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을 위한 욘수 철학] (4) 둥근 지구 1

18:26

[편집자 주: 현재 지방대 철학과를 다니고 있는 예비 실업자, 취업란에 마땅히 쓸 것 하나 없는 한국의 평범한 이십대들 중 하나로, 이런 자기 팔자를 어떻게든 뜯어 고치려고 노력 중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욘수’가 격주 수요일마다 대화로 풀어가는 철학 이야기를 연재한다.]

남북 아메리카 인들은 자신과 다른 유럽인들을 이해하지 못해 전멸 당했다. ‘같은 이유에서’ 남아시아 인들을 이해하지 못한 유럽 탐험대들도 전멸 당했다. 그럼 나는 나와 다른, 이 세계를 어떻게 제대로 이해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남을 이해하지 못해서 전멸 당했던 두 역사적 사례들을 분석해보면 그 방법을 알 수 있을까?

1. 절대주의, 상대주의

: 오늘은 지난번에 말했던 대로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논쟁을 너희에게 보여줄 거야. 이 두 관점 중 어느 관점이 너에게 좋은 삶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네가 직접 고민해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 어… 저기 근데 절대주의랑 상대주의가 뭐야? 그게 지난번에 네가 말한다고 했던 이상주의랑 현실주의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 절대주의는 한 가지 정해진 원리에 의해서 세상이 만들어졌다는 신비주의 사상이 발전해서 만들어진 사상이야. 절대주의자들은 이 세상에 진리가 모든 시공간을 넘어서 존재한다고 생각해. 진리에 의해서 이 세상이 만들어졌으니, 진리를 기준으로 삶에서 옳고 그른 것을 사람들이 판단할 수 있다는 게 이 사상의 핵심이지.

한 가지 원리를 아는 것만으로 이 세상을 이해하고 삶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신비주의처럼, 절대주의도 진리를 알고 실천하는 것만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삶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

따라서 그런 진리를 파악하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실천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절대주의-이상주의자들의 생각이야. 자신이 생각하는 진리를 모든 사람들이 따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게 바로 이 절대주의-이상주의의 핵심 논리지.

반면 상대주의는 사람들마다 옳고, 그름이 모두 다르다는 사상이지. 사람들은 각자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자연환경, 사회문화 속에서 살기 때문에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다는 거야. 즉, 옳고 그름의 기준은 사람들마다 다르다는 게 이 사상의 핵심이야.

‘사람들마다 사는 환경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가 생각하는 옳은 것을 남들에게 강요하기 보단 나와 남 둘다에게 서로 좋은 판단, 행동을 하자는 게 게 이 상대주의-현실주의의 핵심논리지.

: 으으음…. 설명으로만 들으니깐 이 두 사상을 이해하는 게 내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는 걸?

: 그럼 남, 네가 좀 더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 각자 절대주의-이상주의자와 상대주의-현실주의자를 연기해서 대화해보자. 내가 절대주의자 역을 맡을 테니까, 남 너는 상대주의자 역을 맡아줘.

: 알겠어.

: 그럼 시작할게

2. 대화의 시작

: ‘남’, 나는 남과 대화하는 기술, 그러니까 말을 하는 기술을 가지는 것만으로 우리가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너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어. 왜냐하면 자동차가 고장 나면 전문 수리공만이 고칠 수 있듯, 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진 사람.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아는 엘리트들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나는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말을 잘하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대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옳은 지식을 가진 전문 지식인들이 법을 만들고 제도를 시행하면, 그리고 대중들이 그런 전문가들을 따르기만 한다면, 우린 행복하게 살 수 있어.

: 그럼 ‘나’, 너는 옳은 지식이 무엇인지 아는 전문가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구나?

: 그렇지

: 옳은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옳은 지식이 무엇인지 아는 ‘전문가들만’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말이고.

: 그렇지, 고장 난 자동차는, 고장 난 자동차를 고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정비공만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

: 정치를 자동차 고치는 기술에 비유했다는 점에서, ‘나’ 너는 우리 사회에서 불화가 일어 나는 건 잘 굴러다녀야할 자동차가 고장 난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거지?

: 그렇지

: 그런 사회적 불화를 고칠 수 있는 건, 옳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엘리트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고.

: 그게 내 주장이야.

: 하지만 ‘나’, 내가 보기에 네 견해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화들을 마치 자동차의 고장처럼 본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무생물이고 하나의 정해진 기계적 움직임(기술)에 의해 움직이는 자동차와 달리-우리가 사는 세상-사회는 저마다 다른 삶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며 사는 곳이거든. 그런 사회에서 일어나는 불화들은 과연 옳은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이 없어서 일어나는 걸까?

인종 차별, 종교 간의 갈등 이런 사회적 불화들은 훌륭한 지도자가 있는 시대에서도 일어났잖아. 시민들의 평균적인 지적 수준이 중세 때보다 훨씬 높아진 현대에서는 오히려 이런 불화들이 더 늘어났고. 그렇다면 이런 불화들은 정말 사람들이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서 일어나는 거라고 볼 수 있을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나는 사람들끼리 불화가 생기는 이유는 각자 다른 환경 속에서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남’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을 강요해서라고 생각하거든. 남을 이해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을 강요해서 일어났던 역사적 비극들 중, 가장 큰 불화를 그 근거로 들어볼게.

3. ‘나와 다른 남’을 이해하지 않아서 일어났던 역사상 가장 큰 불화

...이는 하느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될 터, 저희는 하느님의 성스러운 인도하심에 힘입어 무수한 이교도들을 정복하고 성스러운 가톨릭 신앙으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임무는 선한 것이므로 하늘과 땅과 그 속의 모든 것들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이 일을 허락하셨고 이는 그대가 하느님을 알고 지금까지의 야만스럽고 사악한 삶에서 벗어나게 하심이오. 우리가 이토록 수가 적은데도 그 많은 사람들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러한 까닭이었소. 하느님께서 그대의 자만심을 꺾고 그 어떤 인디언도 기독교인을 거스르지 못하도록 우리의 승리를 허락하셨소.(코르테스가 포로로 사로잡은 잉카의 왕 아타우알파에게 한 발언)

-스페인 탐험가가 왕에게 보낸 목격담 중 일부, <총, 균, 쇠>에서 발췌-

정도껏 해라.(진지한 궁서체)

-어쩌면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스페인 탐험가들에게 한 말-

: 콜롬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이후로 유럽인들이 현재 미국, 캐나다, 남미인 지역으로 대거 이주해 자기들 나라를 세웠다는 거 알고 있지?

: 응

: 그럼 유럽인들이 이주하기 전 원래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걸까?

: 유럽인들이 옮긴 병에 다 죽었다고 들었어.

: 그래, 하지만 왜 아메리카의 원주민들만 유럽인들이 옮긴 전염병에 걸려 몰살당했을까. 반대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유럽인들에게 전염병을 옮기는 일은 왜 일어나지 않았을까?

: 그러게? 왜지?

: 전염병이라는 건, 많은 사람들이 좁은 곳에 같이 모여 살거나, 또는 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자주 접촉할수록 생기기 쉬워. 즉, 도시가 많고, 그 도시끼리 교역이 활발할수록 전염병에 생기기도 쉬운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