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 칼럼] 부시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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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0 18:13 | 최종 업데이트 2018-12-10 18:13

11월 30일 미국 41대 대통령을 지낸 조지 H. W. 부시가 94세로 세상을 떠났다. 역시 대통령을 지낸 아들 조지 W. 부시와 구분해 그는 ‘아버지 부시’로 알려졌다. 아버지 부시는 재력을 가진 부시 가문에 태어나 평생 부와 권력을 누리며 살다 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부시가 “봉사와 사랑, 우정의 위대한 삶을 살았다”며 고인과의 우정을 “생애 가장 큰 선물 중의 하나”라고 회고했다. 오바마도 “미국은 조지 H.W. 부시라는 애국적이고 겸손한 ‘종복’을 잃었다”며 그의 죽음을 아쉬워했다.

자칭 ‘민주적 사회주의자’ 샌더스 역시 부시와 올 초에 세상을 떠난 그의 부인 바바라가 “그들이 사랑하던 나라에 바친 겸손하고 헌신적인 공로로 기억될 것”이라며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입만 열만 막말을 쏟아내는 트럼프조차 “그는 미국의 위대함과 희망, 기회를 전 세계로 비추어준 1000개의 불빛 같았다”며 고인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다.

▲조지 H.W. 부시의 장례식. 트럼프 대통령과 오바마 전 대통령도 애도의 뜻을 전했다. [사진=미국 백악관]

트럼프부터 샌더스까지 미국 정치 스펙트럼을 가로질러 모두 부시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의 업적을 기렸다. 전 세계 주류 언론의 보도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부시를 ‘위대한 정치가’이자 ‘미국의 영웅’으로 칭송했다. 이에 걸맞게 부시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졌다. 그의 장례식이 있던 12월 5일은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되어 모든 연방정부 기관과 뉴욕 증권시장 등이 일제히 문을 닫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사람이 죽으면 최대한의 애도를 표시하고 망자에 대한 좋은 말만 나누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그 사람이 강력한 권력을 손에 쥐고 선택한 정책으로 인해 수십만 명의 죽음을 불러왔다면 그에 대한 ‘순수한’ 추모가 가능할까? 그게 과연 미덕일까?

예를 들면 나는 광주 학살의 원흉 전두환이 천수를 다하고 죽는다면 절대 그의 죽음을 애도하지 못할 것이다. 살아있을 때 제대로 그를 심판하지 못한 것을 원통해 할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분쟁에 개입해 수백만 명의 죽음을 불러온 전범 헨리 키신저가 죽어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2015년 11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인 이순자씨와 함께 대구공고 총동문회 체육대회를 찾아 단상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손을 흔들고 있다. ⓒ오마이뉴스 조정훈

부시도 마찬가지다. 그는 공인일 뿐 아니라 세계 최강인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다. 추모라는 미명 하에 그가 생전에 저지른 일들이 모두 새롭게 각색되고 미화되어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부시는 일생의 대부분을 이 세계가 더 위험한 세상이 되는데 공헌한 사람이다.

대통령 취임 첫해인 1989년 크리스마스 닷새 전에 부시는 파나마를 침공한다. 오랫동안 CIA의 하수인 노릇을 했던 (그리고 부시 자신이 CIA 국장일 때 직접 관리했던) 파나마의 독재자 노리에가를 체포한다는 명분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미국은 니카라과 좌파 정권에 반대하는 콘트라 반군에게 현금과 무기를 지원하는데 통로 역할을 하는 노리에가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말을 듣지 않는 노리에가의 이용가치가 떨어지면서 그를 체포한다는 명목으로 파나마를 침공한 것이다.

부시는 국제법과 파나마의 주권을 위반했다고 유엔 등 국제 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하지만 파나마에서 그가 저지른 전쟁범죄는 얼마 후 벌어진 이라크 전쟁에 비하면 새발의 피로 드러난다.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쿠웨이트 침공을 빌미로 일어난 ‘걸프전’은 이라크의 도발을 저지하려는 정의로운 전쟁이 아니었다. 단적으로 1988년 후세인이 생화학 무기를 써서 쿠르드족 수천 명을 학살했지만, 당시 부시가 부통령이었던 레이건 정부는 이란의 호메이니 정권을 견제하기 위해 후세인의 만행을 눈감아 주었다.

파나마의 노리에가와 마찬가지로 후세인도 한때 미국의 이해에 복무하는 긴밀한 협력자였고, 후세인이 미국의 이해에 충실히 복무하는 한 미국은 그가 무슨 짓을 저지르든 상관하지 않았다.

걸프전 당시 미국은 1991년 2월 13일 바그다드 교외 아미리아 방공호를 공습해 민간인 400명 이상을 죽였다. 이때 사용된 ‘스마트 폭탄’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철근이 3중으로 겹쳐있는 콘크리트 지붕을 뚫고 들어와 지하에 위치한 방공호에서 폭발했다. 사람들이 모두 잠든 새벽에 폭격이 이루어져서 사망자 대부분은 살아있는 상태에서 불에 타 숨졌다. 까맣게 타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시신들 대부분은 전쟁의 포화를 피해 숨은 부녀자와 아이들이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와치에 의하면 미국은 아미리아 방공호가 민간인 대피소로 사용되었던 것을 알고도 사전 경고 없이 공습을 감행했다. 민간인 시설에 대한 사전 경고 없는 공습은 국제법 위반일 뿐 아니라 중대한 전쟁 범죄이다.

또 다른 부시의 전쟁범죄는 쿠웨이트에서 퇴각하는 이라크 군인과 민간인을 학살한 일명 ‘죽음의 고속도로’ 공습이다. 1991년 2월 26일, 27일 이틀 동안 이라크는 유엔 결의에 따라 쿠웨이트에서 철군을 단행했다. 쿠웨이트에서 이라크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퇴각 중이던 이라크군과 민간인 차량을 향해 미국은 무차별 공습했다.

한 미군 조종사는 이 공습이 마치 “물통 안에 들어 있는 물고기를 쏘는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한 저널리스트는 이 무차별적인 학살을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쟁범죄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전쟁에서 물러나는 군인과 민간인을 살상하는 것은 명백한 제네바 협정 위반이다.

한 달이 조금 넘는 동안 이라크에 자그마치 8만8천5백 톤의 폭탄이 투하됐다. 이로 인해 막대한 인명 피해 뿐 아니라 군사시설과 민간시설이 다 파괴됐다. 유엔 실무조사단의 표현에 의하면 이라크는 중동의 부유한 산유국에서 하루아침에 ‘산업화 이전 시기’로 되돌아갔다.

이것이 부시가 “최소한의 희생자만 낸 현대적이고 깔끔한 전쟁”이라고 떠벌인 걸프전의 실상이다.

▲1991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해 일으킨 걸프 전쟁. [사진=Good Free Photos]

전쟁범죄 이상으로 대통령 부시의 정책이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재앙이 된 것은 성소수자 혐오에 기반해 에이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것이다.

80년대 초반부터 에이즈 공포가 확산 되었지만, 기독교 복음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은 레이건은 1987년까지 공개 석상에서 에이즈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문제를 외면했다. 레이건의 부통령이었던 부시가 대통령이 된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부시는 재임 중 한 인터뷰에서 동성 커플이 아이를 기르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또 만약 그의 손자가 게이라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손자가 게이라도 여전히 사랑하겠지만 손자에게 너는 ‘정상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살고 있지 않다고 말하겠다고 했다. 혐오와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 질병의 확산을 막는데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부시는 공공연히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며 에이즈 확산을 외면하고 부인했다.

에이즈 치료 방법을 연구·개발 하는데 정부의 힘을 보태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 개인의 행동을 바꿀 것을 강조했다. 마치 개인의 도덕적 해이가 에이즈 확산의 주범이고, 개인의 변화를 통해 질병이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처럼 공공보건 위기를 개인 탓으로 돌렸다.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쉽게 막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 주사바늘 교환 프로그램을 회의적으로 보면서 연방정부 예산을 ‘동성애를 장려’하는데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HIV 바이러스 감염자인 농구스타 매직 존슨은 이런 부시 정권에 항의해 1992년 전국 에이즈대책위원회 위원 자리를 사퇴했다. 그는 위원회가 추천한 안전한 성교육이나 주사바늘 교환 프로그램을 부시 대통령이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로 정부가 대책 마련에 손 놓고 있는 사이 에이즈 희생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에이즈가 처음 질병으로 발견된 1981년 미국에서 에이즈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451명이었다. 이후 부시가 대통령에서 물러난 1993년에는 한 해 4만 명으로 늘었다. 50만 명이 넘는 미국인들이 에이즈로 죽어갔다. 90년대 중반 미국의 23~44세 사이의 젊은 남성 사망 원인 1위가 에이즈였다. 에이즈 방관 정책으로 많은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당사자는 94세까지 살다 마치 재앙적인 에이즈 정책을 모두에게 상기시키려는 듯 세계 에이즈의 날 하루 전에 임종했다.

여성에게도 부시 전 대통령은 ‘영웅’으로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트럼프가 성폭력을 저지른 캐버너를 대법관으로 임명해 여성들의 분노를 샀다. 이 선례를 만든 것이 바로 아버지 부시다. 1991년 아니타 힐 교수의 폭로에도 불구하고 성추행을 상습적으로 저지른 클래런스 토마스를 대법관으로 지명했다. 그는 부시가 세상을 떠난 지금도 종신 대법관으로 앉아있다.

부시 자신도 성추행 폭로에서 자유롭지 않다. 작년 가을 미투운동이 시작된 후 적어도 8명의 여성이 부시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다. 폭로한 여성 중에는 부시에게 성추행 당했을 당시 16살 미성년자도 있다.

▲미국 41대 대통령 조지 h.w. 부시. [사진=defense.gov]

아들 부시는 장례식 추도사에서 아버지 부시가 “자식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아버지”였다고 회고했다. 부시 일가에게 그는 ‘최고의 아버지’로 기억될 것이다. 무엇보다 부와 권력을 대물림 해주지 않았는가.

가족과 친구들은 부시를 추모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부시는 ‘유머 넘치고 따뜻했던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다. 희대의 살인마도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더 없이 소중한 사람일 수 있는 것처럼.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그건 사적으로 나누어야 할 얘기다. 부시의 가족과 친구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할 권리가 있는 만큼 그의 통치 대상 이었던 대중 역시 그가 저지른 일들을 제대로 기억하고 진실을 말할 권리가 있다.

지난 주 내내 울려 퍼진 부시 찬가는 사랑하는 사람이 폭격으로 새까맣게 불에 타고, 에이즈로 죽어가는 걸 목격한 사람들에게는 역겨울 뿐이다. 저들이 일제히 합창하는 것처럼 부시는 부드러운 영혼을 가진, 남을 배려할 줄 아는 품격 높은 정치인이 결코 아니었다. 이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죽음으로 그가 한 일을 지워 버린다면 우리는 이후 역겨운 트럼프가 죽었을 때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소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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