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고 싶다”…발달장애인이 갈 곳은 정신병원 뿐인가?

장애인 거주 시설 80% 이상 차지하는 발달장애인
"긍정적 행동 지원 프로그램 도움 줄 수 있지만, 대구시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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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7 09:39 | 최종 업데이트 2018-08-17 13:14

36년 전, 신정수(28, 가명) 씨를 낳았을 때 박금자(64, 가명) 씨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위로 딸 둘이 있지만, 늦둥이로 낳은 아들은 각별했다. 신우석(68, 가명) 씨도 마찬가지였다. 등산을 좋아하는 우석 씨는 정수 씨를 데리고 등산하는 날을 기대했다.

정수 씨가 5살이 됐을 때, '정신박약'(지금은 발달장애라고 부른다)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한 가지에 집착하는 성향은 있었는데, 실제로 장애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금자 씨는 믿을 수가 없었다. 금자 씨 눈에는 또래 중에서도 정수 씨가 외모가 빼어났고, 글자도 비교적 빨리 익혔다. 함께 클리닉을 찾아 치료를 시작했지만, 조금만 신경 쓰면 모든 것이 잘 될 거로 생각했다.

초등하교에 들어가며 나름대로 적응을 잘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상황은 나빠졌다. 나이가 들수록 또래와 차이가 나타났다.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아등바등 했지만, 그럴수록 주변과 어울리지 못했다.

한 날은 담임교사가 금자 씨에게 말했다. "저런 아이를 왜 일반학교에 보냈습니까. 다른 애들한테도 피해를 줍니다"

추궁한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생각해보니 실제로 자기 탓인 것 같기도 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정수 씨를 보며 금자 씨는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학교 친구들을 보면 아이스크림을 사 줬다. 정수 씨와 친하게 지내달라고도 했다. 3백명쯤 되는 학생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다 사준 것 같은데도 상황은 나빠지기만 했다. 정수 씨를 괴롭히는 친구도 있었다. 급식 잔반을 정수 씨 앞에 엎어버린다거나 하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우석 씨는 급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창문에서 뛰어내리려 한다는 것이었다. 학교를 찾아 상황을 수습했지만, 갑자기 튀어나온 아들의 과격한 반응에 진정하기가 어려웠다.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통학도 잘하기에 적응하고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아들의 속은 썩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수 씨는 고등학교에 가서 더욱 폭력적인 상황에 놓였다. 비장애인 학생들로부터 따돌림과 폭력을 당했다. 부모에게도 설명하지 못했다. 말없이 당하고만 있던 정수 씨는 남이 자기에게 하듯 자기도 남을 대하기 시작했다. 체구가 작은 학생에게 화풀이할 때도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정수 씨는 직업훈련학교에 갔다. 평소에도 "직장이 있어야 한다. 군대에 가야 한다"라는 말을 하던 차라, 아들이 직장을 잡고 살 수 있길 기대했다.

정수 씨는 세탁공장, 칠판공장 등을 전전했다. 환경은 좋지 않았지만, 그때만 해도 이상할 정도로 일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더운 여름에도 포기하지 않고 직장에 나갔다. 하지만 다니는 공장마다 이유를 말해주지도 않고 '못 데리고 있겠다'라는 연락이 왔다.

정수 씨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장애인 보호작업장이었다.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거절당하는 아들을 보는 것이 괴로웠다. 나이는 먹어가는데 직장도, 인간관계도 갖추지 못한다는 생각에 휩싸인 아들이 안타까웠지만, 아버지로서 나설 수 있는 일이 달리 없었다.

사람에게서 상처받은 정수 씨는 결국 방문을 닫았다. 화를 풀 곳이 없었다. 그즈음부터 아버지에게도 스트레스를 풀기 시작했다. 부모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2018년 6월, 장애인 가족 지원 프로그램으로 남이섬 여행을 가려고 했던 아버지는 아들을 깨웠다. 정수 씨는 아버지에게 달려들어 손가락을 깨물었다. 피부가 잘려나간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금자 씨는 혼자 아들을 돌봐야 했다. 금자 씨도 다리 수술을 해야 했지만, 남편이 먼저 입원해버리는 바람에 병원 치료도 받을 수가 없었다.

잠시라도 아들을 맡아줄 수 곳을 찾아 대구시 발달장애인 지원센터와 동구청, 장애인 단체를 돌아다녔지만, 해결책을 찾을 수 없었다. 정수 씨의 도전적 행동을 조금이라도 완화 할 수 있도록, 긍정적 행동지원 프로그램이라도 참여하고 싶었지만, 대구시에서는 해당 프로그램을 지원하지 않았다.

장애인 거주시설에도 보낼 수가 없었다. 마지막 선택지는 정신병원이었다. 금자 씨는 정신병원을 떠올렸다가도 정수 씨가 자는 모습을 보면 죄책감에 휩싸였다. 도무지 답이 없었다. 같은 갈등을 수없이 반복했다.

7월 30일, 장애인 부모회 모임에 갔다가 돌아온 날이었다. 집에 아무도 없었던 게 마음이 상했는지, 갑자기 정수 씨가 맨몸으로 밖으로 나갔다.

경찰이 정수 씨를 데려왔고, 부모는 그날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금자 씨가 다리 치료를 받는 그 기간만이라도 정수 씨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기로 했다. 버틸 때까지 버텨본다는 생각이었는데, 정수 씨 스스로 몸을 상하게 하는 지경까지 오자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아들이 사람에 대한 마음의 문을 닫았나 봐요. 사람이 무섭다, 사람이 무섭다고 그래요. 그러면서 행동이 자꾸 과격해졌어요. 온 곳으로 돌아다녀 봐도 우리한테 돌아오는 손길이 없네요. 할 수 없이 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거기서 애가 물 좀 주세요 이런 소리도 못 할 건데, 얼마나 무섭고, 외롭고, 우리를 찾겠습니까. 좀 도와주세요. 우리도 많이 지쳤습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맨몸으로 뛰쳐나갔겠습니까. 우리 애는 스트레스만 좀 풀어줄 수 있으면 보통 사람보다도 착하고 착실하게 살 수 있습니다. 좀 도와주세요."(금자 씨)

"수술이 끝나는 1개월 후에는 다시 퇴원시키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가정에서 감당은 정말 어렵습니다. 방법을 좀 찾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만 잘 된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러지 않고야 눈을 감을 수가 있겠습니까"(우석 씨)

2018년 6월 기준 대구시 발달장애인 수는 9,668명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들 중 1,230명이 장애인 보호시설에 입소해 있다. 거주시설 거주인 1,425명 중 80% 이상이 발달장애인인 셈이다. 대구시 20개 거주시설 중 지적장애인 거주시설은 7개이지만, 나머지 유형의 시설에도 발달장애인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시설이 아닌 가정에서 거주하는 나머지 8천 명 이상의 발달장애인은 언제든지 정수 씨와 같은 상황에 빠질 수도 있는 셈이다.

장애인 거주시설 입소가 발달장애인에게 최선의 선택지인 것도 아니다. 대구에서는 희망원 사태로 잘 알려져 있듯이, 거주시설에서의 장애인 인권 침해도 심각한 현실이다. 발달장애인이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조민제 장애인지역공동체 사무국장

조민제 장애인지역공동체 사무국장은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도전적 행동에 대해 억제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신병원에 가는 경우 상황은 더 악화된다"라며 "서울이나 경기에서 시도되는 프로그램 중 발달장애인의 욕구를 분석해서 스트레스를 저하해주는 긍정적 행동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 하지만 대구에는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성인 발달장애인이 대구에 7천 명 정도다. 이들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라며 "발달장애인법도 있고 대구시에도 관련 조례가 있는데 적어도 긍정적 행동 지원 프로그램 정도는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강명숙 대구시 장애인복지과장은 "보호작업장도 좀 더 나은 환경에 사람들이 몰린다. 비장애인이 생활하는 곳만큼 환경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발달장애인은 평생 지원이 필요하다. 지금은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단계라 사각지대가 있을 수 있다.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려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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