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준의 육아父담] ‘큰일’하는 아빠의 애환

내가 해온 일 중 가장 가치 있는 ‘큰일’이 바로 육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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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6 17:18 | 최종 업데이트 2017-06-16 17:18

“요즘 뭐해요?” 오랜만에 만난 이들이 묻는다. 생각해보니 딱히 ‘뭘’ 한다고 말하기에 마땅치 않다. 나름 바쁜데 말이다. 정체성 혼란 때문일까? 애매한 상황 탓일까? 대충 둘러대며 말한다. “애 키우고 있어요.” 그러면 십중팔구 이런 답이 온다. “큰일 하시네요.” 사실 맞다.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하다 보면 하루가 쏜살같다. 끔찍이도 사랑하는 자식들 때문에 옴짝달싹할 수 없으니 큰일은 큰일이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싶어도 피곤함과 체념에 쩔어 내 인생은 안중에 없으니 그것도 참 큰일이다.

나는 아빠다. 일곱 살 딸, 세 살 아들을 둔 금메달 아빠다. (딸, 아들은 금메달, 딸, 딸은 은메달, 아들, 아들은 목메달…) 남편이 딴에는 ‘큰일’ 한다고 돈 못 벌고 빨빨거리며 쏘다니는 통에 아내는 결혼 후 지금까지 직장을 다니며 가정경제를 책임졌다. 아내의 꽉 짜인 근무 환경과 꽤 걸리는 출퇴근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나는 어느 순간부터 육아 대부분을 맡았다.

[사진=박석준]

어쨌든 ‘큰일’은 나의 숙명인 셈이다. 나도 요즘에는 돈을 번다. 아이들을 키우는 데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돈벌이도 육아도 어떤 것도 만족스럽지 않지만 어쩌겠냐. 맞벌이해야만 겨우 살 수 있는, 엄마를 빼앗아간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탓할 수밖에.

매일 아침 아이들 등원길에서 유치원, 어린이집 버스를 기다리는 여러 무리의 엄마와 아이들을 만난다. 아빠와 나온 집은 우리뿐이다. 경험상 이럴 땐 착한 척하는 게 장땡이다. 나름 하이톤으로 인사를 해보고(나는 보통의 남자보다 중저음이다.) ‘해치지 않아요’ 선량한 표정으로 웃음도 지어보지만(나는 보통의 남자보다 인상이 강한 편이다.) 그것도 잠시, 다시 찾아오는 어색함은 어쩔 수가 없다.

엄마들은 수다를 떨며 애들 얘기하기 바쁘고, 아이들은 뭐가 그리 신났는지 깔깔거리며 뛰어다니기 바쁘다. 이 동네의 조용한 사람은 어색한 아빠, 즉 나뿐이다. 이런 일은 등하원길, 놀이터, 동네마트 등등 생활 곳곳에서 수도 없이 반복된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주눅 들고 소외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평소 말 많기로 소문난 사람이 말이다. 이렇듯 아빠의 육아는 엄마의 육아와는 또 다른 애환이 있다.

신경 쓰려 하지 않아도 호기심과 궁금함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저 집 남자는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인지 궁금할 게다. 그 궁금함이 때로는 아내에게 부러움의 말로 돌아오기도 한다. “남편이 많이 도와줘서 참 좋겠어요. 우리 남편은 집에 오면 아무것도 안 해요.”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서 신랑은 은근슬쩍 뭐하냐며 물어보지만 입 무거운 아내는 일체의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를 밝히지 않으니 어둠의 자식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난 오늘도 육아스킬을 쌓으며 ‘샤이파파’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아파트 단지 안 공원에서 애들과 놀고 있었다. 딸의 유치원 친구 엄마가 쭉 돌아가며 엄마들에게 아이 생일파티 초대를 하고 있었다. 무심한척 했지만 이미 모든 신경은 그쪽으로 쏠려있었다. 혹시 마주치지 못해서 초대를 못 받을까봐 ‘다음에는 나겠지’ 하면서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애타게 기다렸지만 결국 그 날 우리 딸은 초대받지 못했다.

그 좌절감이란… 마치 내가 생일 초대를 못 받은 것 같았다. 엄마가 있었으면 초대를 받았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과 상처받을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래도 다행히 뒤늦게 아내를 통해 생일초대를 받았고, 생일파티를 다녀왔지만 그때 난 아빠의 육아를 실감했다. 나의 어색함과 불편함을 넘어서 아이들이 힘들어 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보니 어색함과 불편함은 결국 스스로의 편견에서 기인한다. 내가 먼저 말붙일 용기는 왜 없었을까? 육아는 집에서 노는 사람, 할 일 없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그렇게 보일까봐 두려운 것이 아닐까? 그것도 남자가 말이다. 사실 육아가 노는 사람(?)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도 아니고 아빠든 엄마든 한 사람이 도맡아 해야 하는 일도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육아 아닌가? 밤잠 설쳐가며, 떼쓰는 아이 달래가며 혼내가며, 아픈 아이 들쳐 업고 병원 다녀가며 아플 새도 없이 그야말로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다름 아닌 육아 아닌가 말이다.

육아는 사회의 책임이라고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요즘 같은 세상에 아이 키운다는 게 어디 보통일인가.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이제는 엄마아빠들이 좀 더 당당해지자. 육아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껏 ‘부심’을 가져도 된다. 애나 키우고 있다며 자존감을 떨어뜨릴 필요도 전혀 없다. 적어도 내가 해온 일 중 가장 가치 있는 ‘큰일’이 바로 육아다. 그리고 나는 역시 큰일 할 멋진 아빠다.

[사진=박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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