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남성들이여, ‘음란물’로서 여성 그만 포기하시라 /김민하

16:26

‘메갈’은 게임계의 뜨거운 이슈 중 하나이다. 게임계의 열성적 소비자들은 대다수 젊은 남성인데, 이들은 ‘메갈’을 ‘불매 대상’으로 본다. 그래서 게임 제작에 참여한 인물의 소셜미디어 계정 등을 염탐해 이들이 ‘메갈’이라는 증거를 찾아 게임 불매를 선언하는 일이 종종 있다. 얼마 전에 ‘메갈 일러스트레이터 불매 소동’도 벌어졌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젊은 남성들은 ‘메갈’을 ‘일베’와 동급인 어떤 패륜집단으로 묘사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메갈’은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므로 모든 사회적 자원을 독점해야 한다는 적대적 인식을 가진 극단적 여성주의자들이다. ‘메갈’들이 이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는 그 자신들의 외모가 남성들의 선호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쿵쾅’이라는 표현은 이런 인식을 전제한다.

열성적으로 인터넷을 이용하는 젊은 남성들은 이런 ‘메갈’들이 마치 ‘일베’가 그렇듯 사회 곳곳에 숨어 암약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의 젊은 남성들은 이들이 자신을 속여 어떤 이익을 빼앗아 가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속지 않기 위해 숨겨진 ‘메갈’을 찾으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선 ‘메갈’이 그린 일러스트가 들어간 게임을 소비하는 것은 결국 ‘메갈’에 속아 돈을 갈취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인식에서 드러나는 것은 인간관계가 상품-소비자 관계로 재정의 된 세계관일 것이다. 결국 여성주의나 ‘정치적 올바름’은 ‘메갈’들이 자신들이 이익을 얻기 위해 판매하는 상품에 불과한데, 그마저도 ‘나’에게 해를 입히는 ‘불량품’이라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실제로 여성주의나 ‘정치적 올바름’이 젊은 남성 게이머들이 즐기는 대다수 게임의 정치적 정당성을 문제 삼을 가능성과 연결된다.

최근의, 특히 일본과 중국에서 생산된 게임에 드러나는 성적대상화 코드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게임들에서 여성은 각각의 상품적 가치를 지닌 어떤 신체 부위들의 총합인 것처럼 다뤄진다. 이는 게임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이 표준화되는 방식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캐릭터가 헤어스타일, 안경 착용 여부, 가슴이나 둔부의 크기와 형태, 키, 미숙한 또는 성숙한 성격 등의 개별 요소가 조합된 결과에 불과한 것처럼 인식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묘사의 어떤 수위와는 다른 문제이다. 어떤 영화나 게임에서 두 사람의 성애장면이 단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는 점만을 문제 삼는 것은 성적엄숙주의이다. 다수의 양식있는 사람들은 그런 성적엄숙주의에 반대한다. 성적엄숙주의는 특히 여성에 대한 일반적 억압으로 기능한다. 억압적 사회에서 성애의 묘사는 지금보다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매체가 성애장면을 다루는 방식은 진지한 비평의 대상이다.

젊은 남성 게이머들의 관점에서 여성주의나 ‘정치적 올바름’의 매체 비평은 여성에 대한 성적대상화로 점철된 게임을 ‘불매 상품’으로 만들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여성주의나 ‘정치적 올바름’의 위선(?)을 폭로하고 이들이 생산한 것들을 ‘불매 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 상식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일베’를 유사한 방식으로 ‘불매 대상’으로 지목했다는 것은 젊은 남성 게이머들의 인식과 행동을 스스로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

이게 게이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이른바 ‘몰카’ 논란과 최근의 유튜버 성추행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남성들이 ‘몰카’를 찍고 공유하며 여기에 열광하는 것은 이들의 인식 속에서 여성 자체가 ‘음란물’의 지위에 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이들이 적어도 해외에서 합법적으로 제작된(물론 이러한 음란물들의 제작 과정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음란물을 입수할 수 있음에도 여전히 ‘몰카’ 문제가 불거진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결국 ‘몰카’에 등장하는 여성이 음란물 전문 배우가 아니라는 점에서 일종의 ‘레어 아이템’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최근 3년간 전국을 돌며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 등을 6천 장이나 촬영한 30대 공무원 남성의 사례가 보도된 바 있다. 전후맥락을 볼 때 이 사람이 촬영하였다는 사진은 여성들의 입장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던 것에 불과한 내용이었던 걸로 보인다. 누군가의 일상이 화면에 들어가면 ‘음란물’로 변하는 것이다. 이런 사진을 6천장이나 갖고 있었다는 것은 어떤 페티쉬의 문제로 보인다. 그런데 더 우려되는 것은 이런 사진들도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현실이라는 점이다.

▲ebs ‘까칠남녀’ 방송 갈무리.

유튜버 성추행 사건은 이런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터넷의 남성들은 비공개 촬영에서 성추행을 당했고 강제로 음란사진을 찍혔다는 유튜버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데 혈안이 되어있다. 스튜디오의 실장이 공개했다는 ‘카톡’은 유튜버가 일방적인 성추행의 피해자가 아닐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따진다면 유튜버가 성추행을 당했는지 여부는 애초 이런 사건을 다루는데 명백한 한계를 가진 현재의 수사기관과 법정의 결론을 통하게 될 것이다. 뻔히 예상할 수 있는 그 결론은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이제 인터넷의 남성들은 이를 “미투는 사기다”라는 주장의 근거로 활용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은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이다.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일부 언론은 잠재적 피해자가 100여 명에 달할 수 있다고 보도하였다. 어떤 보도는 비공개 촬영 사진을 음란사이트에 판매하고 이를 다시 유출시킨 후 특정 사이버장의사에 삭제 의뢰를 강요하는 어떤 매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사실상 음란물 생산과 다를 게 없는 비공개 촬영에 반강제로 동원되는 젊은 여성들은 넓은 의미에서 연예인 지망생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애초에 연예인이라는 직종의 본질은 스스로를 상품화하는 것이다. 희소성은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다. ‘비공개 사진’은 희소성 있는 상품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가해자들은 이를 이용해 스스로 동의한 상품화와 반강제적 음란물 생산의 차이를 미묘한 것으로 만들어서 피해자들을 기망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자유의사’란 자유롭지 않을 자유에 불과했을 뿐이다.

피해자들의 지위가 ‘모델’이 아니라 ‘음란물’이었다는 것은 이렇게 촬영된 비공개 사진들이 음란사이트에 판매되고 공개됐을 때 완전히 드러났다. 이미 그 비공개 사진들은 음란사이트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게 일부 사진작가들의 증언이다. 이렇게 ‘음란물’로 취급당한 피해자들 중 인터넷 방송 BJ나 유명 유튜버처럼 연예인으로서 지위가 좀 더 확보된 경우는 사진을 인질로 한 더 심각한 추가 피해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이중 삼중의 착취 구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남성들이 여성 일반의 존재를 ‘음란물’과 분리할 수 있을 때야 해결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남성이 ‘음란물’로서의 여성을 포기하는 실천에 나서야 한다. 이 실천의 전제는 남성이 여성을 착취하는 구조의 공범이라는 점을 먼저 인식하는 것이다. 단순히 음란물을 보지 말자는 도덕주의적 캠페인이 아니라 착취를 중단해야 한다. 결국 정치적 문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