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만화산책] 애국심의 두 얼굴, ‘복숭아 동자’와 ‘철선 공주’ (1)

19:54

몽키몽키 매직 몽키매직~! 1990년, 원숭이 쇼가 시작됐습니다. 쌍절곤 흔들어대고, 스케이트보드 타고 하늘로 날아가네요. 쓩~! <날아라, 슈퍼보드>. 사람들이 넋 놓고 쳐다봅니다. 올라갑니다, 올라갑니다, 쭈욱~쭉 뻗어 나가는 여의봉처럼, 시청률 올라갑니다. 그리고 꽝, 하고, 최고치를 찍어버렸습니다.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라네요. 역시, 신기록 제왕, <서유기>의 후손이로군요~.

서유기는 중국 고전 소설입니다. 당나라 승려 삼장이 서역으로 불경 얻으러 가는 이야기입니다. 그에겐 꼴통 제자가 세 명이나 딸려있지요. 1번 타자, 손오공~ 도술 좀 부린다고 석가모니한테 시비 건 독불장군 원숭이~! 2번 타자, 저팔계! 은하수의 지도자로, 달나라 여신을 범하려다 인간 세상으로 쫓겨나는 죄를 받았습니다. 인간의 뱃속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는데, 그만 돼지 뱃속에 떨어져 꿀꿀이 요괴로 태어났습니다. 그래도 정신 못 차리고, 행인을 겁주고 잡아먹기까지 합니다. 한편, 저팔계처럼 천상의 죄를 받고 지상으로 온 다른 요괴가 있었으니, 마지막 타자 사오정이었습니다. 옥황상제 호위무사였던 오정은 연회에서 보물 컵 좀 깼다고 죽도록 맞고 속세로 왔습니다. 이후 억장이 무너졌는지 하천 요괴가 되어 인간을 습격하며 살아왔습니다. 아이고~ 머리야, 어지러운 당나라 사(四)총사네요.

▲당나라 사총사, 손오공, 삼장법사, 저팔계,사오정~! [사진=Rolf Müller]

게다가, 서쪽 동네 북인도는 무려 십만 팔 천 리 밖에 있었습니다.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겠습니까? 벼슬아치들, 도적들, 백성들의 울부짖음이 시시때때로 그들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들이 멈추는 곳에는 명나라가 있었습니다. <서유기>의 작가, 오승은이 살았던 시대지요. 명나라는 원나라를 무너트리고 들어섰습니다. 마침 원나라가 홍건적의 난으로 삐거덕대고 있었거든요. 명나라 황제는 원나라처럼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는 공포정치라는 예방주사를 꺼냈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모가지 날아가는 시대가 온 것이지요.

덕분에, 조정에 목 달린 것들은 그가 총애하는 신하들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제멋대로 백성들을 착취합니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아아, 그러나 세상은 계산대로 안 되는 법~! 아이러니하게도, 이 공포정치에 백성들이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다지요? 당나라 사인방의 여행길은 이러한 명나라의 부정부패로 가득했습니다. 오승은의 끓어오르는 비판 정신과 새 세상에 대한 의지 덕분이었지요. 손오공 일행, 이를 해결하며 나아가자니, 머리를 맞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세 꼴통, 깨달음을 통해 새사람으로 거듭납니다. 오호라, 서역으로 가는 길이 곧, 불경이었던 거지요. 네 사람의 불경은 말 그대로 ‘수많은’ 중국인들의 마음에 서서히 스며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중국인들을 위협하는 사건이 터집니다. 그것은 바로, 일본의 중국 침략이었습니다. 이야기는 19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합니다. 당시 영국은 유럽의 촌닭으로 통했습니다. 그 이유는 18세기 말부터 유럽을 휩쓴 이성의 빛, 즉 계몽주의 때문입니다. 종교가 으뜸인 시대는 지났습니다. 보다 합리적으로~! 유럽 사회, 프랑스를 중심으로 낡은 옷을 벗고, 르네상스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합니다.

대륙 쪽에서 뭐가 번쩍번쩍하는 것 같은데? 영국, 발꿈치 들고, 콩콩 뛰어도 보고 소리쳐 보기도 합니다. “친구야~! 무슨 일인지 우리도 좀 알려 주라~” 그도 그럴 것이, 영국은 뚝 떨어진 섬나라였거든요. 게다가 교통이 발달한 시대도 아니었지요. 유럽에서 무엇을 만들던 간에, 영국은 제일 나중에 받아보는 꼴찌 국가였습니다.

씩씩대던 영국, 거울 속 얼굴이 처량하네요. 하이고, 이러다 우리나라 격 떨어지겠네~! 결국, 영국은 자존심을 지킬 다른 방법을 찾습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왕따가 아니다, 우리가 대륙을 왕따 시키는 거다~” 영국, 우르르 유행 좇는 유럽 대륙과 우리는 다르다며 ‘고립주의’를 선언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생각에 힘을 빡~! 실어주는 대박 사건이 터지고 말지요. 증기기관이 탄생한 것입니다. “우리더러 촌닭이라 했던 것들 다 나와!” 이렇게 섬나라 영국은 대륙이 우러러보는 기술의 선두주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정신이 번쩍 듭니다. 당시, 동유럽 끄트머리에 자기처럼 촌닭 취급 받던 나라가 또 하나 있었습니다. 러시아였지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들이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하며, 동북아시아에 눈독을 들이는 게 아닙니까? “끙…이러다가 내 자리까지 넘보는 거 아녀?” 그런데, 막상 덤비려니, 한숨 나옵니다. 저~ 끝까지 군대를 보내자니 벌써부터 피곤하네요. 영국, 러시아를 견제해줄 꼬봉 하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래서 망원경으로 주위를 쭈욱~ 둘러봅니다. 앗, 마침 으르렁~하며, 러시아를 째려보는 나라가 하나 있군요. 그건 바로, 일본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빨갛게 독이 올라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선을 노렸습니다. 식민지 건설, 대륙 진출이 목표였지요. 그러니 조선의 행님을 자처하는 청나라는 눈엣가시였습니다. 게다가, 저 윗동네 러시아도 조선을 탐내네요. 그쪽 동네는 겨울에 항구가 꽁꽁 얼어 배를 못 띄운다나요~ 온 동네 눈치에 땀을 뻘뻘 흘리던 일본, 결단을 내립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일본은 조선을 독립시킨다면서 청나라에 싸움을 겁니다. 이름하여 청일전쟁~!

일본, 승리합니다. 그리고 바로 야욕을 드러냈지요. 일본은 청나라에 요동반도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그냥 두고 볼 러시아가 아닙니다. 러시아, 일본을 가로막더니 친구들을 불러냅니다. 동맹국 프랑스가 달려옵니다. 독일도 달려오네요. 러시아는 아시아나 먹고 유럽은 신경 꺼라~!하는 속셈이었지요. 어쨌든 떼거리로 몰려와 삿대질이 시작됩니다. “요동반도 포기해!” 일본이라고 별수 있나요. 두 주먹 불끈 쥐고 콧구멍만 벌렁대는 수밖에요.

이를 본 영국, 이때다 하고 영광의 고립 벨트를 살짝 풉니다, “일본아, 너나 나나 섬나라 아니니, 형제여, 내가 밀어줄 테니, 러시아를 매우 쳐라~!” 이에 일본이 박수치며 화답합니다. “유럽의 왕 영국 신사님이 우리랑 친구 먹는다고요? 영광입니다. 무엇이든 시켜만 주세요.” 이렇게 일본, 러시아와 한 판 붙었습니다. 그리고 승리를 거두었지요. 일본의 제국주의 올림픽 공식 데뷔전은 성공적이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일본은 영국처럼 지지 않는 태양을 띄웠습니다. 감시 초소의 레이더처럼 빨간 햇살을 어지럽게 뿜어대면서요.

전쟁이 끝났습니다. 일본의 잔치도 끝났습니다. 다들 전쟁에 정신 팔렸을 때, 산업화 대열에 합류한 일본은 틈새시장을 노립니다. 공장은 물자를 팡팡 찍어 수출했고, 반짝 특수를 맛보았지요. 그러나 전쟁이 끝난 마당에 이제 누가 그걸 사주겠습니까? 설상가상, 안 그래도 장삿집에 파리만 날리는데, 사회주의 바람을 타고 인권 운동이 벌어집니다. 돈 벌기에 혈안이 된 일본 정부에 이는 체제의 위협이었습니다.

마침, 관동 대지진이 일어납니다. 어딘가에서 조선인이 혼란을 틈타 일본인의 씨를 말리려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진상조사 따위는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조선인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그들이 불편해하던 사회주의 운동가들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무자비한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근거 없는 소문이, 무지한 폭력이 죄 없는 조선인들을 죽였습니다. [사진=KBS 아카이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공황이 세계를 덮쳤습니다. 일본 사회는 너덜너덜한 상태였습니다. 경제 공황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일본은, 급속도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민심이 팍팍해졌습니다. 이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그들이 1차 세계대전에서 누렸던 영광이었습니다.

“역시 전쟁만이 살길이다!” 그들은 만주 땅을 침략하기로 합니다. 예전에 눈독 들였던 요동반도가 거기 있었지요. 꽝~! 일본은 우선, 만주에 있는 멀쩡한 철도에서 폭탄을 터뜨립니다. 그리고 범인으로 중국군을 지목했습니다. 공격 개시! 일본의 만찬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에 만주는 애피타이저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야금야금 중국을 먹어치우기 시작합니다. 세계가 놀랄 식탐이었습니다. 온갖 저질 자작극으로 중국을 차지한 일본, 참으로 위풍당당했습니다.

그들은 점령한 땅뿐만 아니라, 식민지 주민들의 정신까지 지배하려 했습니다. 들어는 보셨나, 문화전술(文化戰術)~! 식민지는 물론이고, 자국에도 외국영화에 대한 엄격한 검열이 있었습니다. 말이 좋아 검열이지, 사실상 금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빈자리는 일본산 선전 영화들로 채워졌습니다.

마침 그때, 일본에서 잘 나가던 예술 산업이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이었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아시아에는 장편 애니메이션이 없었습니다. 누구든 뚝딱 만들어내기만 하면, 아시아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일본은 이를 두고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자부심은 역대 최강이다 못해 오만방자 수준이었습니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금싸라기 땅이었습니다. 훌륭한 시장이자, 생산기지니까요. 일본은 그 땅을 손에 넣겠다며 중국을 박살냈습니다. 그리고 혼란을 틈타 사람들을 상대로 온갖 전쟁범죄를 저지릅니다.

‘누군 먹을 줄 몰라서 안 먹는 줄 아나!’ 대공황으로 경제 위기에 시달리던 미국, 괜히 심술 납니다. ‘이제 그만! 너무 욕심내지 말라고.’ 미국이 경고합니다. ‘웃기시네, 부러우면 지는 거 몰라?’ 일본, 콧방귀 빵~뀌고 동남아시아로 식민지 사냥에 나섭니다. 미국이라고 가만있을 수 있나요, 그들은 결국 행동에 나섭니다. 약 올리듯 중국에 돈을 융통해 줍니다. 일본에 쫄지 말라는 거지요. 게다가 결정적으로, 일본으로 석유 수출을 금지해 버립니다. 비상사태였습니다. 일본에는 유전이 없었거든요.

이에 눈 뒤집어진 일본, 결국 미국 하와이 진주만 해군 기지를 기습 공격해버립니다~! ‘우리가 콧대 높은 미국을 한 방 먹였어!’ 영화로 만들어서라도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은 제국의 영광이었습니다. 일본 정부의 입이 쭉~ 찢어집니다. 아시아 최초 애니메이션이 진주만 공습 무용담이 되기 일보 직전이니까요~!

▲진주만 공습으로 이틀 동안 불탔다는 애리조나 미군 전함.

그런데, 그림은 뭐 아무나 그리나요? 그들이 직접 예술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을 결심한 일본 해군성은 이름난 예술가, 세오 미츠요(瀬尾 光世)를 찾아갑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일본 정부가 미워했던 사회주의자였습니다. 당시는 세오가 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의 죄목은 ‘프롤레타리안 영화계에서의 활동’ 이었지요. 그는 하고 싶은 예술을 했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혹독한 고문 끝에 감옥을 나왔더니, 또 다른 감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국가가 그에게 예술을 허락했지만, 군부 정권을 찬양해야만 한다는 절대 조건이 걸었던 겁니다.

애니메이션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주인공은 모모타로였습니다. 그 뜻은 복숭아 동자로, 일본의 전설 속에 나오는 인물이지요. 전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강가에서 빨래하던 할머니, 빨래하다 강물에 둥둥 떠내려가던 복숭아를 건집니다. 그런데 그 복숭아 속에 남자아이가 나오더니만, 할머니 부부의 자식이 되려고 왔다는 겁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약탈을 일삼는 괴물이 나타납니다. 모모타로는 동물 친구들과 함께, 괴물의 요새로 쳐들어가고, 그들의 군대를 무찌릅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행복하게 살았다~!

▲일본 전설에 나오는 모모타로의 모습이랍니다.

이 전설은 진주만 공습을 묘사하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오의 손에서 37분짜리 애니메이션, <바다독수리 모모타로>로 변신 중이었지요. 일본, 하루라도 빨리 잘난 척하고 싶어 난리입니다. ‘제국주의의 영광이 아시아 최초의 애니메이션에 기록되리라~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