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돋보기] ‘정조’라는 사회적 성폭력은 여전히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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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5 10:39 | 최종 업데이트 2018-08-15 10:40

중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양아버지를 따라 북경으로 갔다. 거기서 만난 한 일본 장교에 의해서 강제로 위안소로 끌려갔다. 자신을 강간하려던 조선인 남자에게 사정하여 위안소를 탈출했으나, 그 뒤로 남편이 된 남자는 “군인에게 갈보짓한 더러운 년”이라며 학대했다. 1991년 최초로 공개석상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의 이야기다.

▲증언하는 김학순 할머니 [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6살이던 1943년 일본 군인이 동네 언니 4명과 함께 강제로 기차에 태웠다. 저항하면 구둣발로 밟고 때려 걷지도 못할 정도였다. 도착한 곳은 대만이었고, 광복이 될 때까지 일본군 성노예로 살았다. 위안소에서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전기고문과 폭력은 일상이었다. 2007년 미 하원 외교위에서 열린 “종군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위한 회의에 증인으로 나와 전세계에 위안부의 실태에 대해 발언한 이용수 할머니의 이야기다.

매년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김학순 할머니가 세상에 나와 살아 있는 전쟁 피해자임을 증언한 바로 그날이었다. 해방되고 46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에야 할머니는 ‘내가 바로 위안부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고, 이 문제가 전 세계로 공론화되기까지도 반세기 이상이 걸렸다.

해방되고 일본이 패망했을 때 징용, 징병 갔던 이들이 가족의 환영을 받으며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 가족의 품으로 친구의 곁으로 따뜻했던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 누구도 그들에게 일제에 부역한 자들이라고 비난하거나, 전쟁에 동원되었다고 멸시하지 않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의 할머니들의 증언은 함께 나누기에 가슴이 아릴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표현하기 힘든 고통으로 전쟁말기의 광기어린 시대에 군수품처럼 실려 다니며 전쟁의 만행을 경험했던 시간보다, 유령처럼 아니 그보다 더 못한 존재로 취급받으며 이 땅에서 살아온 시간이 몇십 배 더 길다.

그녀들이 견뎌온 시간들은 전쟁의 고통에 더해 사회의 편견과 가족의 혐오까지 견뎌야 했다. 국가는 위안부라는 존재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21세기 오늘날의 재판에서도 판결의 기준이 되는 ‘정조’는 그 당시에는 더 시퍼렇게 살아서 그녀들의 삶을 재단했다. 그녀들이 원하고 말고는 상관없었다. 부재했던 정부의 책임은 온데간데없었다. 반인류적 전쟁범죄의 희생양이었다는 것도 의미 없는 외침이었다. 당시 사회가, 아니 지금도 이유야 어찌되었든 ‘정조’를 잃은 여성에게는 가혹했다. 국가와 사회의 2차 가해는 반세기 이상 지속되었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할 거야. 방직공장 다녀왔다 그래야지”
(영화 ‘눈길’ 중 영애의 대사)
“내 부모 형제마저 날 버렸는데 내가 어떻게 떳떳하게 살 수가 있겠어.
(영화 ‘아이캔스피크’ 중 옥분의 대사)

다행히 김학순 할머니의 외침 이후 시민들은 연대하기 시작했다. 아마 대한민국 여성운동사에서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이 시작되는 계기였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 몽골, 중국, 대만, 그리고 다른 나라에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만났다. 그리고 연대했다.

전쟁범죄가 다시 발생하지 않아야 했다. 그 주체가 이제 일본이든 한국이든 문제가 아니다. 어느 국가나 주체에 의해서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야 했다.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전쟁의 피해자가 되어 인간의 존엄을 말살당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수치스러웠던 역사의 한 부분을 어느 순간부터 주머니에 숨기고 싶어 한다. 식민지와 전쟁을 극복하고 단시간에 발전해 낸 대한민국의 높은 빌딩을 화면에 내보이지만, 그 안에 희생당한 노동자의 삶, 유린당한 여성의 삶, 학대받은 장애인의 삶은 은근슬쩍 감추고 싶어 한다. 감추는 순간 기억에서 사라질 수 있고, 기억에서 사라지면 역사는 지워질 수밖에 없다.

1945년 광복이 되던 그해, ‘일본 군인을 따라다니며 성노예로 생활했던 여성들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것은 반인류적 전쟁범죄이니 우리의 딸들을 인간 존엄 회복을 위해 대한민국은 다 같이 노력합시다’라고 할 수 없었던 사회였기에 그녀들이 목소리를 내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결국 터져 나왔고, 이제는 평화를 위한 당당한 목소리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어느 유명 정치인의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1심 재판에서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기준이 적용됐다. ‘위계에 의한 명백한 폭력’, ‘자기가 입증해야만 하는 피해자다움’, ‘물리성’ 등을 기준으로 지금의 법체계와 국민인정상 용인하기 힘들다고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목소리도 언젠가는 당당한 목소리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단지 그 시간이 예전처럼 오래지 않았으면 좋겠다.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할 때 역사에서 지워지고, 역사에서 지워지면 부끄럽고 잔혹했던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가해졌던 전쟁의 물리적 폭력 이상, 대한민국에서 보이지 않았던 사회적 폭력 역시 성폭력 희생자들에 대한 명백한 2차 가해였음을 기억하자.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성폭력 이상의 사회적 성폭력에 대한 우리 인식도 제고할 필요가 있음을 한 번 더 생각해볼 때다. 해결의 관점은 일본과 한국이라는 이분법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눌 수 없듯이,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 구분이 아닌 평화롭게 세상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같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들여다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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