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철의 멋진 신세계?] ‘톈왕(天網)’과 스마트 쓰레기통, 한계를 넘어선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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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 수요일마다 ‘정형철의 멋진 신세계?’를 연재합니다. 브레이크 없는 테크놀로지의 폭주는 우리의 삶을 뿌리째 바꾸고 있습니다. 미래가 현재에 들어와 있고, SF가 현실이 되어버린 세상. 기술산업문명이 만들어낸 기괴한 풍경 속에서 대안과 전환을 모색해 봅니다. ]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통로를 왔다 갔다 헤맨다. 혹시 좌석 번호를 찾지 못해서 그러시는 건 아닌지 살짝 걱정이 든다. 다행히도 맨 앞쪽 빈자리를 찾아 앉으셨다. 허나 안도의 순간도 잠시, 그 자리 임자가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 이내 할머니는 다음 찻간으로 발길을 옮기셨다.

기차를 타고 다닐 일이 많아지면서, 이런 풍경을 자주 보게 된다. 예전보다 입석으로 가는 승객 중 나이 많은 어른들이 유독 많아진 느낌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답은 그리 어렵지 않다. 스마트폰 때문이다.

할머니가 기차역에 늦어서 좌석표를 구하지 못했을 것 같진 않다. 기차역에 도착하기도 전에 표는 이미 매진되었을 것이다. 평일이라고 해도 내가 다니는 노선의 기차표는 이른 새벽 혹은 늦은 밤 한가한 시간대를 제외하고는 승차 시간대 역에서 구매가 쉽지 않다. 길게는 한 달 전부터 스마트폰으로 순식간에 예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쓰럽게도 할머니는 그날 당신을 위한 자리가 아예 없었다는 사실조차 아마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처한 상황은, 실은 몇 년 전 내 모습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기차표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졌다. 알고 보니 다른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너무 쉽게 기차표를 구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더할 수 없는 기회가, 누군가에게는 피할 수 없는 배제가 되기도 한다. 내 경우는 스마트폰이 가져다주는 편의에 대한 동경보다는 기차표를 예매할 때마다 느껴야 했던 박탈감과 소외가 더 견디기 어려웠다. 기차를 자주 이용하던 터라 점점 버티기가 힘들어졌다. 나는 결국 그렇게 스마트폰을 갖게 됐다.

사물인터넷, 세상의 모든 것을 연결하라?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 시대라고 한다. 세상 모든 사물을 모조리 인터넷으로 연결하겠다는 뜻이다. 앞으로는 이 세상에 연결되지 않는 ‘것’과 ‘곳’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이를 두고 ‘초연결 사회’라고 부른다. 2020년이 되면 500억 개의 스마트 기기가 사물인터넷으로 연결될 전망이다. 이 어마어마한 수치가 실감 나지는 않지만, 근거 없는 통계는 아니라고 하니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모든 것을 연결하라, 사물인터넷(IoT). [사진=삼성 뉴스룸]
‘스마트홈’ 시대가 열렸다며 집안 곳곳을 바꾸라고 권한다. 가전제품을 비롯한 집 안에 있는 물건과 기기에 센서를 달고 인터넷을 연결한다. 사람 말을 알아듣고 실행할 줄 아는 인공지능 비서가 중심이 되어 CCTV, 가전제품, 주방시스템, 심지어 창문이나 아이들 장난감에 이르기까지 각 기기가 연결된다. 비서의 명령에 집안 기기들이 알아서 작동한다. 집안 곳곳이 살아 움직인다. 앞으로 새로 지어질 아파트는 대부분 이러한 스마트 시스템을 필수 사양으로 갖추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집 밖으로도 이어진다. 거리 곳곳에, 건물 곳곳에, 혹은 자동차 구석구석에, 네트워크가 연결되어 갈 것이다. 언뜻 보면 따로따로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리의 신호등, 쓰레기통, 버스정류장이 앞으로는 결코 서로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움직이는 곳곳이, 마주하는 물건 각각이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망으로 연결될 것이다. 이 그물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력하고 촘촘해질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외부 사물을 향해 확장되었던 연결 시스템은 다시 우리 몸으로 돌아오고 있다. 모든 것을 연결하고자 하는 사물인터넷 정신은 곧장 생체인터넷(Internet of Biometrics, IoB)으로 이어지고 있다. 생체인터넷은 사람 몸에 센서나 기기를 연결해 생체정보를 진단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지금 현실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초기 단계의 생체인터넷은 혈압, 혈당, 심박동, 심전도 등 건강에 필요한 기본적인 생체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누구도 생체인터넷이 이 지점에 머물러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기술적 문제가 남아 있고, 법적, 윤리적 문제의 해결이 논란거리지만, 나노기술과 생명공학을 결합한 생체이식 기술로 발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센서나 기기의 착용(웨어러블)으로 생체정보를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이크로기기나 나노칩을 인간의 몸에 이식하여, 진단을 넘어선 치료에까지 그 영역을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기술 발전 속도라면 이러한 구상은 우리가 막연히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이른 시간 안에 현실화될 것이 분명하다.

한계를 넘어선 기술, 편의를 향한 무한 욕망

“모든 것을 연결하라!”는 이미 우리시대의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았다. 20세기에 급속하게 발전한 기술문명이 21세기에 들어서서 디지털 혁명으로 또다시 비약하게 된 것은 인터넷 기술에 힘입은 바 크다. 인터넷 혁명은 기기와 기기의 연결에 그치지 않고, 사물과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으로 연결망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심지어는 현상을 넘어서 가상에 존재하는 것까지 연결하고자 하는 욕망을 숨기지 않고 있다.

기술의 역사가 그래왔던 것처럼, 모든 것을 연결하고자 하는 사물인터넷 기술도 ‘편의’를 향한 욕망에서 비롯됐다. 편의를 향한 욕망만큼 더 강력한 촉진제는 없다. 모든 사물에 인간의 욕망을 접속하게 하고 이를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가 바로 사물인터넷이다. 문제는 그 욕망이 한계 상황을 훨씬 넘어서까지 무한히 지속할 것이라는 점이다.

▲서울시가 설치한 스마트 쓰레기통

가령 서울시 도심에 설치되어 있다는 ‘스마트 쓰레기통’을 보자. 스마트시티를 표방하는 도시답게 거리의 쓰레기통에까지 센서와 인터넷을 장착했다고 한다. 이 쓰레기통은 쓰레기가 가득 차면 스스로 압축하고, 관리소에 비우라는 신호를 보낸다. 환경미화원이 일일이 점검하지 않아도 되니 일손을 더는 셈이라고 담당자는 말한다. 설치비와 유지비가 많이 드는 문제가 남아 있고 아직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아서 미화원들의 일손을 충분히 덜어주지는 못하지만, ‘스마트 쓰레기통’은 사물인터넷 기반 사업의 표본으로 서울 전역에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정작 궁금한 것은, 쓰레기통에 왜 인터넷을 달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있었냐는 점이다. 쓰레기통을 비우는 사람의 노력이 왜 기계와 기술로 대체되어야만 할까? 만일 기술이 더 완벽하게 실현되어 일손이 필요 없어진다면 환경미화원은 사라져야 하는 직업인가? 도심 곳곳에 있는 모든 사물에 센서와 인터넷이 달리면 과연 우리의 삶이 쾌적해질 것인가? 서울이라는, 지금도 거대하게 기계화된 도시에 진정 필요한 것이 기계적 장치를 단 ‘스마트 쓰레기통’일까? 모든 것이 연결되고 자동으로 움직이면 우리 삶은 정말 편리하고 편안해질 것인가? 서울시는 물론이고 스마트시티를 표방하고 있는 전국 도시들의 계획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이러한 질문에 대한 응답은 찾을 길이 없다.

어쩌면 사람들 사이에서, 스마트한 세상을 향한 기술적 진보는 참되고 선한 것으로 이미 전제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연결되는 것은 언제나 옳으며, 인간의 일손을 덜어주는 기술적 진보는 결코 마다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가 스마트한 기계장치의 인큐베이터가 아니라 좀 더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공간이길 바라는 것은 ‘초연결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헛된 꿈에 불과한 것인가.

초연결 사회의 위험과 윤리적 퇴행

중국 관영방송 CCTV는 최근 시진핑 주석의 업적을 홍보하는 다큐멘터리에서 중국이 세계 최대의 영상 감시 시스템을 완성해 자국민의 안전을 수호하고 있다고 선전했다. ‘톈왕(天網, 하늘의 그물)이라는 이름의 이 영상 감시 시스템은 2천만 대의 인공지능 감시카메라를 기반으로 구축한 범죄 용의자 추적 시스템이다.

유튜브에 올라온 ‘톈왕’의 샘플 영상은 충격적이다. 평범한 도심 거리를 다니는 행인, 오토바이 배달꾼, 자동차에 각각 꼬리표가 달린다. ‘남자-성인-반소매-긴바지’, ‘백색-SUV’ 등과 같은 구체적인 꼬리표는 움직이는 카메라 앵글에 따라 화면에 선명하게 펼쳐진다. 2004년부터 실행해온 ‘톈왕’ 프로젝트에는 중국정부에서 제공하는 광범위한 데이터베이스가 연결되어 있다. 범죄 용의자로 찍히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보인다. 이름 그대로 ‘하늘의 그물’이다. 가히 ‘빅브라더’의 중국 실사판이다.

▲중국 영상 감시 시스템 ‘톈왕(天網)’

중국의 이 같은 통제 시스템은 이미 악명이 높았지만, 날이 갈수록 도를 넘어 진행되고 있다. 최근 중국공안부는 13억 국민을 대상으로 한 안면 인식 시스템을 개발 중에 있다고 한다. 안면 인식 시스템을 통해 중국인들의 신분증 사진과 실제 얼굴을 대조해 본인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시행하고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국민 개개인의 프라이버시나 정보 보호에 심각한 결함과 문제가 예상되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반정부·반체제 인사에 대한 감시와 통제에도 악용될 것으로 큰 우려를 낳고 있다. 13억 국민의 개인 정보 데이터가 도난당하거나 악용될 경우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

기술의 진보가 만들어낸 감시사회의 징후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과거에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장면들이 이제는 현실에서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다. IT, 사물인터넷 강국이라고 자부하는 우리 사회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집 안에서, 집 밖에서, 거리에서, 공공장소에서 우리가 자유로울 곳은 많지 않다. 우리가 사는 공간을 빠짐없이 비추는 CCTV, 자동차 블랙박스, 온갖 사물인터넷에 달린 센서와 네트워크 장치. 거기에다 대부분 사람들이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 카메라. ‘빅브라더’를 넘어서, 자발적 상호감시 체제인 ‘빅아더’ 사회로 우리는 이미 들어서 있다. 거미줄처럼 종횡으로 짜인 감시사회의 그물망에 우리는 완전히 포획되어 있다.

사물인터넷이 보안에 취약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트위터, 넷플릭스, 뉴욕타임스 등을 포함해 미국 전역의 절반에 해당하는 인터넷망을 마비시켰던 디도스 공격은 사물인터넷 기기를 악용한 해커들의 소행이었다. 사물인터넷이 보안프로그램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값싼 기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한계 비용이 제로에 가까워질수록 기기 보급은 급격히 이루어지겠지만, 우리를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도 덩달아 급증할 것이다. 가정용 CCTV가 해킹당했을 때, 사후에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발가벗겨진 사생활이 운 좋게도 유포되지 않기를 바랄 뿐… 페이스북에 무심코 올린 사진 한 장, 구글에 자발적으로 헌납한 개인 정보, 인공지능 스피커와 나눴던 몇 마디 대화가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앞서 말한 어떤 경우보다도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가장 심각하고 불길한 위험은 생체인터넷과 같은 우리 몸과 관련된 기술에서 비롯될 것이다. 인간에게 건강이나 생명과 관련된 문제처럼 민감하고 뿌리치기 어려운 욕망이 또 어디 있겠는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여 더 오래, 건강하게, 늙지 않고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 만일 기술의 급격한 진보가 이루어져서 ‘생명 연장’의 꿈이 조금이라도 실현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생체 기술이 안고 있는 윤리나 가치문제, 인간적 한계 상황을 뛰어넘는 기술 수용 문제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말 것이다. 인간 역사에서 욕망은 윤리보다 늘 강력했다.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나면, 기술의 선택적 수용은 불가능해지거나 의미를 잃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기준으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바라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존재임을 인정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기술 진보와 인간의 한계 상황

마르틴 하이데거는 근대 기술문명이 본질적으로 인간 존재의 드러냄을 망각한 결과 인간은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보았다. 자끄 엘륄은 기술의 자율성이 통제 불능 상태에 이르러 주객전도와 인간의 노예화가 불가피했다고 생각했다. 루이스 멈퍼드는 인간 사회 자체가 ‘거대기계’였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문명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반 일리치는 자율과 공생의 한계를 뛰어넘은 기술 사회의 폭주를 멈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20세기 가장 강력한 기술문명 비판자였던 이 사상가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기술사회 문제를 진단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 공통으로 기술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을 인간의 조건과 한계 상황에 두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조건과 한계 상황을 뛰어넘으려는 기술 문명에 근원적으로 맞섰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이들이 있었던 자리와는 또 다른 층위에 있다. 그사이에 기술 진보가 가져온 위기는 훨씬 더 깊어졌다. 그런데도 이 위기에 대한 더 진전된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거스르지 말아야 할, 뛰어넘지 말아야 할 인간의 조건과 기술 진보의 한계를 명백하게 설정하는 길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정치, 사회, 문화, 예술과 같은 기술의 영역을 벗어난 곳에서 더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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