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내 성폭력과 동성애 혐오를 혐오한다

[기고] 차우미 대구여성의전화 대표

12:51

“성폭력 피해자 해군 여대위의 억울한 죽음, 철저한 진상조사, 가해자 처벌하라!”, “군대 내 동성애자 인권탄압 중지하라!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안 발의를 지지한다!”

최근 군대 내 성폭력 피해로 한 여군 대위가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비슷한 시기 군사법원은 동성애 장교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연이어 일어난 군대 내 반인권적 사건에 대해 대구여성의전화 회원과 활동가들은 지난 5월 31일부터 6월 14일까지 2주 동안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 여군 대위의 죽음에 대한 진상조사와 군대 내 성폭력근절에 대한 대책 마련, 군대 내 성소수자인 동성애자에 대한 인권탄압 중지를 알리기 위해 사무실 인근 남구청 네거리에서 일인시위를 했다.

근절되지 않고 은폐되는 군대 내 성폭력에 여군은 죽음으로써 항거할 수밖에 없고, 단지 성적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군사법정에서 유죄 선고를 받아야 하는 군 동성애자에 대한 부당한 인권탄압에 대해 작은 목소리로라도 진상을 알리고자 했다.

보도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로 인해 여 대위가 자살에 이른 이 사건에 대해 해군 관계자는 “그간 성폭력 예방 교육을 강화하고, ‘회식 지킴이’ 제도도 도입하는 등 성폭력 예방에 노력했지만 그런 일은 어디에나 있다. 술 먹고 부대 밖에서 그러는 걸 어떻게 막나”라고 밝혔다.

해군 관계자의 이 같은 말은 성폭력이 근본적으로 성차별적 위계 구조와 권력 관계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또, 회식지킴이로 군대 내 성폭력을 근절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은 매우 표피적이고 안이하다.

회식지킴이는 군대 내 성폭력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제도이다. 그러나 회식지킴이 제도는 오히려 군대 내 성폭력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나 대책 없이 여군을 남군과 같은 자율성과 인격을 가진 동등한 존재가 아니라 문제가 일어날 소지가 있어 통제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삼는 인권 침해적 요소를 지닌 제도이다.

군 당국은 육군, 해군, 공군에서 제도적 방안으로 성고충상담관, 양성평등상담관, 병영생활상담관 제도를 도입해왔지만, 성범죄 처리 과정에 대한 여성군인의 신뢰도는 매우 낮다. 2014년 군인권센터 조사에 따르면, 여성군인 85%는 성범죄 처리 과정에 대한 군검찰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 징계위원회나 헌병대에 대해서는 90% 이상이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때문에 90%가 성폭력 피해 시 대응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를 ‘말할 수 없는’ 환경에서 수많은 ‘A대위’들은 침묵과 좌절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한편 지난달 24일 육군 보통군사법원은 또 다른 A대위에게 ‘군인 또는 준 군인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군형법 제92조 6조항을 근거로 법 위반을 인정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군인권센터는 “A대위의 행위는 업무상 관계없는 상대와 사적 공간에서 합의로 이뤄진 성관계였다. 상대가 동성이란 이유로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에 범죄의 낙인을 찍은 것”이라며 군사법원의 판결을 비판했다.

이번 판결은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근거해 “동성애 군인을 색출·처벌하라”는 지시가 발단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소수자들은 이제 아무 때나 색출 당해 사생활을 추궁당할지 모르는 두려움까지 떠안게 된 것이다.

군 당국은 기강 확립과 군대 내 성폭력 방지 등을 이유로 동성애자 군인의 처벌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나 군대 내 성폭력은 오히려 동성애 혐오로 인해 비동성애 군인의 동성애자 군인에 대한 성폭력이 더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 기강 해이는 동성애자 군인들 탓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에 대한 무감각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군대문화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강한 집단일수록 권력 관계에 의한 폭력이 더 만연하다. 은폐된 여군에 대한 성폭력이 그것을 말해 준다.

199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동성애가 질병이 아님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2012년 유엔 국가별 보편적 정례인권검토(UPR)에 이어,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위원회(자유권위원회)도 2015년 11월 이 조항을 폐지하라고 권고했다.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규약위원회(사회권위원회) 역시 2016년 발표한 일반논평에서 ‘동성 간 합의한 성관계 처벌 규정은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5월 25일 김종대 정의당 의원 등 10명의 국회의원이 낸 “군형법 92조의6 폐지안”을 적극 지지한다. 그들의 표현처럼 “군형법 92조의6은 문명국가의 수치”이다. 비록 군인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그리고 평등권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단지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군사재판에 서게 하는 야만적인 국가폭력은 지금 당장 멈추어야 한다.

군대 내 성폭력의 근절을 위해서는 군대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한 젠더 차별과 소수자 차별에 대한 근원적인 인식 개선과 대책이 있어야 한다. 아울러 대한민국 군대가 성차별과 인권침해 없는 민주적인 군대로 거듭나기 위한 시스템 마련이 필요할 것이다. 군대 내 성폭력과 소수자 차별 근절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성평등교육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시민의식과 인권의식에 기반한 군인정신 확립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의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