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먹칠] 강서구PC방 살인사건, 사라진 의료윤리와 경솔한 언론 / 박미래

20:17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의 강력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은 80만 명을 훌쩍 넘었다. 국민청원 도입 후 최대 수치이다. 그만큼 사건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분노가 거세다는 의미이다. 특히나 피해자의 시체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를 담은 남궁인 의사의 글이 개인 SNS에 게재되면서 시민들은 피해자 시체 훼손정도를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얼굴 상처의 수, 살해 당시의 참혹했던 피해자의 외관,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연민까지 생중계하듯 알려주는 글이었다.

▲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현장에 방문한 한 시민 한 시민이 22일 오후 1시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현장에 방문해 추모글을 적고 있다. (사진=오마이뉴스 신지수 기자)

강서구 PC방 살해사건의 피해자 담당 의사였던 남궁인은 개인 SNS 계정에 피해자의 상해 정도를 상세하게 묘사한 글을 올렸다. 의료진이어야만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글에는 피해자의 모습이 눈앞에서 그려질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남궁인의 글은 순식간에 화제가 되었다. 남궁인의 직업은 의사이다. 사건과 관련하여 진술해야 하는 내용이었다면 개인 SNS가 아닌 법정에서 증언하는 것이 피해자의 담당 의사로서 역할이다. 남궁인은 자신이 글을 쓰게 된 이유가 언론보도를 통해 CCTV가 공개되었으며, 사건과 관련한 팩트가 보도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훤칠한 얼굴’과 같은 단어 사용은 피해 사실과 전혀 관계가 없는 정보였다. 그의 글은 자신이 목격한 것을 사실적으로 적은 자극적인 글이라는 점에서 그쳤다. 범죄의 엄격한 처벌을 요구하는 글이라고 했지만 피해자의 모습만 묘사가 될 뿐 사회적 논의로 확장하는 메시지는 없었다.

SNS에 피해자의 모습을 묘사하는 글을 올린 개인의 책임으로만 탓할 수는 없다. 남궁인의 글 게재 이후 언론 보도 행태 때문이다. JTBC 뉴스는 기자 목소리를 통해 남궁인 글의 한 대목을 그대로 보도했다. 유가족 동의를 구하고 쓴 것인지도 모를 내용은 기자의 ‘참담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보도됐다. 사회적으로 극도의 분노가 일어났다면 그 분노가 향할 곳이 어디인지를 논의하는 장은 언론보도에서 시작할 수 있다. JTBC의 보도는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시민들의 생각을 논의할만한 주제를 던지지도 못했다. 단지 사건의 나열을 토대로 시민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하였다. 신뢰도 1위 방송사인 JTBC의 뉴스였다.

사회의 불합리한 지점을 고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감정적 반응을 넘어서야 한다. 사회적 논의로 확장하는 원동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감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멸하기 쉽다. 남궁인의 목격을 담은 글과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언론보도는 시민들에게 당장은 효능감을 줄 수 있겠지만, 결국에는 공허함만 남길 것이다. 시민들의 분노를 일으키지만, 분노를 사회적 논의로 확장하는 힘이 없다. 언론은 사람들의 공허한 분노를 반복 생산한다. 그리고 남궁인의 글이 뉴스가 되고, 기자는 그 뉴스를 가치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한다. 뉴스의 가치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었을 때 인정받을 수 있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으로 인해서 일상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나의 일상마저 안전하지 않다는 위협, 사건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경찰에 대한 믿음의 균열, 심신미약과 관련한 감형제도에 대한 의구심 등은 시민들에게 불안이 되고 있다. 불안의 원인지점을 해소하도록 사회적 논의의 장이 필요하다. 의료 윤리를 잊은 채 개인의 목격담을 담은 글이 아닌, 그 글을 재생산함으로써 뉴스의 가치를 얻었다는 착각이 아닌 이번 사건으로 인해 사회가 놓치고 있는 빈틈을 논의하고 개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