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코로나19, 종교의 본분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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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와 특정 종교의 연관성이 밝혀지면서 지난해 2월 개봉한 영화 <사바하>가 관심을 받고 있다. <사바하>는 사슴동산이라는 신흥 종교집단을 통해 사회 깊숙이 침투한 이단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영화 제작진은 영화 장면에서 코로나19와 연관된 특정 종교를 비하했다는 이유로 해당 종교로부터 항의를 받아 재녹음하기도 했다.

▲영화 ‘사바하’ 스틸이미지

1999년 강원도 시골 마을에서 검은 염소의 울음소리가 들리며 쌍둥이 자매가 태어난다. 동생인 금화(이재인)는 저주받은 쌍둥이 언니 ‘그것’ 때문에 날 때부터 다리가 온전치 못하다. 흉측한 형체의 그것이 태어난 뒤 16년 동안 가족들에게는 비극이 끊이지 않는다. 금화가 16살이 되는 해, 영월 터널에서 여중생 사체가 발견된다. 유력한 살인 용의자는 한때 사슴동산에 몸을 담았다. 그는 신도들이 광목이라고 부르는 의문의 정비공 나한(박정민)을 만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사이비 종교를 파헤쳐 돈을 버는 종교문제연구소 박 목사(이정재)는 수상한 종교단체 사슴동산을 추적한다. 법당에 숨어들어간 박 목사는 숨겨진 경전을 찾아내는데, 이를 통해 경전을 쓴 풍사(風砂) 김제석과 그가 창시한 동방교, 풍사가 적극 후원한 소년원 출신 소년, 금화의 비밀이 점차 드러난다. 그리고 인간의 집착과 욕망은 사태를 파국으로 이끈다. 신의 구원은 없다.

<사바하>에서 종교인은 성스러운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이단의 실체를 좇는 박 목사는 종교를 가리지 않고 이단을 고발해 수고비를 챙기는 속물이다. 그렇게 번 돈으로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 “신은 어디에 있을까”라는 읊조림에는 반항심과 분노가 서려 있다. 그가 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게 된 이유는 남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할 때 가족을 잃었기 때문이다. 아내와 아이를 살해당한 게 ‘신의 뜻’이라는 것을 듣고는 믿음을 잃어버린 것이다.

깨달음을 얻어 초월적 경지에 올랐다는 동방교주 김제석도 타락한 인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신도들은 종교적 주입을 통해 살인을 서슴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종교의 존재 이유는 상처 입고 비어 있는 마음을 치유하고 풍족하게 채워주는 것이다. 하지만 신에게 기원하는 환원(還願)은 없고 교주의 욕망이 만들어낸 해석에 의해 사회를 분란과 질곡에 빠뜨린다. 일부 종교가 주는 환상은 인간에 커다란 해악을 끼쳤다. 영화 속 사슴동산 신도들처럼 교리를 맹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불사하던 사이비 종교는 2000년을 앞둔 1990년대 창궐했다.

당시 날짜를 특정한 종말론이 일부 종교단체에서 출발해, 은밀히 확산됐다. 이들 단체는 불안한 세기말 분위기와 ‘하늘에서 공포와 태양이 내려올 것’이라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 등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수백 명의 신도가 외딴 시골이나 도시 외곽 등에서 집단생활을 하며 외부와 일절 접촉하지 않았다. 신도들은 주로 경제적 문제나 남편과의 불화 등으로 가정생활에 실패한 주부들이나 외환위기로 고통 받는 청년들이었다. 한데 모여 휴거를 기다리거나, 새로운 세상을 위해 집단자살을 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20여 년 뒤 비극은 되풀이되고 있다. 한국의 코로나19 사태를 악화시킨 원인은 특정 종교활동으로 꼽힌다. 신종 바이러스의 공포가 커지는 상황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단체 예배를 하고 포교활동을 해 온 탓에 사태는 악화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은 큰 화를 입었다. 특정 종교는 코로나19 슈퍼 전파지로 지목되며 큰 비난을 받는데도,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시급한 상황에서 교단 차원의 부실한 협조, 신도들의 숨어들기 등으로 사회적 공분을 자초한다. 끝내 모습을 드러낸 해당 종교의 수장은 89세라는 나이에 걸맞게 노쇠했다.

그가 교인들에게 전파한 가르침대로 영생할 가능성은 없다. 구원받기 위해 가정도 직장도 소홀한 채 교회에 모든 것을 바친 교인들이 가엽기만 하다. 이들이 삶을 교회에 저당 잡힌 이유는 특정 종교가 그것이 옳은 길이라고 세뇌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불합리한 것을 당신이 믿게끔 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에게 잔혹한 행위를 저지르게 할 수도 있다.” 종교의 위험성을 나타낸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명인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단을 눈엣가시로 여겨온 일부 기성 교단과 타 종교는 거센 이단 혐오 기류 증폭을 부채질하고 있다. 개신교는 해당 종교를 교회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 하고, 불교계는 포교라고 표현하지 말아 달라고 강조한다. 온 국민이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와중에 보수교회를 대변하는 한 단체는 “예배는 교회의 존재 이유”라며 “교회의 예배보다 전철과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 운행을 중지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교회는 “교회는 안전하다”며 대규모 예배를 강행하고 있다. 혼돈의 한가운데서 종교의 본분을 지키는 이는 드물다. 조금씩 희생하고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없다. 메시아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