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돋보기] ‘폭염으로부터 건강한 삶’도 인권

15:35

더워도 심하게 덥다.

1994년 더위가 재현된다고 한다. 94년, 에어컨도 없던 교실에서 공부하던 시절, 앉았다 일어나면 나무 의자에 땀이 물처럼 흥건히 고여 있던 기억이 생생하다만 체감으론 지금이 더 심각하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덕에 어딜 가나 더위에는 익숙했다. 서울에 거주할 때는 일 년 중 에어컨 가동 일수가 7일을 넘기지 않았다.

2018년의 더위는 에어컨이라는 문명의 이기물 없이는 생존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오죽하면 우스갯소리로 에어컨을 만든 캐리어씨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어야 했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

이런 더위에 밖에서 5분만 서 있어도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한다. 땀만 흐르는 게 아니라 가혹할 정도의 햇살과 습기로 숨이 막히고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곤란하다.

이런 폭염에 실내 노동자들, 화이트칼라라고 불리는 이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에어컨 시스템이 갖추어진 곳은 차라리 피서지 역할을 한다. 폭염에 취약한 계층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 현장 노동자, 특수장비를 갖추어 입고 노동현장에 서야 하는 이들 그리고 빈곤계층이다. 특히 이 중에서도 빈곤계층에게 폭염은 더욱 가혹하다. 독거노인, 노숙인, 저소득층 가정과 그들의 자녀 등 아동과 노인 중심의 계층이다.

그들에게 여름은 겨울보다도 가혹하다. 그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는 반지하, 옥상, 고시원, 쪽방은 환기조차 어려운 밀폐된 구조이며 내부 온도가 외부보다 더 높다. 폭염은 최소한의 삶의 질을 확보하는 것조차 곤란하게 한다. 단순하게 문화생활이나 쾌적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곤란한 정도가 아니란 말이다. 폭염은 이들에게 생존 문제로 다가온 재난이 되었다.

▲ 빈곤계층에게 폭염은 더욱 가혹하다. 독거노인, 노숙인, 저소득층 가정과 그들의 자녀 등 아동과 노인 중심의 계층이다. 2015년 7월 무더위 속 대구 한 쪽방촌. (사진=뉴스민 자료사진)

질병관리본부에 의하면 ‘온열 질환 응급실 감시체계’ 운영 결과 7월 29일 기준 온열 질환자는 2,042명이고, 사망자도 27명이다. 사망자 중 16명이 70세 이상 고령자(80세 이상은 12명)이며 2명은 10세 미만 어린이라는 통계가 이를 확인해준다.

명백하게 불평등한 상황이 폭염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폭염에 의해 고통받는 이들과 사망하는 대부분이 경제적, 사회구조적 약자다. 그들 대부분은 폭염에도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업종에 종사하거나, 폭염을 피할 에어컨을 구입하기도, 가동하기도 곤란한 경제적 약자들이다.

폭염은 이제 여름철 한때 자연현상으로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다. 연일 체온보다 높은 기온을 극복하는 건 인간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재난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것은 계절적 특성을 감안하여 견뎌야 하는 인간의 생체 능력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1995년 미국 시카고 지역에서도 재난 수준의 폭염이 덮쳐 한 달 만에 700명이 넘는 사람이 숨지기도 했다. 몇 년 뒤 다시 폭염이 찾아왔을 때 시카고는 95년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시카고 시장은 비상기후대응전략을 마련해서 폭염 중앙통제센터를 가동했다. 폭염을 피할 수 있는 ‘쿨링센터’ 34곳을 설치하고 이곳을 이용할 수 있는 버스를 무료 제공했다.

이마저도 부족하다고 판단되자 학교 31곳을 쿨링센터로 지정해 운영하기까지 한다. 이동이 곤란한 계층은 인력을 투입해 직접 방문해서 건강상태를 파악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95년 사망자 대비 85% 이상 감소했다.1.<Heat wave : A social autopsy of Disaster in Chicago>, Kinenberg E, UniversityofChicagoPress  / <아픔이 길이되려면>, 김승섭, 동아시아

폭염은 더 이상 인간이 극복하기 곤란한 단순한 자연재해라고만 볼 수 없다. 계층에 의한 차별적 피해가 존재하고 국가나 공공기관이 개입하여 개선할 수 있는 사례가 확인되는 이상 이는 인간이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가 되어 사회문제로 취급해야 한다. 국가는 지금이라도 폭염에 대한 실질적인 대응전략을 마련하고 즉각 실시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책임져야 마땅한 국민의 생존권, 안전권의 문제다.

더욱이 각종 국가의 제도(전기세, 폭염 대처시설 등)는 적절한 작동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폭염은 하루하루 당장의 문제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도는 사무실 안에서 담당자들이 정책 검토와 실시를 두고 하루 늦장을 부리는 동안에 폭염 속에 방치된 국민들이 쓰러져 간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세계인권선언 제25조
“모든 사람은 먹을거리, 입을 옷, 주택, 의료, 사회서비스 등을 포함해 가족의 건강과 행복에 적합한 생활 수준을 누릴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