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준의 육아父담] 버릇없는 말버릇의 기원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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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말버릇이 있다. 박지성처럼 ‘때문에’로 시작해서 ‘때문에’로 끝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박찬호처럼 말머리마다 ‘음~’을 붙이는 사람이 있다. 특정 단어를 무한반복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추임새 넣듯 리액션을 하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사람도 있다. 또,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할 때마다 손짓발짓 액션을 취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각각 다르듯 말버릇도 가지각색. 말버릇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 사람의 개성과 성향을 보여주는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애를 쓴다고 쉽게 고치거나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면서 평소처럼 쓰던 그 말버릇을 조심하게 됐다. 운전하다가 상대 운전자를 향해 습관적으로 나온 욕설에 뭔가 따끔해 뒤를 살짝 돌아보면 아이가 “아빠 또 나쁜 말 했어.” 핀잔을 준다. 오랜만에 친구와 온갖 비속어와 욕이 섞인, 그 시절 그 버릇으로 통화하다가 아이가 눈에 띄면 그 민망함에 헛기침을 연발하기도 한다. 아이를 혼낼 때도 무심결에 의도와 다르게 심한 말을 쏟아내고 나면 그렇게까지 말할 것이 아니었는데 후회가 막심이다.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고 분명 상처를 받았다.

부부가 대화할 때도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조금만 언성이 높아지고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으면 아이들은 눈치를 보며 두려운 눈빛이 역력하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다가 어쩌다 아는 이름이라도 나오면 귀를 쫑긋 세우고 얼마나 끼어드는지 혹시 어디 가서 재잘재잘 이야기할까 무섭다. 뒷말하다가 걸린 기분이다. 또, 비밀스럽게 속닥거리면 자기만 빼고 얘기한다고 또 삐지기까지 하니 아이 앞에서는 모든 말이 참 조심스럽다. 낮말은 아이가 들으니 밤에만 이야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또 아이는 부모의 말과 행동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놀랄 만큼 구현한다. 아내가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팔을 뒤로 빼고 바닥에 디딘 채 앉아서 자세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 이야기를 내가 그 자세로 듣고 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니 그 또한 영락없는 내 모습이다. 누나가 동생에게 잔소리하거나 쏘아붙이는 모습은 또 엄마와 똑같다. 기분 좋을 때 하는 말, 화났을 때 행동이 엄마아빠의 모습을 빼다 박았다. 그렇게 부모의 습관은 아이의 습관이 되고, 부모의 말버릇은 아이의 말버릇이 된다.

▲미디어오늘 보도 영상 갈무리

요즘 어떤 아이의 버릇없는 말버릇 때문에 세상이 떠들썩하다. TV조선 사장의 열 살 딸의 운전기사를 대하는 태도와 말 때문이다. 반말은 예사고 정신이 달아날 정도로 소리를 지른다. 또 할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 해고하겠다고 협박을 한다. 심지어 부모가 잘못 가르쳐서 그렇다고 하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패륜에 가까운 막말을 쏟아낸다. 그 녹음파일을 듣는 내내 그 말을 듣는 이의 모욕감과 굴욕감이 나에게까지 전해진다. 하지만 아이는 악의가 없다. 명랑하고 해맑게 그렇게 심한 말을 아무 죄책감 없이 쏟아낸다.

그 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었을까? 아니, 당연히 모를 것이다. 아마도 아이의 아빠엄마가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다를 바 없었을 것이고 그보다 더하면 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부모의 그런 말과 행동을 보고배우며 당연한 것이라 느꼈을 것이다. 이후 아이의 엄마가 취한 행동은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녹음파일을 지우라고 압력을 넣고 아이가 해고하겠다고 한 말을 지키려는 듯 정말 해고를 현실로 옮겼다. 이럴 때마다 면피용으로 항상 나오는 사과와 사퇴의 진정성에 대해서도 강한 의심을 떨칠 수 없다. 그 아이가 커서 엽기적인 한진일가의 자식들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언니는 역사적인 땅콩회항사건으로 집안망신을 다 시키더니, 언니의 복수를 다짐했던 동생은 돌고래 저리 가라는 샤우팅과 물 싸대기 시전으로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그리고 헐크 버금가는 다혈질을 자랑하는 엄마의 막말과 폭력이 세상에 공개되며 막나가는 집안의 뿌리가 어딘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온갖 불법과 갑질로 얼룩진 이 집구석의 민낯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드라마와 영화에서 봤던 재벌의 모습은 충분한 근거가 바탕 되었음을 두 눈 똑똑히 확인하게 되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열 살 아의 아이의 말버릇은 온전히 부모의 책임이다. 한진가의 막돼먹은 자식의 근원은 바로 부모였다. 옛날 어른들은 항상 물었다. “누구 집 자식이고?” 지금 생각해보면 참 많은 것이 압축되어 있는 질문이다. 아이에게 이래라저래라 가르친다고 과연 말을 들을까?

요즘 같아서는 오히려 “왜 아빠는 안 그래?” 꼬투리를 잡히지 않을까 싶다. 이웃과 마주치면 자기는 안 하면서 아이에게 ‘안녕하세요. 해야지’ 인사를 시키고, 자기는 험한 말을 쏟아내면서 아이에게 예쁜 말만 하라고 야단쳐서는 안 된다. 아이는 엄마의 말투, 아빠의 행동을 닮는다고 한다. 아이에게 듣고 싶은 말을 하고, 보고 싶은 행동을 보여주면 된다. 바로 부모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