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설치고 돌아다니는 여자들 /이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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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7 13:02 | 최종 업데이트 2018-05-07 13:02

내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중3 가을이 되자 한 달 만에 엄마가 운전면허를 따고 곧이어 하얀색 프라이드 중고차를 샀다.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밤 10시가 넘어 교문 밖을 나서는 ‘여학생’을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가기 위해서다. 그렇게 도로 위에 나온 ‘아줌마’는 남자 운전자들에게 “집구석에서 솥뚜껑 운전이나 하지 왜 차를 끌고 나왔냐!”는 소리를 들었다.

26년 무사고 운전자인 엄마는 인생에서 잘한 일 중 하나를 운전 배운 것으로 꼽는다. 이동수단이 생겼다는 건 단지 생활이 더 편리해졌다는 뜻만은 아니다. 갈 수 있는 장소에 대한 가능성, 상상력이 늘어난다. 집구석에 처박혀 있어야 미덕인 여성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여성의 자리와 이동에 대한 사회의 고정관념은 삶의 선택권을 제한한다. ‘남편만 따라다녀야’ 사회의 질서를 교란하지 않는다.

‘백마 탄 왕자’는 여성의 구세주 같은 남자를 그리는 표현이다. 남자가 소유한 재산을 과시하는 표현이 필요했다면 성을 가진 왕자, 다이아몬드를 가진 왕자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왜 ‘백마 탄 왕자’일까. 여자는 그 자리에 있고, 왕자가 ‘오기’ 때문이다. 왕자의 활동 반경은 훨씬 넓다.

<인어공주>의 왕자는 신부가 될 공주를 보기 위해 배를 타고 멀리 이동하지만, 공주는 성스러운 교회에서 좋은 왕비가 될 준비를 한다. 남자의 능력을 과시하는 방식은 꾸준히 이동의 자유와 연결되어 있다. 제인 오스틴의 <센스 앤 센서빌리티>에서 엘리너와 매리언의 올케인 패니는 자기 동생 로버트가 요즘 런던에서 얼마나 잘 나가는지 과시하기 위해 4륜 마차를 언급한다. 오늘날은 자동차가 바로 그 역할을 맡고 있다. 남성에게는 재산 목록 중 유독 교통수단이 중요하다.

▲[사진=pixabay.com /저작권 없음]

결국, 보름 만에 사퇴한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을 둘러싸고 여러 사건이 있었다. 그 중 ‘여성 비서의 해외 출장 동행’과 관련된 구설수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여성의 돌아다님과 경제활동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 드러난다. 하태경 의원은 “남성 의원이 여성 비서와 (출장을) 가는 게 괜찮은 거라고 하면 이걸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있겠나”라며 “저는 와이프가 무서워서 가라고 해도 못 간다”고 까지 말했다. 집안의 정숙한 아내와 집 밖의 요부로 여성을 분리한 후 그 두 종류의 여성이 적대하도록 구도를 짠다. 나아가 집 밖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온전히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여성성’을 활용해 성공한다는, 못돼먹은 편견이 작동한다.

비서를 집 밖의 아내, 곧 정부처럼 여긴다. 구글에 ‘여비서’만 검색해보자. “여행 가서 여비서랑 뭐했나” 등 얄팍한 상상이 넘실거린다. ‘비서’는 고위인사의 비서실장 또는 비서관이 아닌 한 그 직종 자체가 젠더화 되어 있다. 비서와 남성 상사의 관계를 보는 대중의 상상은 진부한 성적 환상의 이미지에 기초한다. 그래서 <여비서>라는 포르노 영화까지 있다.

다시 구글에서 여성, 출장을 검색해보길. 여성 전용 출장 마사지가 주르륵 나온다. 여성이 자리를 이동해 업무를 보러 가는 상황에 대한 이 사회의 관념과 호기심, 상상력이 어떤 범주에 머물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여성이 지역을 옮기고 집을 떠나 먼 곳에서 일하는 서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윌라 캐더Willa Cather(1873~1947)는 미국의 대표적인 지역주의 작가다. 네브래스카 최초의 유명한 여성이며 ‘네브래스카 소설’이라 불릴 정도로 지역성에 충실한 글쓰기를 했다. 네브래스카는 원주민 언어로 ‘평평한 강’이라는 뜻이다. 북서쪽 일부를 제외하고 대체로 밋밋한 대평원이 이어진 네브래스카에서 그는 성장했다. 훗날 여덟 살에서 열여섯 살까지의 삶이 작가에게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윌라 캐더 자신이 그 시절 동부에서 네브래스카로 이주하면서 그 지역과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가 100년 전에 발표한 <나의 안토니아>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와 비슷한 시기에 쓰여졌다. 그러나 동부 대도시에서 화려한 생활을 하는 사교계의 인물들이 아니라 척박한 땅으로 이민 온 이민자들의 이야기이다. 동성애자이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캐더는 주로 미국의 네브래스카, 뉴멕시코, 캐나다 등의 낯선 지역에서 삶을 개척하는 여성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썼다. 영어를 몰라 사기를 당하기도 하는 이들이 토굴 같은 흙집을 짓고 살면서 삶의 터전을 만들어 간다. 이민 여성들 중에는 가족 없이 혼자 유럽에서 한 달이나 걸려 바다를 건너와 다시 기차를 타고 중부 내륙의 오지로 오는 경우도 있다. 단지 사회 억압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서다.

<나의 안토니아>에는 다양한 유형의 젊은 여성들이 나온다. 가난하고 영어가 비모국어인 여성들은 노동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면서 제 꿈도 이어간다. 하녀 일을 하는 여성들은 주인 남자의 성폭력과 추근거림을 피해 다녀야 했고, 호텔에 일자리를 얻으면 ‘젊은 여자가 하기에 좋지 않은 일’로 취급하는 시선을 견뎌야 했고, 혼자 사는 집에 남자가 드나들면 이웃의 쑥덕거림을 들어야 했다. 이렇게 돈벌러 읍내로 나온 시골 처녀들은 “사회 질서에 위협적인 존재로 간주되었다. 그들의 아름다움은 관습적인 통념에 대조되어 지나칠 정도로 대담하게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197쪽)

나는 주인공 안토니아보다 레나라는 여성을 더 좋아한다. 유부남이 레나에게 시선을 흘리자 온 동네가 레나에 대한 소문으로 가득하다. 마을의 목사가 레나를 찾아가 “일이 그렇게 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기까지 한다. 레나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유부남에게 꼬리 치는 여자가 되어버렸다. “내 곁에서 얼쩡거리는 걸 내가 어쩌겠”냐며 받아치는 레나는 남의 시선에 굴하지 않는다.

땅과 집을 벗어나기 힘들었던 통념적 여자의 삶을 원치 않았던 그는 ‘여행하는 상인’이라는 직업을 동경한다. 이 소설 속 시골마을 사람들의 시각으로 집과 땅을 벗어나지 않는 안토니아는 성실하고 건전하지만 새로운 장소로 이동을 꿈꾸는 레나는 정숙하지 못한 여자다. 옷 만드는 기술을 배워 네브래스카의 시골 마을에서 네브래스카의 주도 링컨으로, 나아가 대도시 샌프란시스코로 자리를 옮긴다. 그는 여자가 항상 집에만 박혀 있길 원하는 당시 남자들의 사고방식이 싫어 결혼도 하지 않는다. 혼자 살면 쓸쓸하니 가정이 있는 게 좋지 않냐는 주위의 권유에 그는 “난 외로운 게 좋아”라 말하고 가정생활 실컷 해봤으니 가르치지 말라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서부로 떠난 또 다른 여성 티니는 서부에서 다시 알래스카로 돌아다니며 선원과 광부들의 하숙집을 운영한다. 급기야 사금광 개발에 투자하는 등 억척스럽게 살아 성공한 뒤 샌프란시스코에 자리를 잡고 산다. 예쁜 스타킹과 구두를 신으며 멋을 부려 시골 마을에서 눈에 띄던 그는 알래스카에서 동상으로 발가락을 세 개나 잃어서 전처럼 뽀족한 구두를 신을 수도 없다. 그렇게 몸의 일부를 잃었어도 그는 모험을 했고, 여자에게 정해준 삶의 자리와 역할에 머물지 않았다.

돌아다니는 여자에게는 언제나 소문이 따라온다. 남자랑 무슨 관계일까, 가서 뭐 했을까, 여자가 말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도 여자들은 설치고 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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