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앙지에서 띄우는 편지 / 서분숙

[기고] 경주시 내남면 부지리를 다녀오다

11:11

그곳은 좀 어떠한가요.
11일째입니다. 제가 사는 곳은 경주시 내남면 부지리와 10km 정도 거리에 있는 울산시 북구에 자리한 매곡마을입니다. 부지리는 알려진 대로 이번 지진의 파동이 가장 강하게 감지된 진앙입니다. 부지리가 자리 잡은 땅 아래를 계속 파고 들어가면 15km쯤 아래 단층이라고 불리는 갈라진 틈을 만날 수 있겠지요. 진앙에서는 여전히 지진이 진행 중입니다. 제가 사는 마을에서도 여전히 진앙의 진동을 느끼고 있습니다.

9월 12일의 지진 이후 단 한 순간도 편한 날이 없습니다. 여진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엄연한 지진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내가 발 디딘 땅 아래가 계속 진동을 울리며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더구나 어린아이나 연로하신 부모님이나 아픈 형제와 함께 산다면 그 두려움과 공포가 얼마나 더 커질런지요.

지진만이 문제라면 차라리 다행입니다. 지진은 지구가 만들어진 수 억 년 전부터 계속 반복해온 지구의 생태입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인류의 생존에 엄청난 위협과 두려움을 주지만, 태어나 가장 큰 지진을 만난 9월 12일. 저는 지진보다 먼저 인간이 만든 재난으로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아래 일지는 9월 12일부터 13일 오전까지 내가 기록해둔 일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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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6년 9월 12일 월요일 저녁 7시 40분, 첫 번째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식탁이 흔들렸고 지난 6월 이미 진도 5.1의 울산지진을 경험한 13살 막내가 비명을 질렀습니다. 지갑을 들고 주차장 안에 있는 차로 이동했습니다.

2. 9월 12일 저녁 8시 28분, 진도 5.8의 두 번째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크게 비명을 지르며 아파트 밖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차를 몰고 주차장 밖으로 나가 주변에 붕괴 위험 건물이 없는 곳으로 대피했습니다. 잠시 후 귀가하는 18살 아들을 만나 함께 차 안에 머물렀습니다.

3. 방송에서는 000 지진 전문 박사가 진도 7까지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하는 것을 보도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울산 북구에서 지름 12km 월성 원자력 발전소는 진도 6.5까지만 버틸 수 있답니다. 그 주변에는 핵폐기물 처리장이 있습니다. 저 건너편에는 울산석유화학단지가 있습니다.

4. 대피나 안전에 관한 안내 방송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시민들은 거리에 서 있거나 차 안에 머물고 있습니다. 1, 2층 커피숍은 가족 단위로 나온 대피객으로 꽉 차있습니다. 학교 운동장에 대피 천막을 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유언비어였습니다.

5. 주변 학교를 둘러봤으나 안전 대피 준비 전혀 없습니다. 울산 북구청에 전화를 거니 안전 대비에 관한 별다른 대처는 없다고 합니다.

6. 2016년 9월 13일 화요일 0시 30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캐리어에 비상 짐을 꾸리고 아이들은 잠바까지 입은 채로 잠자리에 들게 했습니다.

7. 9월 13일 새벽 1시, 계속되는 여진이 공포스러워 아이들과 함께 다시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파트 앞 전봇대에 푸른 불빛이 스파크를 일으킵니다. 큰아들이 112에 신고를 했고, 경찰이 오더니 바로 한전에 연락합니다. 30여 분 가까이 공사를 합니다.

8. 제가 119에 전화를 걸어 대피소가 마련되어 있냐고 물었습니다. 답변은 ‘없다’입니다. 이유는 진도 2에서 4 정도의 지진은 위험하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위험해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되물으니 자신도 대피소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주민들이 계속 119로 전화를 한다고 합니다.

9. 9월 13일 아침 7시,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기 위해 집으로 돌아오니 어젯밤 진도 5.8 때 책장에서 쏟아져 내린 듯 책들이 떨어져 있습니다.

10. 아침 8시 24분. 식탁 의자 다리가 흔들리는 여진이 느껴집니다…지금도 여진은 여전히 계속됩니다.

11. 9시 25분. 학교에 간 고2 아들이 지진 대피 중이라며 연락이 왔습니다. 엄마도 빨리 집 밖으로 나와 있으라고 합니다.

▲경주시 내남면 부지리 마을 입구. [사진=서분숙]
▲경주시 내남면 부지리 마을 입구. [사진=서분숙]

9월 18일 일요일 오전, 진앙인 경주시 내남면 부지리로 향했습니다. 지진에 이어 태풍까지 지나간 마을은 스산했습니다, 명절 연휴인데도 마을에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여진과 태풍을 피해 대부분 친척이 있는 다른 지역으로 대피했거나 그나마 마을에 남아있는 주민들도 대부분 마을회관에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한눈에 둘러봐도 지진의 피해는 선명했습니다. 도로는 갈라졌고 담장이 무너져 내린 집들도 눈에 뜨입니다. 누군가 마음을 담아 가꾸어 놓은 꽃밭의 담장도 무너져 있습니다. 그 와중에도 꽃들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지진 피해 현장. [사진=경주시 제공]
▲지진 피해 현장. [사진=경주시 제공]

오래된 한옥이 대부분인 마을 집의 지붕들은 기와가 무너진 곳이 많이 보입니다. 지진에 이어 비까지 온 뒤라 무너진 기와지붕 위에는 당장 비를 피하기 위한 파란색 방수 천이 덮여 있습니다.

무너진 것은 기와나 담장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부지리를 벗어나 인근 마을에 차를 멈추고 잠시 들판을 바라봅니다. 그 와중에 그래도 가을이라고 벼가 누렇게 익어갑니다. 그곳에서 올 3월에 경주로 귀촌했다는 젊은 부부를 만났습니다. 구릉성 언덕 땅을 사서 직접 포크레인으로 돌을 파내고 흙을 다듬어 평지를 만들었다는 부부의 집은 마을에서는 제법 높은 곳에 있습니다. 앞산이 한눈에 다가올 만큼 전망이 탁 트이고 인근에는 저수지까지 있어 농사일에 필요한 물 걱정까지 덜 수 있는 좋은 위치였지만, 지진 후 부부는 그 저수지 때문에 오히려 걱정이 늘었다고 합니다.

[사진=서분숙]
[사진=서분숙]

인공 댐으로 가둔 저수지의 위치가 부부의 집보다 높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비가 온 뒤라 낮인데도 물소리는 우렁찹니다. 깊은 밤, 잠들었다가 여진에 놀라서 깨는 밤에는 저수지 물소리가 더욱 근심을 무겁게 적셔 놓는 날이 늘어만 갑니다. 그의 집에서 대각선 위치에 있는 화강암 산에서는 9월 12일 지진 때 돌이 굴러떨어졌습니다.

경주는 경상도에서 화강암 산이 많은 지역입니다. 그 화강암 덕분에 신라의 뛰어난 조형 예술이 탄생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화강암 때문에 걱정이 더 늘어났습니다. 암석의 낙하를 막기 위한 울타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지진이 일어난 며칠 후 경주시에서 저수지 댐이 안전한지 검사한다고 다녀간 게 그나마 지진 후 마을의 안전 여부를 점검한 전부랍니다. 지천으로 널린 위험한 일들도 대비가 안 되는 데 원자력 발전소 이야기까지 나누었다가는 귀촌한지 채 일 년도 안 되는 부부의 속이 다 타버릴 것 같습니다.

9월 19일 밤 8시 33분. 진도 4.5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학교에서도 몇 번의 대피 경험이 있었던 덕분인지 13살 막내아들의 대피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정확했습니다. 고층 아파트가 흔들리는 중에도 재빨리 가스 밸브를 잠그고 현관문을 엽니다. 당황해서 엘리베이터 단추를 누르려는 제 손을 잡아끌고 계단으로 향합니다.

9월 21일 오전 11시 53분, 진도 3.5의 여진으로 땅이 흔들립니다. 인근 고등학교 아이들은 대피 방송이 나오기도 전에 미리 알아서 방석을 뒤집어쓰고 1층 현관으로 달려나갑니다.

가을이라고, 진앙만 벗어나면 가을 풍경이 전해지고 가을 노래가 들려옵니다. 나는 이제 계절을 잊은 듯합니다. 맑은 가을 하늘이 아니라 하늘을 보면 지진운이 있는지를 먼저 살핍니다. 바람에 나무라도 흔들리면 여진인가 싶어 가슴이 쿵 내려앉습니다. 경주시 내남면으로 예정되었던 막내의 가을 현장체험 학습은 취소되었습니다. 국민을 속이고 지어진 원자력 발전소는 오늘도 여전히 가동 중입니다. 이곳은 땅과 사람, 모두가 상처 입은 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