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을 위한 욘수 철학] (1) 이런 세상, 내가 곧 망할 세상

12:45

[편집자 주: 현재 지방대 철학과를 다니고 있는 예비 실업자, 취업란에 마땅히 쓸 것 하나 없는 한국의 평범한 이십대들 중 하나로, 이런 자기 팔자를 어떻게든 뜯어 고치려고 노력 중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욘수’가 격주 수요일마다 대화로 풀어가는 철학 이야기를 연재한다.]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도 능통하고, 첨단 전자제품도 레고블록 만지듯
다루는 시대야. 안 그래? 거의 모두 대학을 나왔고 토익
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자막 없이도 할리우드 액선영화
정도는 볼 수 있고 타이핑도 분당 삼백 타는 우습고 평균
신장도 크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고, 맞아, 너도 피아노
치지 않아? 독서량도 우리 윗세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아.
우리 부모 세대는 그 중에서 단 하나만 잘해도, 아니 비슷하게
하기만 해도 평생을 먹고 살 수 있었어.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놀고 있는 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거지? 대체 어디서부터 고쳐야 하는 걸까?

-김영하 퀴즈쇼-
-나무위키 청년실업 항목에서 발췌를 발췌, 변형-

나: 나 진짜 뭐하지? 어떡하지?
-초, 중, 고, 대 다니는 13년 동안 내내 나 자신에게 한 질문-

1. 이런 세상, 내가 곧 망할 세상

나: 안녕 ‘남’씨

남: 안녕 ‘나’씨, 너 요즘 글 쓴다며.

나: 어 뭐, 그렇게 됐어.

남: 글은 대체 뭐 하러 쓰는데? 너 대학도 지잡대 들어갔잖아. 그래서 편입한다며, 그럼 지금은 글 나부랭이에 매달릴 게 아니라, 토익 점수 올리고 학점 챙겨야 하는 거 아니야?

나: 어…. 그게 대학 들어가서 한 일 년 정도는 그랬는데 요즘 생각이 바뀌었어.

남: 뭐 땜에?

나: 아빠가 얼마 전에 티비에서 본 걸 나한테 말해줬거든. 무슨 프로인지는 모르겠는데 거기에 서울대 의대, 사대 다니는 학생들이 나오더래. 걔들끼리 앞으로 자기 장래를 위해 뭘 해야 할지를 토론했는데, 결론은 외국어 공부하는 거 말고는 답이 없다는 거야.

남: 뭐야 그게

나: 웃기지? 나는 걔들 다니는 대학 내가 다니게 되면 취직이니 미래니 하는 고민들도 다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편입에 매달렸는데, 걔들도 나랑 똑같은 고민을 하더라고.

남: 걔들은 간판 좋은 대학에 들어갔으니까 외국어 공부하는 거 말고는 딱히 더 할 게 없는 아니야?

나: 아니야 이 바보야 생각을 해봐. 간판 있는 대학 나와서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되면, 왜 들이 한 달에 200도 못 받으면서도 이런 다 쓰러져가는 지방도시까지 와서 학원 강사 일을 하겠어. 니가 제대로 안 세어봐서 그렇지 요즘 학원들은 서울대 출신 사람들이 세운 학원들이 서울대 출신 아닌 사람들이 세운 학원들보다 훨씬 더 많아. 대로 한복판에 세워진 학원들부터, 골목 구석에 세워진 구멍가게 같은 학원들까지 전부 포함해서.

학원 일을 해서 먹고 살 수 있으면 또 모르겠는데, 우리 세대 이후로 초 저출산 시대잖아. 요즘은 먹고살기 힘들어서 애는커녕 결혼 자체를 안 하는데 나중에 우리가 졸업해서 학원에서 가르칠 애들이 있겠냐?

게다가 앞으로는 그놈의 뭔지도 모를 4차 산업혁명 시대라서 우리 같은 평범한 인간들의 노동력은 얼마든지 기계로 갈아치울 수 있대. 그럼 평범한 직장인뿐만 아니라 학원 강사도 얼마든지 기계로 갈아치울 수 있을 테고 그러면 학원 간판이나 자소서에 적을 대학 이름조차 없는 우린 망한 거지

남: 뭐 같네. 진짜.

나: 하지만 기계로 갈아치울 수 있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라 학벌 빠방한 사람들도 마찬가 지야. 걔들이 자기 미래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게 외국어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도, 지금 AI가 못하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해야 한다는 거지. AI와 경쟁할 수 있는 게 대 학 간판이랑, 과연 있을지 의심되는 외국어 실력 말고는 없는 이름 있는 대학 출신 사람들의 미래도 그다지 밝지 않아.

남: 그래서 니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처럼 학벌 헐빈한 사람들이든, 학벌 빠방한 사람들이든 두 부류 다 미래엔 골고루 망한다는 거지. 하! 하! 하!

나는 이리 망하나, 저리 망하나 어느 대학을 다니든 그게 그거인 것 같더라고. 그래 서 어차피 망할 거면, 대학 같은 거에 신경 쓰는 것보다 내가 왜 망하는지, 어쩌다 망하게 됐는지, 무엇보다 나는 어떻게 하면 망하지 않을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싶어졌어. 왜냐하면 세상이 망해도 나는 망하지 않고, 잘되고 싶거든.

남: 그건 나도 그래

나: 그래서 난 지금 내 삶이 망하지 않고, 잘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 너도 나랑 같이 찾아볼래?

남: 그럴까…이제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불안한 것도 슬슬 짜증 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