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미화원 (5)

일한 햇수가 불어난다고 여느 직장처럼 봉급이 올라가지를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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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7 16:33 | 최종 업데이트 2015-08-27 16:34

22.
내가 미화원이라는 사실을 아는 K 선생이, 이곳 백화점에서 결혼기념일을 보냈다고 자랑한 적이 있다. 축하한다는 인사말 끝에, “지척에 있는 D백화점을 가시잖고.”라는 우스개를 하고 말았다. 고객이 지나간 흔적을 지우는 게 고역인지라, 농담 속에 진심이 아주 없었다고는 말 못하겠다.

세상에 미제사건이나 영구미제사건이 있다는 건 참으로 이상하다. ‘일상’을 해보면 곳곳에 자기 흔적을 남기는 게 사람이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단추를 누르거나 에스컬레이터를 짚으면 손자국이 남는다. 손자국에는 기름기가 배어있게 마련이어서, 시간이 지나면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들어진 사물들은 시커멓게 변색이 된다. 손자국이 눈에 띄는 즉시 지워야 하는 이유다. 화장실에서 기저귀를 갈아주는 젊은 엄마들은 걸음마를 할 정도의 아이면 거울 쪽으로 세워놓은 채 일을 처리한다. 거울이 온통 고사리 같은 손자국으로 더럽혀지는 건 시간문제다. 손을 씻고 난 후 물기를 털어서 튄 거울의 물 자국, 화장을 고치다 묻힌 거울의 분 자국이나 루주 자국도 지워야 한다. 정수기 근처에 흘려놓은 물을 닦아야 하고, 신발자국을 닦아야 하고, 오늘처럼 비라도 내린 날이면 우산에서 뚝뚝 떨어진 물을 따라다니며 닦아야 한다. 게다가 내가 일하는 층은 백화점답지 않게 화장실 입구 쪽 복도가 모조리 창이다. 실내에서 맴도는 게 갑갑하고 지겨운 아이들은 또 거기에 매달려서 밖을 내다보며 논다. 창에 당연히 손자국이 남고, 그걸 닦아내는 건 고스란히 내 몫이다.

비질도 장난이 아니다. 리스킹(기름걸레)으로 종일 밀고 다니지만, 쓸어내도 쓸어내도 여자들의 길고 구불구불한 머리카락, 옷에서 떨어진 먼지와 실밥, 신발에 묻혀 들어오는 오물 등은 끝이 없다. 매장 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과 남자 소변기에 떨어진 거웃을 통틀어 우리는 ‘터러기(털)’라고 부르는데, 그놈의 터러기를 모으면 과장해서, 하루 만에 털쉐터를 한 벌 짤 수도 있을 거다. 그리고 이 일련의 일들은 우리의 일과 중에서 매우 쉽고, 가볍고, 사소한 노동에 불과하다.

23.
여름이 확실히 한풀 꺾인다는 느낌의 비가 종일 내렸다. 비가 그친 뒤의 하늘 저편으로, 얼핏 가을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진 것 같기도 하다. 처음 작정과 달리, 신학기를 맞으면서 시작한 환경미화원 일을 이학기가 코앞인 지금도 하고 있다. 그동안은 사람의 왕래가 번다한 백화점에서 일하는 것치고는 희한하게도 아는 사람과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틀 연속 누군가와 마주치는 불상사(?)를 당하고 있다.

한 사람은 주차장에서 뒤를 돌아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내가 급격히 마른 것을 두고 민망하게도 “예뻐졌네.”라고 돌려 말해주었다. 하필 화장실 청소를 하다 만난 지인은 내 쪽에서 먼저 손짓하며 부르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요?”라는 표정을 짓기까지 했다. 나라는 걸 겨우 알아차린 그녀는 “살이 너무 빠져서 몰라보았어요.”하며 놀라워했다. 앞의 선생은 다시 지나가는 투로 “웬 도깨비짓이요?”라고 질문을 우회했고,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했던 뒤의 사람은 역시나 직설적이게 “왜 이런 데서 일하세요, 무슨 일이에요?”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들이 내 외모에 놀란 것이 무리는 아니다. 다섯 달 만에 체중이 무려 7킬로나 줄었기 때문이다. 돌아와 씻을 때마다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운 여자 마냥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는 것도 걱정스럽다. 이러다 탈모가 오면 어떡하나 싶다. 일이 힘에 부치는 걸 절감하다?보니, 책을 읽다 발견한 이러한 구절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1938년부터 39년 사이에 진행된 헤겔에 대한 콘퍼런스에서 코제브는 역사와 인간의 종언을 행위의 종언으로 풀어 설명한다. 행위의 종언이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유혈적 전쟁과 혁명의 종언을 의미하며, 이와 더불어 세계와 자기의 이해로서의 (사변적) 철학의 사라짐을 가리킨다. 이러한 마르크스-헤겔적인 역사의 종언이 실현되었다는 사실을 코제브는 1948년에 미국을 여행하면서 확인한다. 거기에서 그는, 이미 ‘계급 없는 사회’에 도달하여 그 구성원들이 필요 이상의 노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원하는 물질적 풍요를 충분히 스스로에게 제공할 수 있는 사회를 목도한다.(김홍중, 『마음의 사회학』)

앞 뒤 맥락을 무시한 채 인용 부분만을 현실에 적용해보자면, 지금의 한국은 새로운 ‘계급 사회’임이 분명하다. 공교롭게도, 고대 아테네의 테테스 계층(최하층 노동계층)과 우리의 저소득 계층은 그 비율이 정확히 일치한다.

아무튼, 드러내거나 드러내지 않은 채 놀라고 궁금하게 여기는 두 사람의 반응을 직접 겪자니, 형편이 나빠진 이들이 왜 자꾸만 움츠러들고 숨어 지내는지 이해가 간다.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 되는 처지란 생각보다 괴롭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비평가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돈’이 필요한 곳이 이 자본주의사회이기도 하다.

24.
“우리나라의 시는 지게꾼이 느끼는 절박한 현실을 대변해야”한다는 신동엽의 주장에 대해?김수영은 지게꾼을 대변하는 시인이 아니라 ‘시를 쓰는 지게꾼’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에게 시작(詩作)은 머리나 심장으로 하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하는, 즉 지게꾼 자신이 온몸으로 살아내는 현실의 삶을 쓰는 거다.

지금까지의 「야간 미화원」을 읽고 난 후, 주변에서 내게 하는 조언은 저 ‘김수영’의 의견, 그중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에 가깝다. 글 쓰는 이의 직업이 미화원이라고 말은 하지만 비평가의 목소리가 크다고 그들은 하나같이 지적한다. 달리 말하자면 미화원이 도무지 미화원답지 않다는 거다. 여기서 미화원다움이 대체 어떤 거냐는 의문이 남지만, 이 문제는 간단히 대답할 성질이 아니니 다음으로 미루는 게 옳겠다.

주지하다시피 김수영은 ‘포즈’를 극도로 혐오했다. 대놓고 말은 못해도, 아마 지인들은 내 글이 먹물 든 지식인의 ‘포즈’라는 불만을 가진 듯하다. 미화원이 못 되면서 미화원인 척하는 ‘고급 속물’, 다시 말해 내 글에 깃들어 있을 자만심과 허위의식에 대한 혐의가 그들의 속내지 싶고, 그런 염려가 나는 기껍다.

하지만 포즈란, 인위적으로 취하는 몸가짐이나 일정한 태도를 일컫는다. 연예인이 카메라 앞에서 자세를 취하듯, 포즈란 본래의 자기가 아닌 부자연스러운 연출이다. 요컨대 현재 내가 환경미화원으로 일한다고 해서 갑자기 내 내면이 비평가에서 미화원으로 바뀔 리가 만무하다. 그러므로 현재의 나는 구차한 생활의 고단함과 밥벌이의 눈물겨움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비평가라는 게 정확한 말일 거다. 비루한 목숨, 굴욕적인 처지의 작가, 파산의 불안을 동력으로 일하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 비평가가 사라지고 미화원만 드러난다면, 그것이야말로 전형적인 ‘포즈’이지 않을까?

[출처=https://www.flickr.com/photos/jaydaddy4u/]
[출처=https://www.flickr.com/photos/jaydaddy4u/]

25.
출근하면서 충격으로 다가왔던 건 동료들의 인상이었다. 지금은 예사로 보이지만, 처음에는 이들의 표정이 어찌나 딱딱하고 침울한지, 진부하나마 ‘시커먼 어둠’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았다.

서양인들에 비해 얼굴 표정으로 감정을 표현하기 서툰 게 동양인들이라고는 해도, 동료들의 무표정은 그 정도가 심하다. 반장이나 감독이 지시사항을 내리면 이들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아예 고개를 엉뚱한 방향으로 돌리기 일쑤다. 그러면서 길게 늘이며 대답하는 단답형의 “네-에!” 심지어 나는 (조금도 길지 않게) 서술형으로 말하는 바람에 ‘튀는 여자’로 이들의 눈밖에 벗어난 적도 있다.

한번은 자꾸 지하 1층에 보내기가 미안해진 반장이 해당하는 네 사람한테 가위바위보 게임을 시켰다. 진 사람 둘이서 가라는 말이었다. 허나 불려 나온 누구도 게임을 하려 들지 않았다. 반장의 유머가 이들에게는 뜬금없었고, 유머에 동참하거나 장난을 치기에 그들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조회할 때도 개인적인 의견이나 질문은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참견하는 오지랖이나 불만의 표시로 받아들여지기 일쑤라 금기에 해당한다. 말이 한두 마디 오간다 싶으면 어이없을 정도로 곧바로 언성이 높아지고, 욕설이 난무한다. 대화가 아니라 감정만 문제 삼는 언쟁이 될 게 빤하니,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면 말을 얼버무리거나 대답을 회피하게 된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뭐든 궁금하게 여기지도 말고, 묵묵히 일하다가 퇴근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체념인지 초탈인지 모를 태도가 이들에게는 뼛속 깊이 배여 있어서, “다른 데 가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라거나, “돈 벌기가 그리 쉽나.” 혹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는 말을 하도 들어서 나는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말과 감정은 흡사 못이나 용수철이다. 억누르거나 참을수록 부정적으로 찌르고 느닷없이 튀어 나온다. 이들은 앞에서 입을 다무는 대신 뒤에서는 험담으로 시간을 죽인다. 결국, 남의 흠을 들추고 헐뜯었다는 행위 그 자체가 또 다른 ‘비밀’로 돌아다니게 마련이다.

넌지시 일러바친 말이나 털어놓은 불만이 말썽을 일으켜서 사람들이 싸우고, 떠나고, 반목한다. 반장이나 감독도 성인(聖人)이기는커녕 귀 얇은 사람들인지라, 그들의 마음에 담아두는 말에 따라 상대에 대한 호불호가 나뉜다. 그건 때로 작업을 지시하는 과정이나 방식을 결정하기도 한다. 반장이나 감독이 인력을 플러스로 관리하는 유형이면 좋겠지만, 두 사람은 아쉽게도 마이너스 유형을 선택한 모양이다. 예컨대 분위기를 흐리거나 다루기 힘들다고 여겨지는 누군가가 있으면 속된 표현으로 갈구어서 내보내는 눈치다. 몸을 사리지 않으면 당장 피해가 돌아오니, 사람들은 밥 한 끼 함께 먹는 것조차 쉬쉬한다. 네 편 내 편을 나누고, 말이 말을 만들어내는 건 어디에나 똑같은 한국인들의 고질병 같다. 그걸 여기까지 와서 새삼 확인하고 있다.

26.
일한 지 고작 다섯 달인데, 이러다 어쩌면 고참(古參)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일이 그야말로 잦아서다. 청소부를 하려 들었을 때는 다들 오죽한 형편이었겠으나, 돈은 박한데 일이 힘들다 보니 좀 더 나은 직장은 없을까, 그만 때려치울까, 날마다 고민하다 홧김에 실행에 옮긴다. 그만둔 이들 대부분이 그렇다.

일한 햇수가 불어난다고 여느 직장처럼 봉급이 올라가지를 않는다. 법으로 정해진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계산한 게 봉급의 정확한 액수고, 그것으로 끝이다. 보너스도 없고 휴가는 언감생심이다. 때문에 이러한 직종의 사람들은 한 달 치 봉급이 퇴직금으로 나오는 일 년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러다 그 일 년이 지나면 ‘언제든’ 나갈 각오가 선다. 이미 마음이 ‘뜬’ 사람들은 대수롭잖은 일에도 쉽게 사직서를 쓴다. 스무 명 조금 넘는 인원에서 내가 들어오고 나간 선임(先任)들만 벌써 다섯 명이다. 이번 달이 지나면 또 누군가가 그만둘 터이다. 하루 얼굴을 내밀었다가 손을 내두르며 도망친 사람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만둔 이들 중에서 두 사람은 나와 특별히 얽힌 언니들이다. 한 사람은 신참인 내가 고참 만큼이나(?) 일하도록 가르쳤고, 다른 한 사람은 어딘가 배운 티가 난다는 이유로 나를 대놓고 미워했다.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평소 내 말투나 행동이 지적이거나 반듯한 모양과는 거리가 멀어서, 내심 어리둥절했다. 아무튼, 지금은 둘 다 어느 종합병원에서 나란히 청소 일을 한다고 들었다.

사회성이 부족한 탓에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자주 받고 소외도 쉽게 경험한다. 누군가 나를 미워한다고 해서 그를 당장에 미워한다면 내 주위에는 가족과 절친들 외에 아무도 남지 않으리라. 마음이 넓어서라기보다 상처받지 않으려는 본능적 ‘거리두기’로, 나는 그 언니 및 언니와 통하는 몇몇의 눈총을 애써 모른 척했다. 아무튼, 나를 공공연하게 미워한 언니는 시끌벅적한 사내처럼 활달한 성격이었는데, 그만두기 일주일 전부터는 말수가 줄고 방에서는 전과 달리 누워만 지냈다. (‘25’에 나오는 이유로) 등 떠밀리듯 그만두는 바람에 겪는 우울증으로 보여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했다.

에스컬레이터(E/C) 일을 맡아 하다가, ‘이천 원’이 빚은 선임과의 갈등으로 그만둬버린 천 씨 총각을 제외하고, 나머지 언니들 네 사람은 반장이나 감독의 지나친 ‘언사’가 발끈하게 된 불씨였다. 살기가 팍팍한 사람들일수록 감정에 죽고 감정에 산다.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뭔가를 느끼거나 느끼더라도 제대로 표현할 줄을 모른다. 싸구려 유행가나 막장드라마, 휴대폰의 ‘카톡’에 뜨는 음담패설이 이들과 문화 사이를 매개하는 전부다. 문화적 경험이라기보다 차라리 생리적인 배설 행위에 가깝다. 교양은 분명 후천적이다. 감정 역시 습관적인 면이 있다. 교양과 감정을 다듬고 키우기에 문학만한 예술도 드물다. 나는 내가 아는 문학을 이들과 공유할 수 없음이 가슴 아프고, 오늘날의 문학이 이런 이들을 소외하는 현상이 그저 난감하기만 하다.

27.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직장을 옮기는 G는 딸 하나를 데리고 들어온 조선족 여인이다. 그녀는 나와 동갑이다. 둘이서 지하 1층을 청소하다가 잔소리가 잦은 G에게 성을 낸 적이 있는 나는, 그게 마음에 걸려서 싹싹하게 굴다 보니 어느새 그녀와 친해졌다. 가만히 뜯어보면 이목구비가 동글동글하고 예쁜 G는, 고생을 많이 한 탓에 나보다 10년은 나이가 들어 보인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 G가 내년에 드디어 임대주택에 입주하게 되었다. 딸이 아파트에 살게 되어서 기뻐한다며 환하게 웃던 G. 그녀는 여태껏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돈이 아깝고 시간도 모자랐다고 했다.

퇴근 후, G와 나는 그녀와 같은 달에 들어온 K 언니를 데리고 예정된 이별을 핑계로 두어 번 음식을 사 먹으러 다녔다. 백화점 맞은편에 있는 24시간 김밥집, 백화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24시간 국숫집이 그동안 우리가 찾은 식당들이다. 오늘 새벽엔 멋 부리기 좋아하는 H 언니도 동행을 했다. 가까운 재래시장에는 새벽에 문을 여는 보리밥집이 많다는 말이 나왔다. 보리밥에 구미가 당긴 우리는 당장 그곳으로 몰려갔다. H 언니는 G가 나가는 게 섭섭하다며, 그릇을 채 비우기도 전에 14,000원을 덥석 계산했다. 3,500원짜리 보리비빔밥 한 그릇을 먹고 돌아서는 게 미화원들의 이별 방식이다. G야, 어딜 가든 아프지 말고 잘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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