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만화산책] ‘네모바지 스펀지밥’, 달라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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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해양연구소에서 바다를 가르치던 스티븐 힐렌버그(Stephen Hillenburg)~! 그의 손에서 바다 이야기가 탄생합니다. 아차, 거기 슬롯머신 당기던 분들~, 부디, 오해는 말아주세요. 성인오락실 이야기가 아니랍니다. 해양생물학 선생에서 만화가로 전향한 범상한 이력의 스티븐 아저씨, 그가 만든 저어 바다 속, 비키니 시티라는 도시에 사는, 천방지축 까불이 네모 바지 스펀지밥과 친구들 이야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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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스티븐은 바다만 보면 심장이 뛰었습니다. 쿵콰라쿵쾅쿵쾅쾅~ 산호 속을 총총 헤쳐나가는 파도 아래 풍경은 그의 즐거움이었습니다. 그의 바다 사랑은 쭈욱 이어졌고, 대학에서도 해양생물학을 전공했지요. 부전공은 예술이었는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였답니다. 웬일인지, 그때까지 그의 그림 속에는 바다 생물이 한 마리도 등장한 적 없었습니다. 생선이나 그리는 게 시시했다나요?

그런 그가 어느 날, 바닷속을 깨알같이 그려 만화책으로 만듭니다. 이름하여, <조간대>(潮間帶, The Intertidal Zone)~! 만조 때는 잠수하고 간조 때는 드러나는 즉, 갯벌 이야기였지요. 모든 건 커리어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습니다. 졸업 후, 스티븐은 전공을 살려 캘리포니아의 해양연구소에 들어갑니다. 방문객에게 바다의 역사와 과학을 가르치기 위해서였지요. ‘어떻게 하면 바다를 더 쉽게 알려줄 수 있을까?’ <조간대>는 바로 그 고민의 답이었습니다.

▲조간대는 다양한 바다생물을 소개하기에 좋은 환경입니다. 물이 들어올 때와 나갈 때, 두 조건 아래의 생물들이 공존하기 때문이지요. [사진=

첫 작품을 완성한 그는 그림의 또 다른 매력에 퐁당 빠져버렸습니다. 그리고 대학에서 불철주야 예술 공부에 몰두합니다. 각종 만화 축제를 쏘다니기도 했지요. 그러다 스티븐은 우연히, 애니메이션과 마주칩니다. 심장이 또다시 뛰기 시작합니다. 곧장 방향을 틀어 애니메이션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구경만 하던 애니메이션 축제에 작품 <웜홀>(Wormhole)을 소개했습니다. 그 속에는 아인슈타인 박사님의 상대성 이론이 담겨있었지요.

한편, 당시 미국에 만화영화로 유명한 티브이 채널이 있었으니, 니켈로디언(Nikelodeon)이었습니다. 이들의 등장은 197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당시로선 파격 그 자체였지요. 어린이 전용 채널이 전무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초창기 그들은 수입 만화를 방영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한계를 느꼈지요. 결국 1990년대, 자체 만화영화를 만들기에 이릅니다. 이것이 인기를 얻었고, 니켈로디언의 카툰(Cartoon)이라는 뜻의 닉툰(Nick-toon)으로 불렸지요.

▲어린이, 청소년들을 위한 채널, 니켈로디언의 로고입니다.

바로 이 닉툰 제작자가 애니메이션 축제에 갔다가, 스티븐의 작품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두 눈이 휘둥그레 해집니다. 당장 그를 불러 오라~ 스티븐이 니켈로디언에 들어간 계기였지요. 그는 현장에서 각종 업무를 익혔습니다. 프로듀서, 감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관계자들은 무엇이든 소화하는 그의 재능을 눈 여겨 보았지요. 오오 저 친구 쓸 만한데? 직접 만화영화를 만들어 보라고 해야겠군!

이렇게 스티븐, 닉툰을 만들게 됩니다.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만능 재주꾼이라도 손에 땀을 쥘 수밖에 없었지요. 당시 잘 나가는 만화 중에 <렌과 스팀피>가 있었습니다. 순둥이 고양이와 신경질쟁이 치와와의 좌충우돌 코미디였지요. 스티븐은 이 만화를 교본 삼아, <조간대>의 캐릭터로 배꼽 잡는 이야기를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무엇을 주인공으로 하면 좋을까? 그의 눈에 띈 것은 아나운서 역할의 해면(海綿) 이었습니다. 네에, 여러분이 세수할 때 쓰는 바로 그 스펀지 말입니다.

▲여러 모양과 색의 해면들입니다.

해면의 색과 생김새는 천차만별입니다. 물결 따라, 환경 따라 제 멋대로 자라나지요. 덕분에, 바다 속 친구들의 은신처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스티븐 선생은 과감하게 공산품 스펀지를 똑 닮은 노오란 네모 모양 해면을 골랐습니다. 바다 속에서 가장 요상하고 웃긴 스펀지는 자연산이 아니라, 공산품처럼 뚝 잘라놓은 용모를 가졌을 테니까요. 그리하여, 부엌 싱크대에 누워있을 법한 존재가 바다 속 마을로 쏘옥 들어갔고, 애니메이션계의 찰리 채플린, <네모 바지 스펀지밥>이 탄생했습니다.

▲스펀지밥과 친구들~! [사진=Nickelodeon]

스펀지밥이 사는 비키니 시티는 해저(海底) 마을입니다. 그곳에 사장의 이름을 따 만든 크러스티 크랩이라는 햄버거 가게가 있지요. 까불이 스펀지의 일터이기도 하고요. 사람살이가 그러하듯, 의인화된 바다 생물의 터전에도 온갖 사건이 터집니다. 문제는 우리의 스펀지밥, 눈치가 꽝인데 오지랖은 몹시 넓다는 겁니다. 도대체 이웃들 마음을 읽지 못하는데, 문제만 생기면 돕겠다고 난리입니다. 코미디와 찰떡궁합의 설정 이지요~! 가끔 때려잡듯 문제를 해결하지만,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그 순수한 시선이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니까요.

결과는 상상 이상~! <네모바지 스펀지밥>은 어린이 대상 만화였지만, 성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습니다. 동시에 니켈로디언 사상, 가장 많은 어른들이 보는 프로그램이라는 기록을 세웠지요. 에미상을 받았고, 전 세계 러브콜을 받으며 영화로도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 열두 번째 시즌을 맞이하며 장수 프로그램 반열에 올랐지요. 그러던 2018년 11월 26일, 비보가 날아왔습니다. 스펀지밥의 아버지, 스티븐 힐렌버그가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매체들은 앞 다투어 그의 작품세계를 돌아봤습니다. 이와 함께, 전설의 사건 하나가 회자됩니다. 이름 하여, 스펀지밥 고발 사건~! 만화의 인기와 더불어, 캐릭터들도 바쁘게 달렸습니다. 다들 그들의 모습이 찍힌 상품을 사고 싶어 했기 때문이지요. 그 중에서도 눈에 띄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장이 있었으니, 남성 동성애자를 겨냥한 마켓이었습니다.

2002년,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이 이 현상을 기사로 실었습니다. 타이틀 한 번 보실까요? ‘스펀지밥, 많은 남자들에게 동성애를 속삭이는 그 무언가.’ 그런데 내용은 제목과 좀 달랐습니다. ‘스펀지밥은 이웃이자 친구, 핑크색 불가사리와 손잡고 다닌다오. 그런데 이들 둘 다 남자 아니요? 자아, 만화가 양반, 말해보시오. 사실 당신의 애니메이션은 동성애자를 겨냥한 게 아니오?’ 이에 힐렌버그, 해양생물학자다운 답을 내놓지요. ‘뭐라는 겨~! 우리 스펀지밥은 무성(無性)이라오.’

네에 그렇습니다. 해면은 무성으로 태어납니다. 무성인 채, 새로운 개체를 만들기도 하고, 후에 난자와 정자가 생겨 유성 생식을 할 때도 있지요. 그런데, 대중의 눈길을 끈 건, 힐렌버그의 답이 아니었습니다. 자극적인 제목이었지요. 월스트리트저널이 이런 질문을 했다, 아~! 사람들 앞 다투어 블로그에 ‘스펀지밥’과 ‘게이’를 포함한 내용을 재생산합니다. 이러쿵저러쿵 쑥덕쑥덕~사실이거나 말거나~ 이렇게 스펀지밥 하면 게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던 2005년, 뮤직비디오 <우리는 한 가족>(We Are Family)이 인기를 얻습니다. 어린이 프로그램 캐릭터들이 총 출동합니다. 우리는 하나라고 노래했지요. 그들의 인기에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관용을 가지자는 따뜻한 메시지와 더불어, 여러 채널의 아이콘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점도 한 몫 했지요. 그런데, 이를 본 종교 보수 단체들, 갑자기 스펀지밥을 고발하네요. ‘어린이들의 캐릭터가 동성애를 지지하다니~!’

▲스펀지밥을 고발한 복음주의 기독교 작가이자 심지학자, 제임스 돕슨(James Dobson)입니다. 어휴~ 화가 많이 났네요. [사진=http://www.publiceye.org/gallery]

뮤직비디오 제목에는 하트 모양의 무지개가 박혀있었습니다. 레인보우 빛깔은 성 소수자의 상징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하필, 보수 종교 단체의 눈엣가시였던 스펀지밥이 많은 캐릭터들 사이에 끼어있었던 겁니다. 역시 스펀지밥은 게이가 확실해! 네에, 억지스럽지만 답답이들의 행동 패턴이란 늘 그래왔지요. 이후에도 잊혀질 만하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2012년에는 우크라이나가 들썩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해로우니 스펀지밥을 금지하자~!

<우리는 한 가족>(We Are Family) 뮤직 비디오~! 한 번 감상해 보세요.

거참, 스펀지의 구멍만큼이나 많은 물음표가 떠오르네요. 게이가 좋아하면 무엇이든 게이가 되나요? 어린이는 성소수자에 대해 알면 안 되는 걸까요? 그렇다면, 이성애자에 관한 건 모두 알아도 되나요? 아이들은 성적 지향이 없을까요? 이런 현상을 보는 성소수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아니, 진짜 스펀지밥이 동성애자였다면, 어땠을까요? 존재를 부정하고 사라져야할까요? 성소수자의 사랑은, 사랑이 아닌가요? 지금이 21세기가 맞나요? 우리 주변에, 혹시, 스펀지밥이 살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를 스펀지밥으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스티븐 힐렌버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릅니다. 우리 쇼는 그런 면을 품고 있죠. 스펀지밥은 괴짜에요. 하지만 특별합니다.”

그는 다양한 해양생물이 공존하는 만화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가 만든 노오란 스펀지를 손가락질 했지요. 하지만 우리에겐 스펀지밥이 꼭 필요합니다. 그가 없는 비키니시티는 심심 그 자체니까요~! 모두 다른 우리, 특별함을 알아준 스티븐 힐렌버그,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