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 개혁 연속기고] ⑧ 시민의 입을 틀어막는 선거법

성상희 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구지부장

11:03

[편집자 주=12월 23일부터 9회로 “정치(선거법)제도 개혁을 위한 대구 제정당·시민단체 연석회의”의 선거제도 개혁 관련 기고를 연재합니다. 연석회의는 ‘촛불혁명의 완성은 정치 개혁이며, 정치를 바꾸는 시작은 선거제도 개혁이라 생각한다. 민심과 의석수를 일치시키는 연동형비례대표제의 도입은 대구 정치, 나아가 한국정치 변화와 개혁의 시발점이다’고 밝히고 있다.]

① 선거제도 개편은 정치개혁의 물줄기 – 대구참여연대 좋은정책네트워크 준비위원: 장우영
② 반쪽짜리 청년주권, 선거권·피선거권 낮춰야 – 우리미래 대구시당 대표 정민권
③ 연동형 비례대표제, 뉴질랜드 삶의 질을 바꿨다 -정의당 대구시당 위원장 장태수
④ 선거제도 개혁으로 ‘아재정치’에서 벗어나자 – 대구여성회 상임대표 남은주
⑤ 8년 전에도, 현재도 교사·공무원은 정치기본권이 없다 – 민중당 대구시당 사무처장 송영우
⑥ 절반의 득표율로 독점당한 지방의회 –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 조광현
⑦ 대한민국 선거, 투표권은 평등하지 않다 – 노동당 대구시당 위원장 신원호
⑧ 시민의 입을 틀어막는 선거법 – 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구지부장 성상희
⑨ ‘유시민 사표론’을 아시나요? – 녹색당 대구시당 공동운영위원장 장우석

4대강 사업 반대해도 선거법 위반
정권교체 원한다고 광고해도 선거법 위반

용산참사 책임자 출마 반대해도 선거법 위반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를 앞둔 4월과 5월의 어느 날, 수원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이 수원역에서 “표를 던져 4대강을 죽이는 악의 무리를 물리쳐라.”, “4대강 삽질을 막고 생명의 강을 구할 영웅 바로 투표권을 가진 당신입니다. 6월 2일 당신의 힘을 보여주세요.”라는 문구가 담긴 피켓을 들고 시민들에게 알림 활동을 하고 있었다.

사무국장은 공직선거법 제90조(시설물 설치 등의 금지) 위반으로 기소됐고, “4대강 사업에 찬성하거나 우호적인 정당이나 후보자에 투표하지 말라는 취지로서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할 목적의 탈법행위에 해당하거나 특정 후보자의 당선 또는 낙선을 도모하는 목적의지를 수반하는 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2016년 3월 9일 오후 1시 용산참사유가족들은 경주에서 김석기 예비후보 출마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2년 대통령선거를 5일 앞두고 정권교체를 희망한다는 신문광고를 낸 사람도 유죄판결을 받았고, 2016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참사 당시 서울경찰청장이었던 김석기 새누리당 후보의 출마를 반대한다는 내용이 담긴 인쇄물을 배포하는 기자회견을 경주역 등에서 진행했다가 역시 선거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는 등 선거 시기 정치적 의사 표현행위와 관련해 수사를 받고 유죄판결을 받은 사례는 참으로 많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에 대체로 둔감한 편이다.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딱히 이러한 선거 관련 표현행위에 대한 규제가 왜 문제인지,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는 국가의 일반적인 기준이 그러한지에 대해서 특별히 알고 있는 것이 없다. 필자도 정확히 잘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 선거법의 표현행위에 대한 개입과 통제의 내용을 공부했다. 참 문제가 많다는 것을 느낀다.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를 위한 규정이
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규정이 되는 구조

선거법은 깨끗한 선거, 공정한 선거를 한다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하여 선거운동에 관한 규정을 촘촘히 마련하고 있다. 문제는 선거운동에 대한 각종 규제가 유권자, 국민, 주민의 입을 틀어막는 역할, 즉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와 관련한 시민의 표현행위를 선거운동이라는 틀에서 규율하고 있다. 유권자 혹은 유권자 아닌 시민, 주민의 선거 관련한 표현행위가 선거운동이라는 개념에 해당하고 그 선거운동을 법률이 허용하지 아니하는 것이면 불법 선거운동이 되고,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구조다.

공직선거법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는 원칙을 세우고, 다만 선거법 또는 다른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금지 또는 제한될 수 있다고 규정한다.(공직선거법 제58조 2항) 선거운동은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행위”라고 규정된다.(제58조 1항) 다만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견 개진 및 의사 표시, 입후보와 선거운동을 위한 준비행위, 정당의 후보자 추천에 관한 단순한 지지·반대의 의견 개진 및 의사 표시, 통상적인 정당 활동은 선거운동에서 제외된다.

문제는 선거운동 개념 규정이 매우 포괄적으로 해석, 적용되고 있으며, 나아가 시민의 표현행위가 선거법의 광범위한 제한 규정에 저촉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정보통신망, 그중에서도 인터넷을 이용한 표현행위이다.

“누구든지 후보자, 그의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이나 형제자매에 관하여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여서는 아니되며,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이들을 비방하여서는 아니된다. 다만, 진실한 사실로서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선거법 제110조 “후보자 등의 비방 금지”) 제82조의 4항은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그와 같은 비방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허위사실 유포를 금지하고 악의적일 경우 이를 처벌하는 것은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사실”을 알리는 것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사실을 알리되 “비방”을 하면 처벌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비방이라는 말은 정당한 “비판”과 개념적으로 구별되지만, 현실에서 정확히 구별되기 어렵다. 그래서 선거법은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일 때에는 허용하는 것으로 정한 것이다.

이 부분은 재판하는 법원이 공공의 이익을 매우 포괄적으로 인정할 경우에는 그래도 위험성이 적다. 그러나 사실을 알리더라도 비방에 해당한다고 하면 일단 처벌 대상이 된다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제약이다. “비방”이라는 매우 불확정적인 개념을 형사처벌 규정에 사용하는 것은 헌법이 정한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된다고 보아야 한다.

인터넷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또 하나의 중대한 제한은 인터넷언론사로 하여금 선거운동 기간 중 당해 인터넷홈페이지의 게시판·대화방 등에 정당·후보자에 대한 지지·반대의 문자·음성·화상 또는 동영상 등의 정보를 게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에 행정안전부장관 등이 제공하는 실명인증방법으로 실명을 확인받도록 하는 기술적 조치를 취하도록 한 것이다.(선거법 제82조의 6)

이른바 인터넷실명제이다. 정치적 내용에 대한 토론이나 의견 개진에서 실명을 밝히는 것이 좋지만, 이는 토론 공간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지, 실명확인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자유로운 표현을 심각하게 제한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선거운동기간 중 서명운동에 대한 제한 규정도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정이다. 선거법은 선거운동을 위하여 선거구민에 대한 서명이나 날인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제107조) 마찬가지로 선거운동을 위함이라는 목적이 있는지를 다투고 자의적인 법 적용이 문제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4대강 사업을 진행하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배포했다면, 혹은 서명운동을 하면서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을 기재하였다면, 이 규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을 위험이 존재하는 것이다.

선거운동의 정의를 최소 범위로 한정하고
선거 이해당사자와 유권자, 시민을 구별해야

위와 같이 현행 공직선거법은 선거운동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제한되는 선거운동의 유형을 매우 포괄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시민의 자유로운 표현행위를 크게 제한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

첫째, ‘선거운동의 정의(제58조)’를 최소 범위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 선거운동의 정의를 ‘특정 후보자의 당선’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에 한정하고, 그것을 위한 ‘직접적 구체적 행위’로 행위유형을 특정하여 규정할 필요가 있다. 현행법은 특정 후보의 당선뿐 아니라 당선되지 못하게 하려는 행위도 선거운동 개념에 포함하고 있다. 낙선을 위한 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비판행위인데, 허위사실인 경우나 진실한 사실이라도 악의적인 경우에는 형법상 명예훼손죄에 해당하여 처벌할 수 있다. 다만, 선거와 관련해 상대방에 대한 비판행위는 일반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정책에 대한 의견 표명이나 비판은 당연히 선거운동 범주에서 제외해야 할 것이다.

둘째, 직접 선거 결과에 이해관계를 가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일반 유권자, 주민을 구별해야 한다. 역시 선거운동에 대한 정의 규정과 관련이 있다. 시민이 행하는 비판 활동과 후보 혹은 선거운동원, 그들과 선거 결과에 대한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정당의 당원이 하는 행위는 다르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특정한 정책에 대한 비판, 특정한 후보자의 과거 이력이나 현재 활동에 대한 비판을 후보진영과 직접 관계없는 일반 시민이 한다면 선거운동의 범주에서 완전히 제외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한 경우에도 비판 내용이 허위이거나, 악의적인 경우에는 형법상 명예훼손죄로 규율할 수 있으므로 최소한의 통제 가능성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셋째, 이른바 ‘인터넷 실명제’는 폐지하고 누구나 익명으로 자유롭게 인터넷에서 정치적 표현행위를 할 있도록 하되, 역시 악의적인 경우에는 형법의 명예훼손죄, 선거법의 선거운동 금지규정으로 사후적인 통제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표현행위에 대한 제약이다.

넷째, 허위·비방 규제(제110조) 규정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가장 문제되는 악법조항이다.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허위·비방 규제(제82조의 4항) ‘탈법에 의한 문서·도화의 배부·게시 등 금지’(제93조)도 같은 맥락이다. 모두 폐지해야 할 것이며, 필요 최소한의 규정을 보충적으로 마련하는 것은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기타 개선할 사항으로, “‘방송·신문이용 광고 금지(제94조)’ 규정은 후보와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므로 개정해 광고비용 규모를 규제하는 방법으로 간접적 통제를 하도록 하고, 서명운동 금지규정(제107조)도 폐지해야 할 규정이다.

대구가톨릭대학교 장우영 교수는 어느 토론회에서 선거법이 공정과 자유 양 가치를 5대5로 반영해 공직선거법을 운용한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기존의 방점이 공정에 맞춰져 있다고 한다면 선거법은 행동을 촉진하는 규칙으로 가야하고, 거기에서 벌어지는 약간의 위험은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공정에서 자유로 무게중심을 명확하게 이동시키는 선거관리체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적절한 지적이다. 1994년 3월 통합선거법의 제정은 공정한 선거를 위한 정치개혁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저인망식 그물처럼 촘촘하게 선거 관련 행위들을 제한하는 선거법 조항은 이제 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족쇄가 됐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결국 정치발전에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2018년 하반기에 공직선거법의 해석에 관한 중요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영남대학교 학생들에게 사회학 강의를 하면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 대한 비판적 내용을 담은 언론기사를 기초로 강의한 것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해 1심,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영남대 비정규직 교수 유지수 씨에 대한 재판에서 대법원이 무죄판결을 선고한 것이다. 이 판결은 대구고등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확정됐다.

한국 학문의 자유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선례를 남기게 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대선 당시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에게 강의자료로 배부한 신문기사에 박근혜 후보에 대한 일부 비판적인 내용이 포함됐으나, 이는 박근혜 후보 낙선을 도모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요한 의미를 가진 판결임과 동시에 이 사건은 공직선거법의 선거운동 제한 규정이 표현의 자유에 심각한 제한을 가져오는 문제 있는 법률이라는 것을 일깨우는 계기였다.

문제의 해결은 선거운동의 정의 규정을 좀 더 엄밀하게 개정하고, 표현행위에 대한 심각한 제약을 가져오는 제한규정들을 폐지하여 공직선거법이 오직 “공정한 선거관리”와 “자유로운 선거운동”을 보장하는 것으로 자리매김하고, 선거 결과와 직접 관련 없는 시민들의 표현행위에 대한 제약을 없애고 필요한 부분은 일반 법률의 규정으로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 보장! 선거법 개정의 주요한 과제이다.

▲성상희 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구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