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다시, 머리띠를 묶으며 /김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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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2 18:24 | 최종 업데이트 2017-03-12 18:24

다시, 머리띠를 묶으며

김수상

파면罷免될 것이 파면되고 나니
소성리가 소승리小勝利로 들린다
어제는 마을회관에서 할매들이 만세를 불렀다는데
월곡지 오르막의 아기사과나무들도
기뻐서 꽃을 빨리 매달았다는데
아직 큰 산 하나를 우리는 더 넘어야 한다
이제 겨우 작은 승리를 한 것일 뿐
우리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심판 받을 것이 심판을 받았다고
오늘이 마지막 촛불을 드는 날이라는데,
우리는 촛불을 내릴 수 없다
쫓겨날 것이 쫓겨난다고
축배를 들고 노래를 부른다고 하는데,
우리는 아직 노래를 부를 수 없다
혈맹의 의리는 지켜야한다고 가르치듯 말하는데,
우리를 전쟁으로 내모는 그런 의리라면
궁벽한 시골 양아치들보다 못한
의리라고 우리가 말해주겠다

머리맡에 핵탄두를 요격하는 미사일이 들어온다는데
미사일 한 대 값이 소성리의 땅을 다 팔아도 모자란다는데
이제 막 기지개를 켜는 보드라운 흙 가슴 위로 철조망을 친다는데
상화 시인의 말처럼 땅을 빼앗기면 봄조차 빼앗기고
꿈조차 빼앗길 텐데
우리의 기나긴 평화의 싸움을 엿같이 대하는
애비애미도 모르는 저 호로새끼들과 우리는 끝까지 싸워야 한다

혹시라도 벌레가 잠을 깰까
순한 숨을 쉬는 우리의 전답을 미국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면
유모차에 아픈 관절을 의지하며 다시 머리띠를 묶어야 한다
길가에 팔을 벌려 드러누워야 한다
누워서라도 끝까지 푸른 하늘을 응시하며 평화를 지켜내야 한다
망백望百의 할매들이 “사드 오면 질까에 들누블끼다!”고 절규하는
미국의 개들이 말아먹은 동네가 성주에 있다

봄이 오는 소야*의 벌판에 나비가 날고 새가 울어도
우리는 아직 기쁘지 않다
권력을 다 가진 양 대권주자들이 설쳐대도
우리는 그들을 믿지 않는다
242일 동안 촛불을 들어도 한 줄 기사를 써주지 않는
너희를 우리는 믿지 않는다
우리는 오로지 우리를 의지하며
참외꽃처럼 피어날 것이다

웃을 때가 아니다
아직 승리한 것이 아니다
봄이 와도 들판에 씨를 못 뿌리는 사람들이 소성리에 살고 있다
꿈결에서 식은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소성리에 살고 있다
전쟁을 부르는 괴물과 맞서 별고을의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평화란 피로 지켜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어금니를 깨물며 속으로 다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평화의 세력들이 소성리로 속속 모여들고 있다
따뜻한 봄바람도 언 땅을 녹이며
소야의 벌판으로 달려온다
삭정이 같은 나뭇가지가 꽃들을 밀어내고 있다
꽃잎 한 장 다치지 않았다
우리의 봄을 돌려다오
우리의 땅을 돌려다오
땅을 빼앗기면 꿈조차 빼앗긴다
땅을 빼앗기면 봄조차 빼앗긴다
사드는 가고 평화는 오라!
전쟁은 가고 평화여 오라!
*소야 : 소성리의 옛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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