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글라스 해고자 남기웅, 공장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다

4일 경산 호두책방에서 '들꽃, 공단에 피다' 북콘서트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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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5 12:21 | 최종 업데이트 2017-11-05 13:31

구미 국가4산업단지로 향하는 아침 통근 버스. 남기웅(34) 씨가 피곤한 몸을 끌고 버스에 탔다. 앉을 자리가 있나 둘러봐도 찾을 수 없다. 공장이 멈추지 않도록 3교대로 근무해야 했기 때문에 몸은 아침부터 무거웠다. 공장에 들어가면 기계적으로 라인에 선다. 세정기를 거쳐 나온 3Mx3M 크기의 글라스 원작 중 불량을 잡아내 잘라내는 일을 종일 반복한다.

지루한 작업이지만, 정신을 놓아서는 안 된다. 위험했고, 관리자에게 잘못 걸리면 빨간 조끼를 착용해야 했다. 세금 감면이다 뭐다 혜택을 받은 회사는 점점 더 많은 상품을 찍어냈다. 인력 충원은 없었다. 생산량만 늘어나니 업무량도 늘어났다.

유일하게 눈에 생기가 도는 시간은 쉬는 시간이다. 공장이 멈추지 않으니, 노동자들은 알아서 조를 짜 20분 만에 밥을 먹어야 한다. 밥 시간이 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식고 굳은 도시락을 받기 일쑤였다. 최저임금이. 잔업이 있는 날이면 피곤했지만, 그래도 먹고 살기 위해 억지로 했다. 잔업을 마치고 밤늦게 귀가하는 날, 통근 버스를 타면 똑같이 피곤한 얼굴로 사람들이 늘어져 있다. 역시 자리는 없다. 피곤했다.

남기웅 씨는 평생 비정규직을 진전하며 불안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앞서 LG전자 냉장고 사업부 사내협력업체에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하청업체 관리자가 나오더니, 공장 사정상 몇 명이 나가야 한다더라고 전했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끼리는 서로를 위로하지만, 정작 자기가 해고되면 어떨까 하고 불안하게 되는 것이다. 관리자는 한 마디 덧붙인다. "해고되지 않으려면 노력하세요"

▲남기웅 씨

이전 업체는 하루 14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과 나쁜 작업 환경 때문에 그만뒀다. 2013년 11월 구미 아사히글라스(아사히초자화인테크한국) 공장으로 들어왔다. 아사히글라스 하청업체인 GTS로 직장을 옮기고 나서도 불안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밥 먹는 것도 불만이 쌓였다. 2015년, GTS에서도 해고자가 몇 명 나올 거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몇몇에게 회사가 사직을 권고했다. 남기웅 씨는 다시 불안했다. 5월 29일, 하청업체에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노조는 무조건 불법인 줄 알았다. 학교에서는 노동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집에 오면 씻고 자기 바빴기 때문에, TV에는 '근로자'라는 말만 나왔고, 노조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다. 기웅 씨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불안한 상황이 더욱 엄중했다. 하청업체 노동자 178명 중 138명이 노조에 가입했다. 기웅 씨도 그중 한 명이 됐다.

회사가 변했다. 교섭도 했다. 관리자들이 전보다 누그러진 듯 했다. 2015년 6월 30일, 9년 만에 처음으로 회사가 하루 휴가를 줬다. 그날은 하청업체 노동자 178명이 문자로 해고를 통보받은 날이다.

2년이 훌쩍 지나간 2017년 11월 4일, 남기웅 씨는 여전히 노조에 남아 공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간 노조는 아사히글라스가 불법파견업체라고, 부당노동행위를 했다고 노동청에 구제신청하고 고발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노동부는 사측에 직접고용을 권고했다. 하지만 사측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해고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더라도 아사히글라스는 과태료만 물면 그만이다. 결국, 직장으로 돌아가는 길은 정부가 아닌 기웅 씨가, 그리고 노조가 만들어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서 책도 만들었다. 현재 노조원으로 남은 22명이 직접 자신의 사연을 써서 책으로 엮었다. 이름은 <들꽃, 공단에 피다>로 정했다. 짓밟혀도 다시 자라는 들꽃이 제목으로 좋아 보였다.

▲아사히글라스 해고 노동자. 왼쪽부터 차헌호, 안진석, 남기웅, 오수일 씨

11월 4일은 남기웅 씨, 차헌호 노조 지회장, 안진석 대의원, 오수일 부지회장이 경산에 모여 시민들과 만났다. 호두책방에서 열린 첫 번째 북콘서트 '북적북적'에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시민 40여 명이 참여해, 2시간가량 진행됐다.

▲호두책방에 모인 참가자들

이 자리에서 차헌호 지회장은 "우리 삶을 바꾸기 위해 촛불을 들었다. 그런데 정부만 바뀌고 정작 우리 삶은 바뀌지 않았다. 정부에 기대하지 않고 우리가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헌법에 보장된 노조를 누구나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비정규직이라고 쓰다가 버리는 부품처럼 때 되면 그만둬야 하나. 우리에게 함부로 하지 말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헌법이 지켜지는 사회가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최근 노동부는 아사히글라스에 해고된 하청업체 노동자를 11월 3일까지 직접고용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사측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대구고용노동청은 사측이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아도 과태료 처분 외에는 법적 조치 방법이 없다고 한다. 최근 구미고용노동지청이 아사히글라스의 불법파견에 대해 기소 의견,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무혐의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은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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