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민주주의를 위해 민주주의와 싸우자 / 함종호

촛불은 진화해야 한다, 재벌의 민중수탈체제를 폭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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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9 17:24 | 최종 업데이트 2016-12-29 17:26

마침내 박근혜를 탄핵했다. 국회는 주춤주춤 갈지자 행보를 했지만, 광장의 시민이 정치사회를 압도했다. 그야말로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대드라마다. 당연히 아직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 판단을 압박해야 하고 수구세력 재집권도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촛불은 계속 타올라야 한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인 것이 있다. 재벌의 민중수탈체제를 드러내는 기회로 만드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또 다른 수탈체제다

이번 촛불집회의 정치적 지향은 민주주의 쟁취로 집약된다. 민주주의는 democracy다. 정확한 번역은 ‘민주제’다. 민주제란 군주제와 귀족제 등과 대비되는 새로운 통치방식이다. 군주제가 군주라는 주체, 귀족정이 귀족들이라는 주체가 민중을 수탈하는 체제라면 민주제란 ‘있는 사람들’, ‘부자들’, ‘자본가들’이 ‘노동하는 사람들’을 수탈하는 획기적인 지배방식이다. 모든 국민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부자, 있는 사람, 자본가들이 나머지 국민을 지배하는 그들의 민주주의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시민사회가 정치사회와 분리돼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는 정치적 평등과 경제적 불평등을 교묘하게 결합한 시스템이다. 시민사회가 형식적 절차를 통해 뽑은 대표자들로 구성된 정치사회(이때 시민은 자유를 느끼지만)가 시민사회를 억압하는(이때 시민들은 경제 불평등에 빠진다) 시스템이다. 아니? 다수결로 뽑는데요? 국민들 뜻인데요? 그 다수결은 국민 개개인의 ‘진정한’ 의지가 아니라 국가와 정치사회가 하나의 제도로서 강제한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뽑도록 조종하여 그들의 지배를 공인하도록 하는 기만적 장치다. 국민은 그들의 의지에 감염되고 강제되어 마치 자발적인 것처럼 허구적인 주권행사를 한다.

또한, 선거 때 한 번 주권을 행사해서 뽑은 대표자들이 재임 기간 내내 권력을 독점하는 행위를 인정하는 정치구조다. 이처럼 국민이 가진 정치적 자유라는 것은, 사실은 부자들이 정한 규칙에 자발적으로 순응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직접민주주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그 역시 직접민주주의를 강제하는 국가와 정치사회의 규칙에 빠져버리기 때문에 별 소용이 없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누구의’ 민주주의이며 ‘누구의’ 직접민주주의인가다.

국민주권의 한계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 개념은 ‘민주주의’라는 정치용어와 어감이 잘 어울린다. 정치학에서도 동일한 계열의 언술이다. 이번 집회에서 가장 많이 통용된 정치언어이기도 하다. 시민집회와 야당 당사에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커다랗게 쓰여 있다. 민주주의를 추상적 수준에서가 아니라 구체적 수준에서 집약한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인상적이다. 문구로 볼 때 매우 잘 만들어졌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헌법이 만들어진 1948년이라는 ‘시대’가 민중의 시위와 저항이 최고조에 달했기 때문이다. 민중의 열망을 ‘수동적’으로 담아낼 수밖에 없었던 지배층의 두려움과 고민의 산물이다.(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 글에서는 어렵다)

이미 헌법학자에 의해 대한민국 헌법의 가치가 재발견되고 진보학자에 의해 진보의 중요한 규준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김제동이라는 연예인 덕에 그 가치가 대중적으로 전파된다. 어쨌든 대단하다.

▲대구시국대회에 참석한 방송인 김제동 씨.

하지만 국민주권을 쟁취 목표로 강조하면 국민이 모두 평등한 것으로 전제하는 오류를 범하게 한다. 실제 국민은 ‘부자 국민’과 ‘가난한 국민’으로 갈라져 있고, 그들 사이에는 엄연히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있는데, 국민주권은 이를 얼버무린다. 그래서 이제는 국민주권에서 ‘경제사회적으로 평등한’ 국민주권으로 나아가야 한다.

재벌은 민주주의를 짓밟는다

동네 슈퍼는 재벌에 계열화된 편의점 체제로 바뀌었다. 쫓겨난 골목 사장님은 실업자가 된다. 재벌은 비정규직으로 싸게 고용해 이윤을 크게 남긴다.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는 구사대 폭력으로 진압한다. 임금을 억제해 소비력이 떨어지자 골목 상인은 경기가 없다. 넘치는 구직자. 이제 청년은 일자리가 없다. 해외경쟁력? 대한민국 재벌이 경쟁력을 가지는 것은 실업자를 늘려 임금을 낮추고 국민의 저축인 은행대출을 독점하고 국가로부터 각종 특혜를 받아서 발생하는 경쟁력일 뿐이다. 민중이 당하는 고통에서 제일 이익은 재벌이 본다. 그래서 마침내 1대 99 사회가 완성된다.

국가의 모든 정책이 재벌의 경제성장을 돕는다. 국민경제 성장의 실체는 재벌 성장이다. 엄청난 부를 축적한 재벌은 정보와 돈을 독점해 정치권에 뇌물을 주어 추가로 이익을 갈취하여 국민 재산을 축낸다. 재벌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카르텔이 민주정 내 각 기관에 조밀하게 침투해 사실상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있다. 국회 조사에서 이재용이 ‘삼성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겠다고 했다. 바로 이 조직이 그런 못된 짓 하는 기관이다. 소위 삼성공화국의 국가정보원이다. 그래봤자 임시 모면책일 뿐, 다른 조직을 만들 것은 뻔하다. 어느 네티즌이 “해체한다고? 얼마 지나서...‘전략미래실’로 개편할 거지?”라고 비꼬았다.

정치사회와 야당은 재벌의 들러리

▲국회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오마이뉴스]

국회와 정치사회는 이런 재벌 수탈체제를 보장해주는 들러리에 불과하다. 아닌데요? 문재인, 이재명은 재벌 비판 많이 하는데요? 그들은 선량한 비판자다. 조금 질타해 약간의 각성을 촉구하는 수준이라고 할까? 노무현 대통령은 삼성에서 제공한 프로젝트를 실행하지 않았는가? 김대중 대통령은 조지 소로스라는 국제 투기 사기꾼까지 끌어들이지 않았는가? 오히려 이들이야말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 독점자본이 한국경제를 실질적으로 장악하는 시스템을 최종 완성한 인물들이다. 노무현 현상은 허구적 민주주의를 표상한다. 민중수탈체제를 구축한 그의 ‘과’는 묻힌 채, 수구세력과 싸운 그의 ‘실적 없는 공’만 지나치게 부풀려진다.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정치지도자는 민주제를 정상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재벌이 민중을 수탈하는 근본체제에는 순응했을 뿐이다. 이는 이들만의 한계가 아니다. 그 자체가 민주제의 본질이다.

촛불은 진화해야 한다

시위 참가 대중은 자신의 근본적인 바람, 즉 재벌수탈체제에서 당하는 고통을 직접 표출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를 박근혜 퇴진과 민주주의 실현에 담아내는 수준에 머문다. 하지만 그런 민주제를 지향하는 구호들은 실제 경제 불평등에서 오는 불만이라는 ‘본질’이 ‘현상’한 것에 불과하다. 이제 이를 넘어서야 한다. 문제의 원흉은 ‘민주주의의 부족’이 아니라 은폐된 ‘재벌수탈’이다. 뇌물을 받은 박근혜가 주범이 아니라 뇌물을 주고 국민연금을 수탈한 이재용과 같은 독점자본가들이 주범이다. 박근혜와 수구 반공주의 세력만이 아니라, 야당까지 포함하는 민주제 정치사회 전체가 이 체제를 옹호하는 종범이다.

이제 촛불시위는 경제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의제를 제시해야 한다. 박근혜 퇴진과 새누리당 해체에서 더 나아가, 비정규직 문제, 청년실업, 사회복지, 재벌체제 혁파의 문제들, 그리고 여기에서 파생하는 입시지옥 등의 의제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노동운동과 진보 시민사회운동이 나서야 한다

이제 촛불시위는 이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재벌과 부자들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없는 자들, 노동자·민중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정치와 행정, 교육과 문화, 그리고 매일 쏟아지는 언론의 정보에 의해 거의 완벽히 은폐되어 있으므로 이를 이해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국민은 독점재벌의 공세에 세뇌되어 있다. 실제 불만의 근본 원인은 재벌의 국민수탈에서 나오는데 마치 정치권과 대통령만의 책임인 양, 국민을 왜곡시키는 시스템이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다. 촛불집회에서의 ‘자유발언’으로는 드러내지 못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다. 진보운동은 집회의 ‘코디네이터’ 역할에서 더 적극적 위치로 나아가야 한다.

특검의 이재용 수사를 주목하고 쟁점화하자

삼성 이재용이 박근혜와 독대하고 난 후, ‘긴급 간부회의’를 열고 최순실 일가를 지원한다. 알려진 것만 300억이 넘는다. 지난해 7월, 국민연금이 수천억 원의 손실을 무릅쓰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했다. 이로써 삼성은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이재용 승계 구도를 성사시켰다.

특검이 나섰다. 삼성-박근혜의 뇌물죄와 국민연금의 배임죄를 수사한다. 삼성 창업자 이병철의 사카린 밀수사건(1966), 이건희의 삼성 X파일(2005), 이재용의 국민연금 농락사건은 용납할 수 없는 3대에 걸친 범죄행위다. 독재정권으로부터 각종 특혜를 받고, 국민의 수고와 땀을 수탈해 성장한 재벌이 범법행위도 서슴지 않는다는 사실에 우리는 분노한다.

이번에 이 정도 구호는 ‘대중적으로’ ‘내용 있게’ 등장해야 한다. 촛불 시민의 대중적 의지로 만들어 가야 한다. “재벌 기업 환수하여 국민복지 실현하자!”, “국가가 키운 재벌 국민이 환수하자!”

이제 우리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허구적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의 허구성’과 싸워야 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재벌과 부자들의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재벌의 보조자인 반공수구세력과 야당의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촛불 대중에게 이 은폐된 사실을 알리는 것은 노동운동을 비롯한 진보운동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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