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경의 인권 돋보기] 다양하고 뿌리 깊은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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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11조.

①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③훈장 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시절, 법대를 다니는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주어지는 우려 섞인 질문 중 하나가 ‘수많은 법을 어떻게 다 외워?’ 였습니다. 사실 다 외울 필요가 없고, 악착같이 외우는 학생도 없고 하물며 소법전은 시험볼 때 가지고 들어가는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공부를 열심히 하다보니 원하지 않아도 외워지는 법 조항들이 있는데, 가장 내 머릿속에 암기된 조항이 평등권에 대한 헌법 11조였습니다. 똑같은 글자 2개가 나란히 배열되어 평등하지 않을 수 없는 11조였으니까요

그중에 첫 번째 항의 구성 단어 하나하나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정말 평등하다는 것을 따박 따박 콕콕 짚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고, ‘누구든지’ 성별이나 종교,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 받지 않는다는 거죠.

단 두 문장 속에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차별적 상황에 대한 기준이 명시되어 있죠. 대한민국 법령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풍부하고, 사랑스러운 조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만큼 수많은 대한민국의 법령이 11조에 근거하고 각 재판소 판례와 국가기관 행정문서와 결정문이 이 조항을 근거로 도출되어 있습니다.

▲뉴스민 자료사진

헌법 11조와 관련해 흥미로운 일이 있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2011년과 2023년 동네 이장을 선출하는데 있어 나이와 성별을 이유로 제한을 두고 있어 차별이라는 진정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이 나왔습니다.

여러 기초자치단체가 이장 선출에 나이 기준을 뒀습니다. 전국 230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반절에 가까운 109개 곳에서 나이 제한을 두었다고 합니다. 나이가 많으면 변화에 적응력이나 판단력, 정보화 능력과 의사소통 능력 등이 저하 된다는 이유에서였답니다. 기준이 되는 나이는 민방위기본법에 근거한 65세였구요.

사실 특정 나이를 기준으로 정신적·육체적 능력의 쇠퇴를 판단하기가 참 애매합니다. 65세와 66세 사이에 현격한 신체적 차이가 있어 업무 수행에 지장이 있을까요? 이장을 선출하는데 있어 굳이 국가가 나서 나이를 제한하지 않더라도 그 마을 사람들은 누가 가장 이장으로서 적합한지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찌보면 마을 사람들이 선거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움의 폭도 제한할 수 있는 기준인거죠.

시간이 10여 년이 흐른 후 잊혀가던 이장 선거와 관련해 또 다른 차별이 발견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의 이장의 비율은 월등히 남성이 높았습니다. 어느 누군가는 여성이 선거에서 배제되었다며 진정을 제기했습니다. 문제가 제기된 지역을 조사한 결과 여성을 배제하는 규정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차별하는 규정은 없었지만, 여성 인구가 주민의 절반이 넘는데, 이장으로 선출되는 비율은 10% 남짓이었습니다.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성별에 대한 편견과 사회적 분위기였습니다. 이장을 선출하기 위한 모임도, 추대하는 위원회도 거의 대부분 혹은 모두가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고 수십 년간을 남성이 지도자로서 역할을 해야한다는 가부장적 지역 사회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나이를 이유로 제한을 둔 것을 우리는 직접적으로 차별하였다 하여 직접 차별이라고 합니다. 뒤에 성별을 명시적인 제한 사유로 규정하지는 않았으나, 성별이 이장님 선발에 여러모로 이유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을 간접 차별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헌법 11조에서 이야기하고 보장하고자 하는 평등에 반하는 차별적 상황은 정말 무수히도 많이, 다양하게,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나타납니다. 작은 마을 이장을 뽑는 이야기에도 뿌리 깊고 다양한 차별이 존재하듯 말입니다. 우리 옆에 머무르고 있는 이들과 상황에서도 지금 당장 우리는 이런 수많은 차별들을 한번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박민경 <사람이 사는 미술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