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준의 육아父담] 방학의 재미, 그리고 노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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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1 11:59 | 최종 업데이트 2018-08-31 11:59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이 끝나간다. 덥다, 덥다 하면 더 덥다지만, 이 말을 하지 않고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번 여름은 정말 더웠다. 태풍도 요리조리 피해가고 한 번씩 대지를 식혀주던 흔한 소나기도 없었다. 에어컨을 끼고 살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나라에서 선심 쓰듯 전기료를 깎아줬겠나. 물론 내년이면 또 이번 여름이 제일 더운 것 같다 하며 또 혀를 내두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여름은 점점 더워지고 우리는 더위에 점점 약해진다.

그래도 이제는 한낮의 뙤약볕도 죽일 듯이 달려들지 않고 저녁이면 살랑살랑 바람도 불어온다. 제법 숨 쉬고 살만하다. 여름은 숨바꼭질하듯 꼭꼭 숨어있던 아이들이 ‘여기 있다’ 하며 하나, 둘씩 나타나는 것으로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더위를 피해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아이들이 놀이터에, 공원에 나타났다. 어디를 그렇게 쏘다녔는지 까무잡잡, 훌쩍 커버린 키.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 이번 여름방학 뭘 했냐 물으니 할머니 집에도 다녀오고, 캠핑도 갔다 왔다고 했다. 그새 참 많이도 컸다.

딸의 방학은 평소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첫 일주일은 동생 어린이집 방학에 맞춰 집에서 쉬고, 가끔 놀러 가면서 방학기분을 살짝 내고는 학교 돌봄 교실을 갔다. 한 달이나 되는 여름방학 대책이 막막했는데 돌봄 교실에 당첨되어서 쾌재를 불렀다. 맞벌이 형편에, 어디 길게 맡길 상황이 안 되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겪어보니 돌봄 교실은 대단한 제도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부모라면 돌봄과 방과후, 이 두 가지만 기억해도 학교생활은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아이는 학교 ‘돌봄교실’을 갔다가, ‘방과후교실’을 갔다가 또 학원을 갔다. 아이에게는 유감일지 모르지만 부모에게는 마음이 놓이는 별 다를 바 없는 일상이었다. 다만, 도시락을 싸서 간다는 게 결정적 차이였다. 아내는 팔자에 없는 도시락 만들기를 한 달 내내 했다.

다행인 것은 아이가 도시락을 좋아했고, 만드는 엄마도 도시락 싸는 기쁨이 그만큼 컸다. 하트모양 맛살계란부침, 소떡소떡(소세지떡) 꼬치, 유부초밥과 주먹밥, 불고기, 잡채, 거기에 과일 후식까지. 사랑이 듬뿍 담긴 도시락을 준비하기 위해 매일 밤 고민하고 매일 아침 분주하게 움직였다. 거기에 보답하듯 아이는 도시락통을 싹싹 비워왔고 어떤 날은 친구들에게 인기가 너무 많아 별로 못 먹었다고 자랑하듯 이야기했다.

그러니 인터넷을 뒤져가며 신메뉴 개발에 몰두할 수밖에. 도시락 먹는 재미에 학교를 가는 아이. 아내는 방학에도 학교를 가는 아이에게 미안함을 덜기 위해 더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걸 보며 지금은 아이가 먹고 있고, 예전에는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먹었던 도시락을 준비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수고이자 정성인지를 깨달았다.

하지만 방학에는 도시락의 재미 외에도 방학숙제라는 ‘노잼’도 있었다. EBS 시청, 그림일기 쓰기, 매일 30분 책 읽기 등등 ‘숙제’라는 것이 붙으면 숙명적으로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부담이다. 세상에 숙제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방학이라도 마음 편히 보내게 하고 싶지만 밀리면 더 힘들 것 같아 잔소리해대며 꾸역꾸역 숙제를 시켰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벼락치기’는 있을 수밖에 없다. 급기야 책 읽기 실적에 쫓기던 아이는 점점 얕은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서너 살 때나 읽었을 만한 그림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런 동화책들 말이다. 하지만 번번이 엄마의 철통같은 감시에 제지를 당해 한숨을 푹 쉬며 다른 책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아빠와 함께 있던 아이는 묘수를 생각했다. 동생 챙기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 첫 번째 책은 적당한 책을 선택하여 읽고 중간에 얕은 책을 끼워서 읽은 것이다. 그리고 독서장에 차곡차곡 책 이름을 채웠다. 완전범죄를 꿈꿨겠지? 어쩐지 첫 번째 책을 읽을 때 큰 소리로 생색을 내더라니. 일명 ‘끼워 넣기’, 이것은 나 어릴 적 멀쩡한(?) 비디오 사이에 19금 비디오 끼워 빌리기와 동일한 수법이다. 벌써 이 방법을 깨닫다니. 영리한 녀석, 아니 영악한 녀석! 하지만 허술한 아빠를 대신해 다음 날 아침 엄마가 ‘매의 눈’으로 잡아냈다. 그래도 이미 지나간 것을 어쩌랴. 아이는 그래서 아빠가 엄마에게 혼났냐며 싱긋 웃으며 만족해한다. 일단 실적은 채웠으니 그만이라는 표정이다.

그렇게 방학숙제도 마무리하고, 어느덧 개학날이다. 개학 전날, 일찍 자야 한다고 침실로 억지로 밀어 넣었지만 한참을 입씨름한 후에 통곡을 하며 거실로 나온다. 개학 책가방을 직접 싸고 싶다고 한다. 눈물을 닦으며 필통, 공책, 알림장, 악세서리, 편지… 이것저것을 챙겨 넣는다. 지각한다고 잠을 재촉해도 아이는 쉬이 잠들지 못한다. 같은 학교를 다녀도 방학과 개학의 기분은 그렇게 다른가 보다. 못 봤던 친구 볼 생각에, 선생님께 만날 생각에, 새로운 학기에 대한 기대로 들떠 있다.

짧은 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하고 나니 아이와 방학을 방학답게 보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다음 방학에도 별수 없다. 겨울방학에도 또 여름방학과 마찬가지로 돌봄을 가고, 방과 후를 가고, 학원을 갈 것이 뻔하다. 대신 엄마는 이번에는 예쁜 보온도시락을 준비해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먹이기 위해 또 매일 아침, 저녁으로 분주하게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겨울방학에는 제대로 된 여행하나 계획해서 다녀올까 싶다. 개학을 하고 아이는 이제는 급식 먹는 재미로 학교를 다닌다. 오늘은 짜장면이라며 기분 좋게 등굣길을 나섰다. 이랬든, 저랬든 학교가 좋으니 다행이다. 그렇게 새로운 학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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