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 불법 만든다”

대구경북 이주노동자 월평균 298시간 일한다

12:36

한국에서 만난 아내와 낳은 자식 국적이 파키스탄입니다. 나 빼고 모두 파키스탄으로 강제 출국 됐어요. 한국에서 면회도 못 합니다. (파키스탄 이주노동자 후세인 씨, 38)

후세인 씨는 20대에 한국에 와서 금속 제조공장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일하다 손가락이 잘려나가기도 했지만, 급여에 반영되지 않는 잔업까지 해가며 열심히 일했다. 부인과 자식을 먹일 밥벌이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후세인 씨가 이주노동자 강제 추방에 반대하고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후세인 씨가 이주노동자 강제 추방에 반대하고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고용허가제가 시행 11년, 후세인 씨는 가족을 한 번 보는 것이 간절하다. 하지만 휴가도 부족할뿐더러, 고용허가제가 가족 동반을 금지하기 때문에 가족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요원하다.

이 손이요? 자동차 부품 만들다가 잘렸습니다. 그래도 일 잘합니다. 한 달에 잔업만 100시간 합니다. 급여로 인정 안 됩니다.?

노동조건도 열악하다.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주노동자로서 주 40시간 노동은 꿈도 꿔본 적 없지만, 급여로 인정되지도 않는 잔업을 하고 있다.

16일 오후 3시, 대구시 중구 2·28기념중앙공원에서 “고용허가제가 아닌 대안제도”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대구경북지역 제조업 이주노동자 노동조건과 고용허가제 실태 관련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대구경북지역 연대회의’는 2015년 5월부터 7월까지 대구경북지역 제조업 이주노동자 210명에 대해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16일 228기념중앙공원에서 대구경북지역 고용허가제 제조업 이주노동자 실태 설문조사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16일 228기념중앙공원에서 대구경북지역 고용허가제 제조업 이주노동자 실태 설문조사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응답자의 43%가 주야 맞교대를 하고 있으며, 80%가 토요일에도 일하고, 18%가 일요일에도 일했다. 이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약 11시간이며, 야간근무를 포함하면 12시간이 됐다. 주말 평균노동시간은 약 9시간으로 나타났다. 이를 월평균노동시간으로 환산하면 298시간이 되는데, 일주일에 68.5시간 일하는 셈이다.

연대회의는 “하반기 상용근로자 ?월평균 노동시간이 175.6시간이니 이주노동자들이 한국노동자들보다 월 122시간을 더 노동하는 것이다. 응답자 평균임금은 약 171만 원으로, 최저임금이거나 그 이하인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설문조사 결과, 고용허가제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특히 근로계약과 근무조건이 다르다고 응답한 비율이 46.7%로 나타났다. 계약과 다른 노동조건은 임금(21.9%), 노동시간(21.4%), 작업내용(14.3), 기숙사 제공(11.4%), 식사제공(13.3%), 휴식시간(15.2%), 기타(4.8%)로 나뉘었다.

또, 고용허가제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만들어낸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된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62.3%가 체류 기간이 만료됐기 때문이라고, 18.2%가 사업장 이탈 때문, 9%가 3개월 이상 일자리를 못 찾았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사업장 변경 횟수를 초과한 경우는 3.9%다.

이주노동자가 미등록이 되는 두 번째 사유인 사업장 이탈의 경우, 그 사유는 64.3%가 “임금이 낮고 노동조건이 나쁜데도 사업장 변경을 하지 못해서”라고 답했다. 그 외 28.6%는 “폭언, 폭행, 성폭력을 당했음에도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없어서”라고 답하기도 했고, 나머지 7.1%는 “사업장 이탈을 하지 않았는데 사업주가 고의로 이탈 신고를 했다”고 답했다.

이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었을 때 가장 어려운 점으로는 단속에 대한 두려움(31.6%), 노동권 침해가 쉬움(21.5%), 의료서비스 접근 어려움(19.6%) 등의 순서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으로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없으며(12.1%), ▲원하는 사업장을 선택할 수가 없고(11.4%) ▲가족과 함께 살 수 없으며(10.0%) ▲체류 기간이 짧고(9.7%) ▲노동조건을 사장 마음대로 정하는(9.7%) 등의 문제를 꼽았다.

16일 228기념중앙공원에서 열린 대구경북 이주노동자 결의대회
▲16일 228기념중앙공원에서 열린 대구경북 이주노동자 결의대회

연대회의는 “입국 전에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현행 제도는 사업주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입국 후 실제 근로조건이 다르다는 결과를 볼 때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이 크게 침해되고 있다. 입국 후 근로계약을 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체류 기간 제한을 풀면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영구 체류할 것이라고 하지만, 응답자 41.9%가 체류 기간이 종료되면 본국으로 돌아가길 원한다고 했다. 노동권 보장을 위해 체류 기간도 본인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이주노동자들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사회와 경제에 크게 기여한다”며 “이주노동자가 원하는 제도에 대해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개최 후 대구경북이주노동자 결의대회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