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선언 바람 분 대구경북대학, ‘분노’는 ‘정치’로 이어질까?

대학가, "안 나서는 총학생회에 불만"으로 자발적 모임 생겨
시국선언 후 참여 감소...학내 정치 모임으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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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9 12:54 | 최종 업데이트 2017-01-19 12:55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 이후 대구경북 대부분 대학가에서 시국선언이 이어졌다. 총학생회가 나선 대학도 있었지만, 시국에 분노해 SNS로 모인 학생들이 학내외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이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18일 오후 7시 30분, 대구시 북구 산격동 경북대학교 앞 '모두의 카페 다다름'에서 정의당 대구시당 주최로 '2017 대구 청년 시국 토크'가 열렸다. 경북대, 계명대, 영남대 학생과 대구청소년시국선언단이 참여했다.

장태수 정의당 대구시당 공동위원장은 "대구에서 시국 활동을 주도적으로 했던 청년 학생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기 위해 마련한 자리"라고 토론회 취지를 설명했다.

'정치'가 사라진 대학..."안 나서는 총학생회에 불만"
시국에 분노한 자발적 학생 모임이 주도하다

지난해 10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영남대 총학생회는 대구경북 대학가에서 가장 먼저 입장을 냈다. 10월 27일 영남대 총학생회는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총학생회 성명서'라는 제목으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두 문장으로 된 성명을 발표했다.

서울지역 대학가에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 요구 시국선언이 이어지던 가운데 발표한 총학생회 성명서는 영남대 학생들에게는 실망스러웠다. 영남대 학생들은 총학생회와 별개로 페이스북, 구글 등에서 온라인 서명을 받았고, 700여 명 연서명으로 박근혜 대통령 하야 요구 시국선언을 10월 31일 발표한다.

이채령 영남대학생시국선언단장은 "수도권 대학들 주심으로 전국에서 시국선언이 이어졌고, 우리 학교도 학생회 차원에서 계획된 것이 있을까 마음 졸이며 기다렸다"며 "그러나 총학생회의 세줄 남짓한 짧은 글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고 말했다.

영남대학생시국선언단은 10월 31일 시국선언 후, 본격적으로 학내 피케팅, 서명운동, 대구 시국대회 참가 등 학내외 활동을 이어갔다.

▲지난해 10월 31일, 영남대학생시국선언단 시국선언

계명대도 비슷하다. 계명대 총학생회가 침묵을 지키는 사이 학생들은 네이버 밴드를 통해 시국선언 의견을 모았다. 처음 '시국선언을 위한 계명인 모임(시계모)'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학생들은 1천여 명 연서명으로 지난해 11월 2일 시국선언문을 발표한다.

시계모에서 활동하는 박수진 씨는 "시계모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문제의식을 느낀 재학생, 졸업생이 자발적으로 모인 단체인 동시에 총학생회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00여 명이 모여 시국선언을 했고, 총학생회장 역시 참여해 학생들의 뜻을 미처 읽지 못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시계모는 이후 '시국해결을 위한 계명인 모임'으로 명칭을 바꾸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2일, 시국선언을 위한 계명인 모임 시국선언

경북대 상황은 조금 다르다. 총학생회가 최순실 연설문 수정을 패러디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으나, 학생들의 반발로 철회됐다. 이후 총학생회는 10월 28일 학생, 교수, 졸업생 등과 함께 경북대 시국선언을 한다. 동시에 경북대 '2순위 총장' 임명 사태가 겹쳐 총학생회장, 교수 등이 단식농성에도 나섰다.

총학생회가 나름 적극적인 활동에 나섰으나 한계를 느낀 학생들은 '이것이 민주주의다(이민주) 학생 실천단'을 결성했다. 이민주에서 활동하는 신동민 씨는 "당시 학기 말이라는 시기와 기존 학생회가 이 이슈를 끌어안을 수 없다고 판단한 개인들이 모였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28일, 경북대학교 시국선언

학내 문제 많지만 시국에만 집중했던 시작
시국선언 후 학생 참여 줄어..."우리는 실패한 것일까?"

시국에 대한 분노로 모인 학생들은 학내 시국선언 후 점차 관심이 줄어든다. 시국 해결을 위한 활동과 함께 학내 문제도 함께 풀어야 한다는 고민도 시작됐다. 이는 3개 대학 공통적인 경험이다.

이채령 영남대학생시국선언단장은 "우려했던 대로 영남대가 조명받자 예상치도 못하게 총장 임명 문제와 재단 문제에 드리운 비민주성의 그늘을 봤다. 학내는 이 시국의 축소판이었다"며 "학내 민주주의 회복에도 초점을 맞추고 활동을 이어갔지만, 우리는 2만 명 학우 가운데 800여 명 서명만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방학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박수진 씨도 "시계모 활동 목표는 당연히 시국선언 성공이었다. 총학생회의 안일한 대응이나 총장 비리 문제를 함께 제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시국에만 집중하기로 했다"며 "가장 큰 목표이자 유일한 목표였던 시국선언이 마무리되자 참여 인원이 계속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시계모 박수진 씨

경북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동민 씨는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이민주는 학내외를 가리지 않고 활동했다. 60여 명으로 시작한 이민주 회원이 지금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며 "시국과 총장 사태로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으나, 관심은 한 방향으로 통일되지는 않았다. 시국 문제와 총장 문제가 왜 결부되어야 하는가 등 수많은 질문에 부닥쳤다"고 말했다.

▲신동민 씨

이채령 단장은 "우리는 실패한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이제 정치와 삶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앞으로 활동을 다짐했다.

박수진 씨는 "실패한 것 같다는 말에 감히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시국선언을 모집할 때 뜻밖에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생각했다"며 "잔잔한 수면 위에 돌을 던진 것이 의미 있는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동아리 형태로 바꿔 시국과 학내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정치적 모임으로 꾸준히 활동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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