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중국 의료개혁 촉매제, ‘나는 약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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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엔 오직 한 가지 병이 있어. 바로 가난이란 병. 이 병은 치료할 수 없어.” 2018년 중국에서 개봉한 <나는 약신이 아니다(아불시약신我不是药神)>에 나오는 대사 중 일부다. 영화는 인도산 복제약을 수입해 백혈병 환자들에게 값싸게 공급한 루융(陸勇)이라는 인물의 실화를 각색했다. 장쑤(강소江蘇) 성에서 섬유공장을 운영하던 그는 2002년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당시 스위스 제약업체 노바티스가 출시한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Gleevec)은 고가다. 이 약을 1년간 구매하는 데 드는 비용은 30만 위안(약 5천만 원)에 달한다.

글리벡을 따라 만든 인도 복제약은 정품약 가격의 20분의 1밖에 하지 않는다. 루융은 인도 복제약을 복용하고 효과를 본 뒤 다른 환자들을 위해 이 복제약을 대신 사다 주다가 가짜 약을 판매한 혐의로 구속됐다. 수천 명의 환자와 가족들은 루융의 석방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고, 루용은 2014년 보석금을 내고 가석방됐다고 한다.

영화에서 주인공 청용(서쟁)은 중국 상하이에서 성인용품점을 운영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그의 가게에서 판매하는 인도산 정력제는 비아그라에 밀려 매상은 신통찮다. 변변찮은 벌이 때문에 양로원에 모신 아버지 병원비를 겨우 낸다. 아내와는 수년 전 이혼했다. 전 부인이 부자와 재혼한 덕택에 양육비 걱정은 덜었지만, 어린 아들은 주말에만 만날 수 있다. 아들과 같이 밥 먹는 게 그에겐 유일한 낙이다.

그러던 중 청용에게 백혈병 환자 여수익(왕전군)이 찾아와 인도산 백혈병 치료제 밀수를 제안한다. 스위스 정품약은 4만 위안(약 675만 원)인데 인도산 복제약은 20분의 1에 불과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남은 돈을 끌어모아 인도로 떠난 청용은 복제약 원가는 정품약의 5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고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사업 수완을 발휘해 인도 복제약 공장과 독점 계약을 따낸 뒤 대량의 복제약을 수입해 큰돈을 번다. 이때까지만 해도 청용은 돈벌이에 눈이 먼 밀수업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점차 백혈병 환자들이 왜 인도 복제약을 구할 수밖에 없는 지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중국 내 복제약 유통에 대한 경찰의 수사망이 점점 좁혀오자 다른 사업자에게 독점 계약권을 넘기고 목돈을 챙긴다. 그로부터 1년 뒤 청용은 방직공장을 운영하는 어엿한 사업가가 되어 있다. 어느 날 여수익의 아내가 청용을 찾아와 여수익이 값싼 복제약을 구하지 못해 죽어간다는 소식을 전한다. 청용은 복제약을 구하려고 수소문하지만 1년 전 판권을 사간 사업자는 도주한 지 오래다. 그 사이 여수익은 가족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죄책감을 느낀 청용은 다시 인도 복제약을 들여와 공장 출고가인 500위안(약 8만 5,000원)을 받고 환자들에게 판매한다. 여수익에게 속죄하기 위해서다.

한동안 잠잠하던 복제약이 중국 내에 다시 유통되자 경찰은 대대적 수사에 나선다. 이번에는 복제약을 소지한 환자까지도 체포해 판매책을 추궁하는데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그 중 한 할머니는 경찰에게 간곡히 요청한다.

“복제약을 수사하지 않으면 안 될까요? 저는 3년째 백혈병을 앓고 있어요. 한 병에 4만 위안이나 하는 정품약을 3년간 복용하니 약값 때문에 집을 팔고 가족들은 저 때문에 괴로워해요. 다행히도 값싼 복제약을 복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정부에서는 가짜라고 하네요. 그 약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환자가 더 잘 알지 않겠습니까? 복제약은 한 병에 500위안입니다. 이 약을 팔아 수익이 나지 않습니다. 어떤 가정이든 환자가 생기기 마련이에요. 형사님은 한평생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나요? 그들을 잡아간다면 우린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전 죽기 싫어요. 살고 싶어요. 안 될까요?”

경찰의 단속과 인도 복제약 제작공장의 폐업까지 맞물려 복제약 판매는 더욱 힘에 부치지만, 청용은 자신의 돈을 써가며 복제약을 사들여 싸게 판매한다. 백혈병 환자들은 청용을 구세주로 칭송하지만, 결국 밀수와 불법 약품 판매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다.

<나는 약신이 아니다>는 116분 분량의 코미디 영화인데 사회적 함의를 가득 품고 있다. 중국은 엄격한 검열 때문에 사회고발 영화는 보통 독립영화로 나온다. <나는 약신이 아니다>는 상업영화이면서 사회고발 영화의 형태를 띤 특색 있는 작품이다. 21회 우디네 극동영화제(관객상), 38회 홍콩금상장영화제(중국, 대만 최고의 영화), 13회 아시안 필름 어워드(남우조연상), 55회 금마장(남우주연상, 신인감독상, 각본상) 등에서 수상했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2018) 초청작이기도 하다.

흥행에도 성공했다. 중국에서만 30억 1,000만 위안(약 5,092억원)을 벌어들이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제작진은 영화 연출에 앞서 <변호인(2013년)> 등과 같은 한국의 사회고발 영화들을 참고했다고 한다.

영화는 중국 의료개혁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제도적 모순과 기득권에 이중삼중으로 발목 잡힌 중국 의약계의 암울한 현실을 보여준 덕분에 중국 정부는 서민 의료비 부담을 낮추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중국은 제약업계의 개발 역량이 부족해 수입 약품 의존도가 높지만, 자국 제약업계 보호를 위한 정부 규제로 외국 항암제 수입이 지연되고 약값도 매우 비싸다. 영화가 흥행하자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직접 나서 약값 인하를 약속했다.

리 총리는 2018년 7월 공개석상에서 <나는 약신이 아니다>를 직접 언급하면서 각 정부 부처에 의료 대책을 신속히 집행할 것을 지시했다. 먼저 약품관리법이 개정됐다. 개정안은 가짜 약의 범위와 관련해 중국에서 허가를 받지 못한 해외의 합법적 신약을 수입하는 경우 더는 가짜 약으로 처벌하지 않는 내용을 담았다. 수입산 항암제에 붙던 관세를 없애고 부가가치세를 낮췄으며, 의료보험 적용대상에 포함되는 항암제 범위도 확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