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하소서” 60일 만에 패션연구원 노동자 장례

29일 '기자 갑질'에 스스로 목숨 끊은 패션센터 노동자 장례 치러
유족, 노조 "관련 책임자들 처벌될 때까지 싸우겠다"

13:07

29일 오전 7시 대구시 북구 산격동 한국패션센터 1층 로비에서 한국패션산업연구원 노동자 고(故) 손 모(57) 씨 노제가 열렸다. 지난 10월 31일 패션센터 지하주차장에서 악의적인 보도를 한 해당 기자에게 “펜을 든 살인자”라는 문자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60일 만에 장례가 치러졌다. 앞서 27일 유가족과 노조, 연구원이 고인의 죽음과 관련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등에 27일 최종 합의했다.

▲29일 오전 7시 대구시 북구 산격동 한국패션센터 1층 로비에서 한국패션산업연구원 노동자 고(故) 손 모(57) 씨 노제가 열렸다.

이날 오전 6시 30분 북구 검단동 배성병원에서 발인식을 마치고 유족과 동료, 공공연구노조 조합원 등 80여 명은 패션센터에서 노제를 진행했다.

60일 동안 상복을 벗지 않고, 손 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진상을 규명하고 명예회복에 나섰던 아들 손 모(30) 씨는 “이제는 아버지를 가슴에 묻겠다”며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서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는데 아직까지 정리되지 않은 분들이 있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나서 관련된 책임자들이 모두 처벌받을 수 있게 끝까지 싸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준규 공공연구노조 위원장은 “사회적 타살에 대해서 진상을 밝히고, 명예회복을 위해 오늘까지 60일이 됐다. 고인이 영면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좀 바뀔수 있도록 고인의 유지를 받들겠다”고 말했다.

박경욱 공공연구노조 한국패션산업연구원지부장은 “돌아가신 지 두 달 동안 억울함을 달래기 위한 진상규명 과정은 아프고 냉혹한 과정이었다. 얼마나 힘들고 억울했을지 알 것 같다”며 “하지만 당신이 천직으로 여기며 근무하던 패션센터 건물은 걱정하시던 것처럼 운영권이 넘어갔다. 풀지 못한 것은 남은 이들 몫으로 두고 가십시오. 반드시 한을 풀겠다. 이제 좋은 곳에 가셔서 직장 잃을 걱정 없고, 힘 있다고 갑질하지 않는 세상에서 편히 쉬십시오”라고 말했다.

▲29일 오전 7시 대구시 북구 산격동 한국패션센터 1층 로비에서 한국패션산업연구원 노동자 고(故) 손 모(57) 씨 노제에 참석한 고인의 아들.

노제는 약 40분 동안 진행됐고, 참석자들은 고인에게 헌화와 묵념을 하며 패션센터를 떠나는 손 씨를 배웅했다. 고인은 수성구 고모동 명복공원에서 화장한 후 경북 예천군 용문면 장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연구원의 운영하는 한국패션센터 대관 업무를 담당하던 손 씨는 쿠키뉴스 김 모 기자가 지난 10월 16일과 30일 잇따라 본인이 업무와 관련해 갑질을 하고 있다는 보도를 한 것에 항의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손 씨는 사망 직전 김 기자에게 “당신은 펜을 든 살인자”라는 내용으로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이후 유족과 노조는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전까지 장례를 무기한 연기했다.

▲10월 31일 손 모 씨가 목숨을 끊기 전 A 인터넷신문 B 기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사진=공공연구노조 제공]

지난 9일 유족과 노조는 해당 기자를 고발했고, 쿠키뉴스는 지난달 15일 사고(社告)를 통해 기사가 부적절했다고 인정하고 사과했다. 쿠키뉴스는 “해당 기자는 순수한 동기에서 관련 취재를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그러나 본지가 회사 차원에서 경위를 들여다본 바로는 가까운 지인의 대관을 돕기 위한, 즉 순수하지 못한 동기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패션산업연구원과 유족·노조 간 명예회복 방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장례가 계속 미뤄지다가 27일 노사 합의에 이르렀다. 연구원은 고인을 명예 수석행정원으로 추서하고 ‘노사 공동명의의 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고인의 죽음이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 그밖에도 손 씨의 죽음에 대해 공식적인 유감 표명, 유족에게 위로금을 전달 등에 합의가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