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을 위한 욘수 철학] (9) 둥근 지구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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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현재 지방대 철학과를 다니고 있는 예비 실업자, 취업란에 마땅히 쓸 것 하나 없는 한국의 평범한 이십대들 중 하나로, 이런 자기 팔자를 어떻게든 뜯어 고치려고 노력 중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욘수’가 격주 수요일마다 대화로 풀어가는 철학 이야기를 연재한다.]

누군가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1#)

여기 한 명의 아버지가 있다.
그는 퇴임 전 학교 교감까지 맡았던 인물로

월급을 떼이거나, 밀려 받은 경험이 없고
당연히 실업에 대한 걱정도 해본 적 없으며
가는 곳마다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나름 대접 받았던 인물이다.

다달이 돈을 벌어오고
걱정 없이 가족을 부양한 점에서
그는 ‘엄하지만 존경스러운, 절대적인 아버지 이상향’의 표본이었다.

이 아버지는 자신의 ‘엄하지만 존경스러운’ 아버지의 말을 따라
아버지가 명령한, 아버지가 생각하기에 괜찮은 대학을 나와서 별 탈 없이 취직할 수 있었고
이런 ‘엄하지만 존경스러운’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버지의 아버지보다 조금 더 욕심내서
아들을 미국 유학까지 보내기로 결심 한다.

아버지의 머릿속, ‘아버지가 된 아들’은
자신이 그러했듯 자신보다 더 엄하고
자신보다 더 존경스러운 아버지가 되어 있다.

제대로 알진 못하지만
어쨌든 지금의 자신처럼
어쩌면 지금의 자신보다

더 위대해지고, 더 대단해질
최소한 지금의 자신만큼은 될
아들의 미래를 만들어 내기 위해
아버지는 집착한다.

자신이 그러했듯 아버지는
아들을 엄하게 교육시킨다.

아들이 가야할 유,초,중,고,대학교를 정하고
그걸 위해 아들이 얻어야할 성적을 정한다.
그런 아버지의 명령과 감시를 양분삼아

아들은 아버지가 생각하기에 괜찮은 대학을 나오고
아버지가 생각하기에 대단한 미국 유학을
서른 중반에 끝낸다.

절대적으로 반드시 성공할 성공의 길을
아들은 자신처럼 걸었으니

아버지는 당신의 아들이
자신처럼 위대한
어쩌면 자신보다 더 위대할
아버지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그 기대와 달리
그 절대적인 믿음과 달리
세상은 이전과 상대적으로 달라졌다.

아들이 유학하던 근 10년 사이
미국 유학은 더 이상 대단치 않은 것이 되었고
취직 시장은 아버지의 아들보다
더 위대한 학력을 가진 이들로 넘쳐 난다.

수십 번의 취업 낙방 끝에
아들은 월 200도 못 받는 학원가 영어 선생으로
번번이 월급을 떼이거나, 밀려 받으며 살게 된다.

그마저도, ‘높은 성적을 받는 공부형 인간’만이 되기 위해
평생을 걸쳐 개조된 미숙한 처세술과 대인관계 능력 덕에
‘무능한 강사’로 낙인찍혀 스스로 도망치듯 나오게 된다.

35살이 되어서, 우울과 무기력에 찌든 체
게임만 하며 아버지의 연금으로 생활하는 아들은
아버지가 생각하는 ‘위대한 아버지’와 거리가 멀다.

자신이 걸었던, 성공을 향한 절대적인 길이라 믿었던
‘위대한 아버지의 길’을 자신보다 더 멀리, 더 열심히 걸었던
아들의 비참한 실패를 아버지는 두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믿지 못한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말한다.
속이 타다 못해 죽어가는 심정으로
‘야, 너는 애가 도대체 왜 이러냐?’
‘돈도 벌고 여자도 사귀고 그래야지, 도대체 왜 이러냐?’

아들은 말한다.
35년간 세상 어떤 것보다도
더 맹목적으로 따랐던 그 한마디
‘아빠가 그러라고 했잖아요!’

그 말에 아버지는 사라졌다.
믿음은 사라지고
35년간 묵힌 아들 마음속의 돌도 사라졌다.
그 말은 15살에 했어야 하는데

11. 돈이 아닌 저녁 있는 삶을 꿈꾼다.

: 이거, 실화야?

: 어

: 허 참, 아버지도 안 됐고, 아들도 안 됐네. 아버지는 자신이 경험해보고, 좋다고 생각한 것(학벌)을 아들에게 강권하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랐던 것뿐인데 이런 안 좋은 결과가 나오다니.

: 그게 바로 이 문제가 생겨난 진짜 이유지. 자신이 이전에 경험해보고 좋은 것을 권하거나, 그걸 별다른 의심 없이 따르는 태도 말이야.

: 그게 이유라고? 어째서 그런 거지?

: 한번 생각해봐. 아들이 취업하려는 지금 시대와 아버지가 취직했던 과거 시대 사이에는 무려 40년이 넘는 시간적 격차가 있어. 40년간 한국 사회가 어떤 변화를 겪어 왔는지를 생각해 봤을 때, 과연 아버지 세대 때 사회에서 통했던 수단(학벌)과 행복의 기준이 현재 자식 세대에서도 그대로 통할 수 있을까?

: 그렇…..지는 않겠지, 시대가 바뀌었으니까. 취직 형태도 가치관도 이전과 같지는 않겠지.

: 네 말대로야. 아들이 유학 간 동안, 한국 사회는 IMF 사태를 겪으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어. 경제 구조, 구직 형태가 바뀌었고, 사람들의 가치관도 달라졌지.

: 어떤 형태로?

: 음….일단 선호하는 직업이 바뀌었지. 대기업 사원에서 공무원으로

: 아, 그러고 보니까, 옛날에는 공무원 되기가 지금보단 훨씬 쉬웠다고 하더라. 9급 공무원 경쟁률이 1.4:1까지 간 적도 있다는데(1979년 기준)

: 그래, 경쟁률 같은 건 시대마다, 지역마다 다르긴 하지만 공무원을 지금만큼 선호하고, 동시에 합격하기 힘든 시절은 거의 없었지. 조금 이상하지 않아? 우리가 지금 노인세대들처럼 절대적 빈곤에 허덕이는 것도 아닌데, 한 달에 200만 원 정도 받는 공무원을 고졸, 지잡대생, 명문대생 구분 없이 누구나 선호한다는 거 말이야.

: 하긴 한 달에 200만 원 이상 받는 일자리는 공무원 외에도 많은데, 유달리 공무원 경쟁률이 높긴 하더라.

: 그런 네 생각을 부모 세대 때 그대로 했었어. 공무원보다 돈을 더 버는 직장이 많은데 굳이 비싼 돈 주고 대학씩이나 나와서 고위직(5급 공채)도 아닌 하급 공무원(현재 9급)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던 거지.

: 그때는 취직이 잘돼서 그런 거겠지?

: 뭐 한창 경제 성장을 하던 시기라, 네 말대로 지금보단 상대적으로 취직이 쉬워서 그런 생각을 한 것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이유라면, 왜 대기업에 입사했던 사람들도 퇴사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걸까?

: 고용 불안정. IMF 이후 비정규직이 등장하면서 이런 현상이 더 심화되었지.

: 그렇지, 과거 부모 세대들과 달리 우리 세대에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졌지. 직업 선택에서 고려하는 1순위는 돈이 아닌 ‘해고 위험이 적은 직장’이 되었고.(30, 40대 대상 직업 가치관 순위 중 직업 안정성이 1위, 금전적 보상은 3위권 밖이었다. 출처 한국고용정보원 통계)

: 단순히 그것만 고려하는 건 아닌 것 같던데. 주변 사람들을 보니 직업 안정 외에도 자기 시간을 가지길 원하는 경우가 많더라고.(10대~40대 전체 직업 가치관 순위 1위. 몸과 마음의 여유. 출처 한국고용정보원 통계)

: 그것도 부모 세대와 우리 세대와의 차이이지. ‘돈보다도 자기시간을 가지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 말이야.(연령별로 몸과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경향은 10대, 20대에 가장 뚜렷 출처 한국고용정보원 통계) 아마 부모 세대에는 절대적인 빈곤 속에서 산 사람들이 많았던 만큼, 돈을 많이 버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겠지. 반면 우리 자식 세대는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난 만큼, 돈보다는 시간적 여유를 가지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일 터이고.

: 그게 바로 공무원을 더 선호하는 이유겠지? 공무원이 월급은 좀 적게 받아도 다른 직장처럼 잘릴 걱정 없이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으니까. 고졸 이상이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는 공무원 시험에 명문대생들의 응시율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도(서울대 학부생 10.6% 7~9급 공무원 준비. 출처 주간조선) 이런 세태를 보여주는 것일 테고.

: 그러고 보니 ‘남’ 너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하지 않았어?

: 응…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한 달에 200만 원을 못 받아도 잘릴 위험 없이 칼퇴할 수 있는 삶을 원하니까. 사실 나는 공무원이 되고 싶어서 준비하는 건 아냐. 한국에서 ‘안정적이고 칼퇴할 수 있는 직업’이 공무원 말고는 찾기 힘들어서 공무원이 되려는 것뿐이지.

: 흠…그렇다면 ‘남’, 너는 왜 네 10대의 모든 것들을 바쳐서 명문대에 진학한 거야? 명문대 간판이 너에게 ‘저녁 있는 삶’을 보장해주지는 않잖아. 학벌이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너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지 못하는데 너는 왜 그걸 고집하는 거지? 과거 부모 세대가 남들보다 높은 학벌을 가지려 했던 이유는 이해할 수 있어. 남들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직장을 가지는 것이었고, 학벌은 그 수단이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너의 목적(우리 세대의 목적)은 남들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직장이 아니라, 해고 위험이 적고 정신적으로 여유로운 직장을 가지는 거잖아. 네가 부모 세대와 다른 목적을 가졌다면 너의 수단 또한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 그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해. 네 말대로 높은 학벌이 내게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해주지는 못하지. 하지만 고용 불안정이 심화되고, 행복의 가치관이 바뀌었기 때문에 학벌이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으로 적절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려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높은 학벌과 그 기능(차별)이 더욱 절실해졌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