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포항 용천리 할아버지는 컨테이너로 들어간다

포항 지진 한 달, 40년 살던 집 잃은 할아버지
찢어진 흙집 대신 컨테이너 하우스 선택한 할머니
새집 지을 설계비 마련도 막막···그래도 '감사한'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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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4 11:18 | 최종 업데이트 2017-12-14 11:21

백발 성성한 정연구(81)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쳤다. 지난 10일 눈앞에서 뒤로 넘어가던 집을 생각하면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할마시’ 몰래 옆집 담벼락 뒤에서 눈물을 쏟았는데도, 또 눈물이 난다.

12일, 한파는 규모 5.4 지진이 덮친 포항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대구기상청은 경북 영양, 봉화, 청송, 의성, 영주, 안동, 예천, 군위 등 8개 시·군에만 한파주의보를 내렸지만, 이날 포항도 기온은 영하 8도까지 뚝 떨어졌다.

할아버지에게 올겨울은 예년보다 더 춥다. 불과 한 달 전까지 애지중지 꾸며온 집이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난달 15일 지진이 났을 때 할아버지 집은 밖에서 봐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망가졌다. 전면 오른쪽 모서리가 뻐끔하게 구멍 났다. 구멍으로 휑하게 빈 집 안이 다 보였다. 집 곳곳에 커다란 금이 간 건 말 할 것도 없다.

▲정연구 할아버지의 40년된 집은 지난달 15일 지진으로 재기불능 상태가 됐다. (2017.11.20)

40여 년 애지중지 가꾸어 온 집이다. 새마을운동이 물결칠 때 용천2리도 지금 모습을 갖게 됐다. 비가 오면 장화를 신지 않곤 다닐 수 없던 길이 포장됐다. 오래된 집을 허물고 새로 집도 지었다. 정부가 융자를 내줬고, 20년 동안 그 돈을 갚았다. 그때 지은 집을 할아버지는 40년간 가꿨다.

부엌 아궁이에서 불을 지피며 살던 집은 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수리했다. 연탄을 때다가, 기름보일러도 넣었고, 싱크대도 넣고, 작년엔 전면 유리창도 새로 했다. 돈이 생기면 집 밖에 있는 화장실도 안으로 들일 계획이었다.

“허물어야 한다고 첨 들었을 땐 마음 아프고 그런 거 느끼지도 안 했어. 아, 근데. 뜯으니까, 이야. 아프데. 우리 집 지어가지고 올 때 어떻게 해가지고 왔노. 돈이 있어가 왔나, 뭐가 있었나. 부엌에서 불 때다가 연탄 넣었재. 그것도 없애고, 보일러 넣었재. 이제 또 싱크대 넣었재. 유리창 넣었째. 지붕 만디(꼭대기) 새로 했지. 창문도 참, 바람 불면 달칵달칵 하는 거 붙들고 자고 이랬는데, 그거 새로 넣은 건 뜯어 내놓을라 했는데, 마카(모두) 뜯지 말라 하데. 무조건 하고 다 내려 앉혀 뿌리”

“마카 뭐 밥이나 실컷 먹었나? 돈이 있어가 집을 지었나?” 할아버지 옆에서 이야기 듣던 부인(77)도 한마디 거든다.

집을 잃은 그 날부터 정연구 할아버지는 마을회관에서 생활하고 있다. 용천2리 마을회관에는 할아버지네 외에도 4가구가 더 이재민 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 6일 무렵 정부에서 임시로 준비한 컨테이너 3동이 마을회관 앞마당에 설치됐지만, 생활하려면 며칠 더 정비를 해야 한다. 지난주에 정화조가 준비됐고, 12일에서야 컨테이너와 바닥 이격 작업이 진행됐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기 위한 최소 조처다.

▲포항 흥해읍 용천2리 마을회관 앞에는 정부가 임시로 마련한 컨테이터 하우스 3동이 준비됐다.

포항 지진 한 달, 40년 살던 집 잃은 할아버지
찢어진 흙집 대신 컨테이너 하우스 선택한 할머니
새집 지을 설계비 마련도 막막···그래도 '감사한' 국가

“우찌 또 왔능교. 집 치우니더” 용천1리 오순주(88) 할머니도 12일 분주하게 집 안을 정리했다. 오래된 흙집은 지진으로 소생 불가능하게 망가졌다. (관련기사=포항 용천리 할머니의 ‘찢어진’ 집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17.11.16)) 정부는 할머니 집을 허물기로 결정했다. 이날 할머니는 쓸만한 것들을 챙겨서 마을회관 옆 창고에 쟁여놨다. 집을 허물고, 새로 거처가 마련될 때까지 마을회관 신세를 더 져야 한다.

오 할머니는 새로운 거처도 컨테이너로 준비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번 지진 피해 복구비용으로 1,445억 원을 사용하기로 했지만, 오 할머니에겐 재난지원금으로 900만 원과 국민 성금에서 나오는 지원금 500만 원 등 1,400만 원이 현재로선 예정된 최대 지원이다. 집을 새로 지을 계획이라면 최대 6,000만 원까지 정부 융자를 받을 순 있다. 하지만 돈을 빌려 집을 지을 엄두는 나지 않는다.

정 할아버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융자를 받아 집을 마련하긴 해야지만 당장 새집을 설계하는데 드는 비용도 만만찮은 상황이다. 지원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여전히 불분명한 상황이어서 섣부르게 나설 수도 없다.

할아버지는 경험적으로 ‘나라’가 하는 일은 기다려야 한다는 걸 터득했다. 지진 직후 건물 파손 잔해물도 마을에서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는 말이 오갔지만, 정부가 군을 투입해 처리했다. 완파된 집을 철거하는 것도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말이 오갔지만 역시 기다리니 정부에서 일괄 철거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결정됐다. 설계비용도 어찌 될지 지금으로선 속단할 수 없다.

“어디서는 무상으로 안 되겠나 그러고. 어떤 사람은 돈 내야 된다 카고. 지켜보는 중이라요. 나라에서 하라는 대로. 더 달란다고 더 주지도 않고, 많다캐도 도로 가져가지 않을 테고. 뭐 지금 이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안 그런교?” 텅 빈 집터를 바라보며 할아버지는 말했다.

▲정연구 할아버지가 텅 빈 집터를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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