첫째, 동물의 상호부조이다. 이 주제를 설명하기에 앞서 크로포트킨은 다윈과 그 추종자들의 ‘생존경쟁’과 ‘적자생존’법칙을 비판한다. 그리고는 페테르부르크대학의 학장이었던 케슬러(Kessler) 교수가 1880년 1월 러시아박물학자대회에서 행한 강연을 예로 들며 자신의 상호부조론이 그의 생각을 빌려온 것임을 밝힌다. 그 강연에서 케슬러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나는 분명 생존경쟁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동물계 특히 인간이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데는 상호경쟁보다는 상호지원의 혜택을 훨씬 더 많이 받았다고 주장한다. … 나는 유기적 세계가 진화하는 데-즉 유기체의 점진적 변화에 있어서-개체들 사이에 상호지원이야말로 상호투쟁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상호부조론>, 33~34쪽)

물론 크로포트킨도 다윈이 주장하는 “유기체적인 자연을 통해 속행되었던 생존경쟁이라는 관념은 우리 시대의 최대의 통칙”이라는 점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반문한다. “생존경쟁을 통한 적자생존을 위한 투쟁은 주로 어떤 무기로 수행되는가? 또 “이러한 투쟁에서 누가 최적자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두 가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 투쟁에서 어느 쪽에 중요성이 주어지느냐에 따라 상당히 달라진다며 “경쟁은 동물에서도 인간에서도 철칙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상호부조론>, 90쪽?105쪽). 그러면서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경쟁하지 말라! 경쟁은 항상 그 종에 치명적이고, 경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많다! … 그러므로 결합해서 상호부조를 실천하라! 이것이야말로 각자 그리고 모두가 최대한 안전을 확보하고 육체적으로, 지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살아가고 진보하는 데 가장 든든하게 받쳐 주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상호부조론>, 106쪽)

둘째, 크로포트킨은 ‘야만인’(Savages)에 관한 명확한 개념 정의는 하고 있지 않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야만인이란 “기원전에 해당하는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에 존재한 원시인(혹은 원시부족)”을 말한다. 그는 야만인에 대한 글을 홉스와 그 추종자들의 견해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한다.

“홉스는 이른바 ‘자연 상태’란 개인들이 벌이는 영속적인 투쟁일 뿐이었고, 개인들은 짐승처럼 살다가 뜻하지 않게 변덕을 부려 집단을 이루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크로포트킨은 오늘날에도 자연 상태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원시부족인 에스키모인, 부쉬맨, 호텐토트족(남아프리카의 세 부족 가운데 하나) 및 다야크족 등에 대한 실증적 연구 분석을 한다. 이를 통해 원시부족에 대한 고정관념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여전히 신석기인처럼 살고 있는 야만인들을 관찰해보면,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는 약한 힘을 결합시켜주고 공동으로 삶을 향유하며 진보할 수 있게 해준 매우 오래된 씨족 조직과 그들의 생활방식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 역시 생존경쟁에서 서로 가장 잘 도와주는 사람들만이 최상의 생존 기회가 부여되는 상호부조의 원리에 따르게 된다.”(<상호부조론>, 152쪽)

셋째, ‘야만인’(Savages)과 마찬가지로 크로포트킨은 ‘미개인’(Barbarians)에 대해서도 별도의 개념 정의를 하고 있지는 않다. 그는 “기원전후 전쟁과 약탈 혹은 민족대이동으로 대변되는 씨족사회(혹은 부족)와 촌락공동체의 구성원”을 ‘미개인’으로 본다. 뒤이은 장(Chapter)에서 ‘중세 도시의 상호부조’에 대해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미개인’은 기원전후에서 중세 이전까지 존재한 사회 구성원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촌락공동체는 미개인사회에서 있어서는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촌락공동체는 땅에 대한 공동소유에 기반한 공동농업이나 상호지지, 폭력으로부터의 보호, 지식이나 인종 간의 결속, 그리고 도덕 개념을 발전시키기 위한 연합이다. 이 공동체의 최고의사결정 기구는 민회다. 사법적, 군사적, 교육적, 경제적 양식이 변경될 때마다 촌락, 부족 또는 동맹의 민회가 결정을 내려야 했다. 크로포트킨은 민회에서 당시 러시아의 자치농촌공동체인 미르(mir)의 전형을 찾고 있다.

“이것(민회)은 (라틴어의) 우니베르시타스(iniversitas; 우주), (러시아어의) 미르(mir), 즉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였다.”(<상호부조론>, 183쪽)

또한 민회는 재판기관의 역할도 했다. 분쟁이 일어나면, 먼저 중재나 조정절차를 통해 해결했다. 대부분의 분쟁은 중재자나 조정자에 의해 마무리된다. 하지만 이 절차에 의해서도 해결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은 민회에 회부된다. 민회는 결정은 최종적이었고, 그 결정은 준수되었다. 이 시기는 제정법보다는 관습법이 지배적인 규범으로 적용되었다. 헨리 메인에 따르면, “관습법의 정당한 결정에 거스르는 반역은 ‘상상할 수도’ 없던 시기였다. 이 당시에는 ‘법, 도덕성 그리고 사실’은 서로 분리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상호부조론>, 169쪽).

하지만 ”인류의 3분의 2 이상이 일상생활의 법칙으로 삼고 있는“ 관습법은 부의 사적 축적으로 인하여 권력의 소수 독점이 행해지면서 ‘소수가 다수를 압제하는’ 체제와 조직으로 변질되게 된다. 그 결과는?

“이후에 국가가 나타나게 되었을 때는 이미 촌락공동체에서 모두의 이익을 위해 실행되었던 모든 사법적, 경제적, 행정적 기능은 소수의 이익만을 위해 점유되었다.” (<상호부조론>, 190쪽)

넷째, 중세 도시의 상호부조의 전형적인 예로 크로포트킨은 ‘길드’를 든다. 중세는 봉건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물론 봉건제가 시작되었다고 하여 촌락공동체가 완전히 붕괴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촌락공동체는 점차 세속 영주나 성직 영주에게 예속되었다. 영주의 집은 성으로 발전하였고, 영주의 무장 세력들은 농민들을 약탈하려고 노리는 추악한 용병이 되었다. 이처럼 봉건적인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세 도시는 스스로 ‘하나의 요새화된 오아시스’가 되었고, 자체적인 무력으로 각자의 자유를 지켜야 했다. 한 마디로 중세 도시의 삶은 자유를 쟁취하고 지켜나가는 힘든 싸움의 연속이었다(<상호부조론>, 242~243쪽).

이러한 와중에도 ‘봉건제의 숲 사이에 존재하는 오아시스’를 대표하는 요새화된 마을이나 장터 등은 스스로 영주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래의 도시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다. 11세기 이래로 무역에서 완전한 독립을 얻은 상인 중심의 시민들은 때마침 성행한 자유와 계몽사상에 힘입어 새로운 형태의 연합을 필요로 했다. 이처럼 새로운 필요 요소를 충족시켜 준 것이 바로 ‘길드’였다(<상호부조론>, 208쪽).

길드의 주된 특징을 몇 가지 들면, 구성원들의 상호 평등과 사법자치권이다. 즉, 길드의 구성원들은 서로 형제나 자매라고 부르고 대우했으며, 모든 사람들이 길드에서는 평등했다. 또한 길드는 기존의 민회의 전통에 따라 코뮌의 자치 경영을 가능하게 하는 사법자치권을 가지고 있었다. ‘자치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길드는 국가의 ‘일부’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국가 그 자체’였다(예: 코뮌은 이웃들과 전쟁이나 평화 협정을 맺을 권리, 연합이나 동맹을 체결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 외에도 대사를 교환하고, 군주를 추방하는 등 자치권을 행사했다). (<상호부조론>, 219쪽) 중세 도시의 주된 목적은 ‘자유, 자치경영권, 그리고 평화 보증’, 이 세 가지였는데, 길드는 이 목적을 충실하게 보장하는 체제였다. (<상호부조론>, 222쪽)

하지만 15~6세기에 접어들면서 과거 로마식으로 재건된 국가들이 나타나고, 비양심적인 봉건 영주들에 의한 사적 소유지의 전유 등으로 인하여 길드를 중심으로 한 중세 도시는 급격히 와해되기 시작했다. 이와 더불어 기독교 교회의 세속화도 심화되어 전제군주정에 의한 독재체제를 구축하는 데 이바지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세 도시가 저지른 가장 치명적인 과오는 “농업을 무시하고 상공업으로 부의 기반을 쌓은 것”이었다. 그 결과에 대해 크로포트킨은 이렇게 적고 있다.

“이탈리아 도시들은 남동쪽에, 독일의 도시들은 동쪽에, 슬로베니아 도시들은 멀리 북동쪽에 각기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식민지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 용병들이 유치되기 시작했고, 이들은 곧 본토를 방위하기도 하였다. 시민들을 완전히 타락시킬 정도로 대출 계약이 체결되었고, 선거 때마다 내부적인 경쟁은 점점 더 심화되었으며, 그러는 동안에 소수의 가문에 이익을 남겨주었던 식민지 정책이 위태로워졌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의 분열은 더욱 심화되었고, 16세기에 접어들면서 각 도시마다 왕권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언제든지 자기편과 지지자를 찾을 수 있었다.”(<상호부조론>, 263쪽)

한 마디로 중세 도시는 실패했다. 중세 도시가 추구하던 ‘자유, 자치, 평화’의 정신은 사라져 버렸다. 정부를 지나치게 신뢰한 나머지 도시는 자기 자신을 믿지 않게 되었고, 새로운 의제를 개발하지도 못했다. 그러던 중에 국가가 밀고 들어와 이들의 마지막 자유를 말살해버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세 도시의 실패로 등장한 국가가 시민들의 자유를 말살해버렸지만, 상호부조원리는 근대인의 미덕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크로포트킨은, “이제 그 모습은 국가나 중세 도시, 미개인들의 촌락공동체나 미개인들의 씨족사회는 아니다”며, 상호부조와 상호지원의 미래를 근대인에게서 찾고 있다(<상호부조론>, 266쪽).

“칼, 화형, 고문의 힘을 빌려서 인민 대중을 상대로 최초의 결정적 승리”를 확보한 신생 근대국가들은 상호부조의 경향이 드러난 제도들을 체계적으로 제거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촌락공동체는 민회나 법정, 그리고 자치 경영권을 빼앗겼고, 토지는 몰수되었다. 길드는 자신들의 소유물과 자유를 강탈당했다. 도시들은 주권을 빼앗겼고, 민회, 선출된 판사와 관리, 독립적인 교구와 길드와 같은 도시 내부의 삶의 원천은 모두 제거되었다. 상호부조가 작동하던 모든 제도를 국가공권력이 장악해버린 것이다(<상호부조론>, 270~271쪽).

“국가 내에 어떠한 국가도 있을 수 없다!”

국가만이, 그리고 국가의 교회가 모든 관심사를 다루어야 하고, 국민들은 느슨한 개인들의 집단을 대표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한 집단은 어떠한 특정한 동맹과도 제휴할 수 없고, 또 정부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협력할 의무가 있었다. 크로포트킨은 “19세기 중엽까지 이것이 유럽의 이론이자 실제였다”고 하면서 노동조합 활동을 예로 들어, “유럽 대륙에서는 20년 전까지 불법으로 취급되었다”고 쓰고 있다(<상호부조론>, 271~272쪽). 실제로 유럽 국가들은 노동조합은 물론, 촌락공동체를 파괴하고, 상인단체는 물론 농민과 노동자단체를 감시하고, 그 활동을 처벌하였다.

크로포트킨은, “현재의 사회 체제 하에서 같은 동네나 이웃에 거주하는 사람들 사이의 온갖 유대 관계는 무력해지고 있다”고 탄식한다. 하지만 “근대인들의 공적인 삶에서 사적인 삶으로 옮아가보면 상호부조와 상호지원이라는 지극히 넓은 또 하나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고 하면서 유기체적 연대와 협력의 가능성과 희망을 제시한다.

“중앙집권국가의 파괴적인 권력도, 고상한 철학자나 사회학자들이 과학의 속성으로 치장해서 만들어낸 상호증오와 무자비한 투쟁이라는 학설도 인간의 지성과 감성에 깊이 박혀 있는 연대의식을 제거할 수는 없다.” (<상호부조론>, 338쪽)

그러면서 그는 거대담론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또 그 삶을 살아가는 시민들의 본원적인 연대에 대한 욕구에서 인류 사회는 진화하고 진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최근에 작게는 가족이나 빈민가에 사는 이웃들, 그리고 촌락이나 노동자 비밀 결사 형태로 숨어들었던 상호지지와 지원에 대한 욕구는 근대사회에서도 다시금 거듭 주장되었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미래의 진보에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그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상호부조론>, 339쪽)

크로포트킨은 <상호부조론>을 통하여 그 이전 아나키스트들의 사상을 이론적 및 실천적으로 완결시키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그의 작업을 통하여 윌리엄 고드윈, 조제프 프루동, 막스 슈티르너 및 미하일 바쿠닌의 아나키즘은 현실에서 강한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사상은 20세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북친을 비롯한 많은 사상가들은 물론 대안사회를 모색하는 시민운동가와 단체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20세기 후반부터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은 물론, 생태주의, 대안교육 및 대안공동체 등의 이론적 근거로 아나키즘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것도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하승우,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 그린비, 2006), 157~176쪽 참조).

“상호투쟁보다 상호부조가 훨씬 더 이익이다.” 서로 간의 경쟁과 경제적 효율이 만능이라고 여겨지는 오늘날의 사회경제제도에서 크로포트킨의 이 말은 가슴을 울린다. <상호부조론>의 결론에 나오는 그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맺기로 한다.

“우리 시대에서 이룬 산업의 진보는 모두가 주장하듯이 만인에 대한 개개인의 투쟁 때문이라는 생각은 비가 내리는 원인을 모르면서 진흙으로 만든 우상 앞에서 제물로 바친 희생 덕분에 비가 내렸다고 여기는 꼴이다. 서로를 위해 자연을 정복하는 경우처럼 산업 분야에서의 발전을 위해서도 상호부조와 친밀한 교제 등이 늘 그랬듯이 상호투쟁보다 훨씬 더 이익을 준다.” (<상호부조론>, 347쪽)

<참고문헌>

Pyotr Kropotkin, <The Conquest of Bread>(1907)
<Mutual Aid: A Factor of Evolution>(1902)
<An Appeal to the Young>(1896)
<The State: Its Historic Role>(1897)
<Memoirs of a Revolutionist>(1898)
<Field, Factories, and Workshops>(1899)
<Modern Science and Anarchism>(1901)
<Ethics>(1921)

크로포트킨, 하기락 옮김, <근대과학과 아나키즘>, 신명, 1993.
표트르 크로포트킨(백용식 옮김), <아니키즘>, 개신, 2009.
표트르 크로포트킨, 김유곤 옮김, <크로포트킨 자서전>, 우물이 있는 집, 2014.
P.A. 크로포트킨, 홍세화 옮김, <청년에게 고함>, 낮은산, 2014.
P.A. 크로포트킨, 김영범 옮김, <만물은 서로 돕는다: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 르네상스, 2014.
장 프레포지에(이소희?이지선?김지은 옮김), <아나키즘의 역사>, 이룸,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