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서 변사체로 발견된 장애인, DNA 감식 결과도 나오기 전 화장

"장애인이 아니라 비장애인 아동이었다면 화장부터 할 수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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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5 11:21 | 최종 업데이트 2018-01-05 11:21

"아동 실종 사건이라고 생각해보십시오! 실종된 아동이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이라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때도 지금처럼 시신을 화장했겠습니까!"

노금호(36)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 집행위원장의 일침에 대구시청, 동구청 공무원들이 순간 입을 꾹 다물었다. 12월 28일, 대구시청 1층 장애인 복지과 테이블에는 시청, 구청 공무원과 장애인 단체 회원 10여 명이 둘러앉아 故 정 모 씨(22)의 사체 처리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정 씨는 지적장애인이다. 장애인 거주시설에 입소했다가 2년 후 시설을 이탈했다. 이탈했다가 실종됐고, 2달 만에 변사체로 발견됐다. 정 씨에게는 가족이 있다. 정 씨의 어머니, 누나다. 이들도 모두 지적장애인이다.

정 씨의 어머니는 정 씨 발견 이후 사체도, 유골도 보지 못했다. 정 씨가 변사체로 발견되자마자 화장 절차가 빠르게 진행됐다. 정 씨 어머니와 정 씨 외삼촌의 동의를 거쳐 경찰은 사체를 무연고자 시신으로 보고 동구청에 화장 처리 의뢰를 했기 때문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가 나오기까지 사체를 병원에 보관하면 보관 비용이 발생한다는 이유에서다. 경찰은 보관 비용은 정 씨 유족이 부담하게 될 것으로 판단했다. 정 씨의 외삼촌은 경찰과 협의 과정에서 심장이 좋지 않은 정 씨 어머니를 우려해 정 씨 관련 업무를 주도적으로 해결했다.

시청 테이블에서 면담을 이끈 조민제(34) 장애인지역공동체 사무국장은 비용 문제 때문에 섣불리 사체부터 화장한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민제 씨는 속이 탔다. 사람이 죽었다. 왜 죽었는지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벌써 시체는 화장됐고 현대공원에 유골을 안치해 보관 중이다.

민제 씨가 정 씨 발견 소식을 들은 것은 12월 18일이다. 소식을 듣자마자 경위를 파악하던 민제 씨는 당시 이미 12월 8일에 화장했다는 것을 알게됐다. 왜 죽었는가. 시설에서는 왜 이탈했는가. 시설에서 나온 정 씨는 어떤 상태였나. 의문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시청, 구청 관계자들과 면담 중인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

경찰은 정 씨가 발견된 11월 27일 당일 대구지방검찰청에 시체 부검과 무연고 사망자 사체 처리를 건의했다. 재활원 동쪽 3km 부근에서 발견됐기 때문에 정 씨라는 것을 추정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정확한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감식에 걸리는 시간이 통상적으로 3주 이상인 상황에서 경찰은 유족 동의 후 무연고 사망자 사체 처리를 하기로 했다.

원칙적으로 해결한다면, DNA 감식 결과가 나온 뒤 사체를 유족에게 인도해야 했다. 발생하는 비용은 2차적 문제다. 차후 보험 적용 여부를 알아보거나 시설 측이 분담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정도다. 정도를 어긋나자 다른 절차에도 문제가 생겼다.

무연고자 사체 처리를 하면 동구청은 법에 따라 지역 일간지 등에 지체 없이 해당 내용을 공지해야 했다. 동구청은 공지를 하지 않았다. 연고자가 있으나 연고자의 경제적 능력 등을 이유로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기피하는 상황이라면, 보건복지부령에 따라 연고자에게 시신 처리 위임서를 받아야 시신 처리를 할 수 있는데 구청은 위임서를 받지도 않았다.

김주한 동구청 복지정책과장은 "현실하고 법 집행이 거리가 있는 상황"이라며 "(행정적으로는) 무연고자이지만, 내막은 고인의 유족이 있는 상황이었다"라고 설명했다.

국과수도 사체의 부패 상태가 심해 정확한 사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정 씨가 발견 당시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는 점을 미루어보면 저체온증 때문이었을 거라는 추정도 나온다. 체온이 내려가며, 체온 조절을 관할하는 뇌 일부 기능이 파괴되면 추위를 더위로 착각하는 현상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민제 씨는 추위에 떨었을 정 씨를 생각에 덩달아 가슴이 답답했다. 탁상을 두고 모여 앉아 질책해도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더욱 답답했다.

팔공산 기슭의 재활원, 담장 밖은 숲
시설, "거주인 인권 위한 시설 개방 운영"
"사실상 위험 방치"라는 비판도

정 씨가 2015년 11월 입소한 재활원은 팔공산 기슭에 있다. 가로 약 100m, 세로 300m 직사각형 모양 부지 안에 장애인 학교, 요육원, 장애인 작업장 그리고 A 재활원이 모여 있다. 부지 동서남북을 야산이 둘러싸고 있다.

시설 부지 중앙에 있는 A 재활원은 3층짜리 철골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중앙 현관을 브리지로 땅과 연결했다. 최하층은 성큰 구조(움푹 들어간 형태)로 별도의 출입문이 있다. 2층과 3층에 남녀 생활관이 2개씩, 총 4개가 있다. 생활관 하나에는 방이 6개 있고, 방 하나는 6명이 쓴다. 군부대 막사처럼 중앙 통로에서 모든 생활관 입구를 볼 수 있는 구조다. 중앙통로에서는 남쪽으로 뚫린 현관을 통해 입소자들이 자유롭게 나갈 수 있다.

▲A 시설 조감도. (제공=A시설)

정 씨가 이탈한 10월 1일은 일요일이다. 휴일이라 생활관 하나에 당직이 2명씩 있던 상황이다. 당직 1명이 돌봐야 하는 입소자는 약 20명. 입소자 160여 명은 오전 7시 30분 아침 식사를 했다. 이때 시설 측은 한차례 인원점검을 마쳤다. 당시만 해도 결원은 없었다.

이후 시설 프로그램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2층에 있는 강당에서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예배 행사가 열렸다. 점심시간이 되고 1층 식당에서 다시 인원점검 했다. 이때 정 씨 그리고 정 씨와 같은 생활관 입소자 김모 씨(45, 지적장애 2급)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

시설 측은 곧바로 시설 내외부 수색을 시작했다. 오후 1시 40분경, 시설 부지 동편 CCTV 녹화 영상을 통해 동쪽 야산 오솔길로 이동하는 정 씨와 김 씨를 확인했다. 산을 넘어간 정 씨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갔다.

오전 7시 30분부터 정 씨 시설 외부 이탈 사실이 파악된 오후 1시 40분까지 정 씨 행적은 지금도 알 수 없다. 시설 내부에는 CCTV가 없고, 정 씨는 자유롭게 시설 주변을 오갈 수 있었다. 당직자 1명당 입소자 20명을 돌봐야 하는 상황. 길을 잃을 수도 있는 지적 장애인이 시설 건물을 나가 부지 외부로 이탈한다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시설 부지는 팔공산 기슭에 있어, 사방이 산지고, 인적이 드물기 때문이다.

▲정 씨가 시설 부지를 나와 동쪽으로 향했던 길

시설 측은 거주인 안전이 다소 보증되지 않는 상황을 인권의 딜레마라고 설명한다. 입소자 인권을 위해 시설을 최대한 개방했기 때문에 이탈 문제가 벌어질 가능성도 커졌다는 설명이다. 법령상 거주인의 외출을 제한하거나 출입문 등을 폐쇄하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어 외출을 임의로 통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또한, 시설 외부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보험 적용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책도 없다고 한다.

시설 측은 앞으로 ▲거주인 입소 시 무단가출 등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통해 개별 맞춤 서비스 제공 ▲이탈 가능성이 있는 거주인에게는 열쇠 고리형 위치추적기 지급 ▲주말 공휴일에 생활관별 인력 추가 배치 ▲이탈 방지를 위한 부지 내 행동감지기 설치 등에 나설 계획이다.

민제 씨는 시설이 내놓은 대책들이 사후약방문처럼 공허하게만 들렸다. 애초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시설에서 이번 같은 일은 어렵지 않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인적이 드물어 장애인이 길을 헤매도 알아채기 쉽지 않은 곳이었으니 말이다. 민제 씨는 시설이 거주인 인권을 보장하려고 했다면 최소한 핸드폰이라도 지급해서 이탈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 대비책은 뒀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사건이 벌어진 후 처리 과정도 마찬가지다. 경찰은 지체없이 사체 화장 처리 절차에 들어갔고, 구청은 사체 처리 과정에서 필요한 절차를 꼼꼼히 지키지 않았다. 정 씨 일에서 경찰과 구청이 이런 모습을 보인 건 사망한 사람이 장애인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민제 씨는 자꾸 들었다. 만약 실종자가 비장애인 아동이었다면 어땠을까?

보통 10년 이상 장기 입소자가 많은 정신 장애인 보호 시설에서 정 씨는 열 손가락에 꼽히는 단기 입소자였다. 정 씨가 머물던 침대와 서랍장은 2년 만에 주인을 잃었다. 정 씨가 머물던 흔적을 이젠 이곳에서 찾을 수 없다. 늦었지만, 민제 씨와 장애인 단체 활동가들은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시설과 행정기관에 진상규명과 대책 마련을 요구해갈 예정이다.

▲정 씨가 쓰던 침대(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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