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경의 인권 돋보기] 거주 이전의 제한 너머에 숨겨진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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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14조.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2017년 대한민국 공항 출국장의 풍경입니다. 어머니로 보이는 듯한 여성 품에 아직 걷지 못해 안겨 있는 아이와 아장아장 걸음을 옮기는 또 다른 아이, 그리고 한손으로는 어머니 손을, 다른 한 손으로는 동생 손을 꼭 잡고 있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출국심사대에서 발생한 문제로 출입국관리사무소로 이동했습니다.

대한민국 국적자가 아닌 어머니는 한국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담당 직원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메모지에 무엇가를 적어 여성에게 건넸습니다. “5세 48만 원, 3세 28만 원, 1세 9만 원.” 그들이 대한민국을 떠나기 위해 필요한 금액입니다. 돈이 없다는 말에 대한민국출입국관리사무소의 반응은 단호했습니다. “돈을 내지 못하면 비행기를 탈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4조는 거주이전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 즉, 대한민국 국적자에게만 해당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습니다. 헌법은 해당 국가의 통치조직과 그 원리,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근본 규범이니까요.

그런데 세계인권선언이나, 각종 국제 협약은 국내법에 영향을 꽤 미칩니다. 특히 대한민국이 가입하고 비준한 국제법은 대한민국 내에서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기도 하지요. ‘세계인권선언’ 제13조 제2항에는 ‘모든 사람은 자국을 포함하여 어떠한 나라를 떠날 권리와 또한 자국으로 돌아올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2조 제2항 및 제4항,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 제5조 등 국제인권협약과 국제관습법에도 출국의 자유와 자국으로 귀국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 헌법 역시 제14조의 적용을 대한민국 국적자를 너머, 대한민국으로 입국한 외국인에게도 그 자유가 보장된다고 보는 것이 통설입니다.

출입국관리사무소가 그들의 출국을 저지한 이유는 출입국관리법에 의해서 입니다. 한국에서 노동을 하던 이주 외국인 부부가 그들의 자녀를 외국인등록을 제때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로 인해 과태료가 발생했고, 과태료를 납부해야만 아이들이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과태료를 납부하지 않은 건 잘못이 맞지만, 여러모로 생각할 때 합리적인 거주이전의 제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법제도와 규정은 대한민국 국적자도 다 맞추어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집을 이사하고 전입신고를 해야한다고 하는 것을 누구나 다 알지는 못합니다. 하물며 14일 이내에 전입신고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과태료가 발생합니다. 대한민국의 주민등록법이 그러합니다. 이사를 하는 부동산 주인이 친절하게 알려주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 개인적 사정이 생기거나, 깜빡하는 경우에 주민등록법을 위반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경우에도 그 집에 거주하는 아이들에게 ‘너희 부모가 주민등록법상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과태료가 발생했으니 학교에 갈 수 없다’고 하진 않겠죠? 하지만 앞의 경우엔 과태료 부과 대상이 부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출국까지 제한한 것이니 명백히 과분한 제한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권의 역사에서도 거주이전을 제한하는 것은 단순한 자유권을 제한하는 행위를 너머 차별과 배제가 전제에 있습니다. 나치가 유대인들을 ‘게토’라는 지역으로 몰아넣고 이동을 제한했고, 지금의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모습도 그러합니다.

수많은 지역에서도 분쟁국의 상대 국민이나 난민을 수용소라는 이름으로 묶어 두고 이동을 제한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동만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반입되는 물과 식량, 전기까지 어떤 경우는 통제하고 있습니다. 가장 끔찍했던 거주이전 제한으로 인한 사건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소련의 레닌그라드를 872일간 봉쇄하면서 그곳 사람들을 가두어 죽게 한 것입니다. 무려 약 400만 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이렇 듯 어디를 자유롭게 가고 못가는 상황이 단순하지만은 않습니다. 다른 민족과 종교를 가진이에 대한 배제일 수 있고, 전쟁시에는 참혹한 살육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사례도 단순히 거주이전의 자유 제한을 넘어서 어찌보면 대한민국 국적자가 아닌 이주노동자에 대한 간접적 차별이 내재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거주이전의 자유가 우리 헌법에 명료하게 단 한줄로 명시되어 있음은 분명 그 보호 가치가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보호가치가 크다는 건 대한민국이 보호해야하는 대상이 때로는 국적자만이 아닌, 이 땅에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대상이 되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나 싶습니다.

박민경 <사람이 사는 미술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