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철의 멋진 신세계?] 로힝야의 비극과 페이스북의 무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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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 세계에 깊이 들어앉아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제어 능력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들이 얼마나 그 세계의 깊숙한 곳에 발을 딛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일상과 미디어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완벽한 일체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상의 모든 것이, 혹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순식간에 미디어의 콘텐츠로 재생된다. 지금 우리는 삶과 미디어가 동시적으로 작동하는 전례 없는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22억 명의 사용자를 자랑하는 페이스북은 마크 저커버그의 야망처럼 지구상에서 가장 유대가 돈독한(?) 공동체가 됐다. 돈독하지 않으면 불가능해 보이는 내밀한 감정의 교류가 이곳에서는 얼굴 한번 보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어떤 거리낌도 없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 도를 넘어선 간섭이나 감정의 발산, 혹은 뭇사람들의 무례한 평판에 시달리지 않을 자신만 있다면, 이 세계는 그런대로 자족적이거나 소박한 자기 현시의 공간이 될 만하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개인의 차원, 그 너머에서 발생한다. 상상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자부해온 소셜미디어는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는 패악의 근원지가 되고 있다. 진위를 분별할 공신을 잃어버린 이 세계에서 혐오의 날개를 단 거짓과 가짜가 돌이킬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분쟁과 폭력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페이스북이 만들어낸 로힝야의 비극

지금 이 시각에도 방글라데시 난민촌에는 미얀마로부터 추방당한 사람 90만 명이 지구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삶을 연명하고 있다. 미얀마의 인종청소를 피해 이주한 로힝야족 난민들이다.

19세기 영국의 반인륜적 식민지배에서 비롯된 미얀마(버마)와 로힝야족의 갈등은 방글라데시로 25만 명이 축출된 1978년을 기점으로 인종청소 양상으로 변모했다. 1991~92년, 2012년, 그리고 2016년과 2017년까지 자행된 로힝야족에 대한 학살과 추방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아웅산 수치가 2015년 집권하면서 이 기나긴 비극이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는 이제 한낱 물거품이 됐다. 수치는 너무나도 명백한 미얀마의 로힝야족 박해가 가짜뉴스라고 단언하기까지 했다.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의 인종청소는 최근 들어 더욱 극악한 양상을 보인다. 2017년 대학살 이후 공식 집계된 사망자 수 6,700명보다 훨씬 많은 수인 25,000명이 학살당했고 성폭력 피해자는 19,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연구자들에 의해 조사됐다. 이 중 어린이 사망자가 성인의 4~4.5배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는 현재 사태가 단순히 오랜 갈등과 원한에서만 비롯된 것이라 여길 수 없는 의구를 갖게 한다.

특징적인 것은 미얀마에 페이스북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분쟁과 갈등이 더욱 극단으로 치달았다는 점이다. 2013년 무렵 오랜 규제가 풀리면서 시작된 미얀마의 인터넷 보급은 페이스북 개설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미얀마에서 인터넷은 곧 페이스북이었던 셈이다. 페이스북은 이제 미얀마 국민 5천만 명 중 1,800만 명이 사용하는 지배적인 미디어가 됐다. 인터넷 세상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던, 인터넷의 역기능에 대한 방비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던 미얀마 국민들에게 페이스북은 그야말로 진실의 도구였던 셈이다. 일상의 증오는 페이스북을 타고 일파만파 번지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증오와 폭력을 조장하는 악마적 선동이 횡행했고 이는 곧바로 끔찍한 학살로 이어졌다.

페이스북을 통해 뿌려진 증오와 원한을 부추기는 가짜뉴스와 혐오사진은 버젓이 5년여 동안 인터넷을 타고 미얀마 전역을 누볐다. 그러는 동안 그 어떤 방해나 제재도 없었다. 그러는 동안 페이스북은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버마어(미얀마 주류 민족 언어)를 할 줄 아는 페이스북 직원은 2014년경 1명이었다고 한다.

페이스북은 그동안 이 문제를 제기한 여러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사태에 어떠한 책임도 지려 하지 않다가 최근에야 미얀마 군부의 계정을 삭제하는 등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방치한 결과 일어난 일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소셜미디어, 혁신이라는 이름의 무책임

로힝야만의 문제일까? 아니다. 국제적으로 가장 심각한 분쟁 지역이 된 리비아 사태에서도 이와 거의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리비아의 무장세력은 총과 로켓으로만 싸우는 게 아니라 페이스북으로도 싸운다고 얼마 전 뉴욕타임스(2018.9.4.)가 보도했다.

전의에 불타는 모습은 일선 병사들만의 것이 아니다. 페이스북을 통한 무기거래가 수시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정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무장세력을 위해 적들의 좌표와 지도를 게시하고 정보를 자발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키보드 전사’들에게 페이스북은 또 다른 전장인 셈이다.

이외 지역에서도 페이스북을 통해 뿌려진 온라인 가짜뉴스가 실제 폭력으로 이어졌다. 스리랑카에서는 불교도와 이슬람교도의 증오를 부풀린 거짓 정보로 인해 서로의 보복이 이어지면서 대규모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인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셜미디어 중 하나인 왓츠앱을 통해 아동 납치에 관한 소문과 음모가 퍼지면서 최근 몇 달 동안 여러 차례 사망자가 발생했다.

페이스북이 밝힌 이용자 현황을 보면, 분쟁과 갈등이 심한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매달 1억8천1백만 명이 페이스북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 갈등 지역에 있는 무장세력은 이미 페이스북을 강력한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페이스북 이용률이 전국 평균보다 높은 곳, 어디에서나 난민에 대한 공격이 약 50% 증가했다고 한다.

이쯤이면 페이스북 혹은 소셜미디어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앵무새처럼 줄곧 떠들어대는 “우리는 플랫폼”일 뿐이라는 말은 이제 실효가 지난 변명일 뿐이다. 우리는 책임이 없고 이를 이용하는 너희들이 문제라는 뜻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아닌가? 이 말은 “기술은 가치중립적이며 이를 이용하는 인간이 문제”라는 기술주의자들의 해묵은 논리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미 오래전에 기술의 책임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한스 요나스가 말한 바처럼, 기술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시공간적으로 광범위하게 적용되며, 회피하기 어려운 강제적 적용 때문에 반드시 윤리적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자신들이 보유한 기술이 인류 공영에 기여할 것이라고 부르짖는 실리콘밸리의 위선적인 혁신가들에게, 기술은 그저 비즈니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페이스북이 피하고 싶은 가장 치명적인 위협은 바로 검열과 제재, 그리고 이로 인한 사용자들의 이탈이다. 만일 그러지 않고서야 로힝야의 비극을 저토록 오래 방치할 수 있었겠는가.

“사회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인터넷만 있으면 된다”고 했던, ‘아랍의 봄(자스민 혁명)’ 주역, 와엘 고님은 이후 오랜 고민 끝에 “우리가 사회를 해방시키고 싶다면 우리는 인터넷을 먼저 해방시켜야 한다”고 자신의 의견을 수정한 바 있다.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기술의 무한 질주와 그로 인해 일어나는 비극적 결과를 결코 방관해서는 안 된다. 기술의 문제는 기술로 극복할 수 없다. 우리는 무책임한 기술로부터 우리 자신을 스스로 구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