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준의 육아父담] 외출 눈치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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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2 10:49 | 최종 업데이트 2018-11-02 10:49

퇴근 무렵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일이 좀 많아서 야근 좀 하고 가도 될까?”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당연히 안 돼. 절대 안 돼. 죽어도 안 돼.”라는 외침이 소란을 피우지만 별수 없이 차분한 목소리 (사실은 삐진 목소리)로 마지못해 승낙한다. 사실 무엇을 하고 들어오는 것은 하나도 중요치 않다. 언제 들어오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야근이든 회식이든 혹은 개인적인 약속이든 말이다.

애들 밥 다 먹이고 나면 올까? 목욕까지 시키고 나면 들어오려나? 재우기 전까지는 들어오겠지? 끝도 없는 기다림 속에 원망만 커진다. 야근한다고 하면 ‘일할 때 좀 열심히 하지’ 생각이 들고, 회식을 한다 하면 ‘요즘 누가 술을 먹어? 점심이나 먹지’ 싶다. 또 약속이 있다 하면 ‘굳이 지금 나가야 하는 일인가?’ 따지고 싶다. 그만큼 늦게 오는 게 그렇게 싫을 수가 없다. 혼자 아이들과 남겨지는 것이 너무 힘들다.

옛말(?)에 ‘애 보니 밭맨다.’라는 말이 있다. 아이를 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면 고단한 육체노동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일까. 거기에 더해 아이를 ‘혼자’ 보는 일은 정신노동 + 육체노동 + 감정노동이다. 실로 ‘극한 직업’에 나올법한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이것은 해도 해도 늘지를 않고 아무리 경험을 쌓아도 달인이 될 수도 없다.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절체절명의 나 홀로 육아. 그 시간을 버티고 이겨내는 것은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다.

말을 들으면 아이가 아니다. 시키는 대로 한다면 로봇일 것이다. 아이들은 하지 말라는 것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린다. 아이가 둘이다 보니 맨투맨 마크도 안 된다. 한 녀석을 돌보고 있으면 한 녀석이 심술을 내고, 큰아이 숙제라도 시킬 생각으로 책상에 같이 앉으려면 작은 아이는 핸드폰이라도 보여주며 방치해야 한다. 놀다가 싸우다가 울다가 다시 웃다가를 반복하는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 무엇에 홀린 듯같이 놀다가 혼내다가 달래주다를 반복하다 보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이들은 야단법석, 집안은 엉망진창, 나는 유체이탈이다. 그렇게 혼이 빠지게 보내다 보면 당연히 시간이라도 빨리 가야할 것 아닌가? 시간이 제법 흘렀겠지 하며 시계를 보다 또 다시 좌절하게 된다. 겨우 십여 분이 지났다. 그 후로 5분 단위로 시계를 쳐다보고 전화를 째려보고 창문 밖을 살펴도 오신다는 님은 기약이 없다. 힘든 시간일수록 멈춘 것 마냥 왜 그리 더디 가는지 참 미스터리다. 그만큼 육아를 하면서 홀로 남겨진다는 것은 무엇보다 슬프고 힘든 일이다. 오죽하면 엄마들이 (때로는 아빠들이) 온종일 기다리는 것이 택배와 남편(때로는 아내)라는 우스갯소리가 떠돌겠는가.

아이를 키운다고 해서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을 아예 안 할 수는 없다. 모든 인간관계를 싹 다 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적당히, 눈치껏, 돌아가며 외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에 대한 일종의 배려인 셈이다. 주 5일을 기준으로 (주말에 따로 약속을 잡는다는 것은 눈총 맞아 죽을 일이다.) 절반을 넘기지 않도록 자제하고 연이은 외출은 삼가는 것이 좋다. 상대방의 외출을 보장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득이한 경우도 있겠지만 집안일을 나누듯, 외출도 나눠야 한다. 하루는 참을 만하고, 이틀은 그래도 참을 만하고, 사흘은 억지로 참고 있지만 그런 날이 이어지고 기약 없다면 누구라도 어느 순간 폭발하게 된다. 독박육아는 불화의 불씨가 되고 번진 그 불길은 좀처럼 잡기가 어렵다.

그저께 아내는 1박 2일 교육을 갔다. 애를 떼놓고 어디를 가는 것은 첫째 낳고 처음이니까 8년 만의 ‘나 혼자 산다’인 셈이다. 교육을 가는 건지 놀러 가는 건지 마냥 신나보였다. 물론 남은 가족들을 걱정하는 척도 간간히 해준다. 그리고 그날 밤 아이들은 예상대로 엄마가 보고 싶다며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8년 만에 엄마가 집에 없다. 8년 만에 아내가 집에 없다. 엄마 금방 올 거야 하며 애들을 달래는데 나도 덩달아 아내가 보고 싶다. 뭐지 이 느낌은? 당황스럽다. 새삼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다. 그래, 우리는 육아 파트너가 아니고 인생 파트너였다.

하지만 그리움과 고마움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교육을 갔다 온 다음날 야근을 하고 집에 온 아내에게 또 늦었냐며 쏘아붙이고 말았다. 그 사정을 왜 모르겠냐만 연이은 강행군에 지쳤나 보다. 슬슬 짜증이 올라오는 것을 보니 이번에는 내가 눈치껏 외출할 차례다. 육아는 폭탄 돌리기 게임이 아니다. 적당히 알아서 움직이는 눈치게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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