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동차를 줄여 만드는 생명 평화의 길 / 성상희

좁은 한반도 남쪽, 움직이는 자동수레 숫자를 크게 줄여보자!

0
2019-02-12 15:30 | 최종 업데이트 2019-02-12 15:30

길은 사람이 다니기 위해 만들어진다. 사람이 다니는 방법은 태초부터 걷기가 있었고, 좀 더 빨리 그리고 편하게 다니는 방법으로 말타기가 뒤를 이었으며, 그 후로 자전거가 나오고 동력을 이용한 기차나 자동차가 그 뒤를 따랐다. 20세기 들어서는 길에도 층이 생겨서 2층에는 고가도로가, 지하에는 지하도로나 지하철로가 생겨났다.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인구 대비 땅덩어리가 좁은 한국에는 그나마 뫼가 많아서 사람들이 일상으로 살아가는 땅이 적은 편이다. 그 땅에 지금 많은 도로가 닦이고, 도로를 닦기 위하여 물이 있는 곳에는 다리를 놓고 뫼가 가로막고 있는 곳에서는 굴을 뚫는다.

도시의 길을 보자. 도시에는 버스, 택시, 승용차, 때로는 오토바이, 드물게 자전거가 다니는 길이 있고, 사람이 다니는 길이 있다. 내가 사는 대구도 제법 큰 도시여서 도로는 거의 항상 차들로 넘치고 길은 수시로 막혀서 차가 제시간에 다니지 못하고 지루한 기다림을 하면서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곳이다. 도시의 길은 차와 사람이 잘 다닐 수 있도록 규칙을 만들어야 본래의 기능을 할 수 있다. 수시로 도로에 차들이 줄지어 서 있는 정체 현상은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고, 기름을 많이 쓰게 하여 비용이 들고 한정된 자원을 낭비하게 한다. 차가 막히니 새로운 길을 뚫고, 고가도로를 더 만들고 신호체계를 개선하는 등으로 노력을 한다. 그런데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차가 늘어나서 정체 현상이 계속된다.

▲대구시는 매년 중앙로 버스전용차로를 차 없는 거리로 하는 축제를 연다. 축제에 참여해 도로를 뛰노는 아이. (뉴스민 자료사진)

거의 언제나 차들이 막히는 대도시의 길이 본래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그 출발은 차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사람이 차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라마다 차와 사람, 특히 보행자와 힘 관계에 차이가 있다. 북부나 서부의 유럽에서는 대체로 사람이 차에 대해 우위에 있다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사람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길을 건널 수 있고, 달리던 차가 횡단보도를 만나게 되면 멈추거나 속도를 줄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편도 1차로의 길에서는 횡단보도 아닌 곳에서도 사람들은 거의 자유롭게 길을 건넌다. 그런다고 해서 차들이 경적을 울리는 일은 없다. 간혹 편도 2차로, 즉 왕복 4차로에서도 횡단보도 아닌 곳에서 길 건너는 것도 별 무리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도시를 보면 일단 ‘무단횡단’을 하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주저하고, 규칙을 어기는 것으로 생각하여 가벼운 죄의식을 가진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길을 건너지 못하고, 좌우 경계를 하여 차가 오는지를 살피고 길을 건넌다. 작은 도시에는 그런 현상이 좀 덜하다. 사람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자동차가 정작 사람보다 더 대접을 받는 것, 이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물론 종국에는 그 자동차가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자동차에 탄 사람이 권력을 누리는 것이다. 길에서 사람과 차의 힘 관계, 누구에게 우선권이 있는가는 그 도시나 그 나라가 생명이 존중되고 사람과 만물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공동체인지, 아니면 돈과 힘이 중심이 되는 사회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다.

차라고 해도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자동차는 수레의 일종인데 스스로의 몸체 안에 동력이 있어서 사람이나 동물의 힘을 더하지 않아도 동력을 내는 에너지를 공급해 주면 스스로 굴러가는 수레다. 자동수레라 하여 사람과 차의 권력 관계가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사람 한두 명, 혹은 아무리 많아야 다섯 명이 타는 전형적인 승용차는 대중교통수단인 버스와 그 역할이 많이 다르다. 버스나 전철이 최고 대접을 받고 그다음으로 승용차의 편리함을 갖추되 공공성을 가지는 택시가 대접을 받으면 사람들은 같이 편해진다. 승용차를 타는 사람은 우선 편하지만 모두가 승용차를 타는 요즘 시절에는 승용차를 타는 것이 괴롭고 짜증 나는 일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대도시에서.

과감히 전환을 해 보자.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사람이 대접받고 버스와 전철, 택시가 활발하게 움직여 많은 사람을 실어 나르는 도시. 내가 사는 대구를 예로 들어 편도 5차로의 도시 간선도로인 달구벌 대로를 과감하게 바꾸어 보자. 1차로는 버스전용차로, 2차로는 버스와 택시가 같이 다니는 대중교통 전용차로, 3차로와 4차로는 개인 승용차도 같이 다니는 일반차로, 5차로는 차도와 분리하여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든다. 처음에 많은 혼란과 괴로움의 아우성이 나오겠지만 시민들은 적응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도시의 차 이동속도가 빨라지고 사람들은 도시 안에서 먼 거리를 오고 가는 데에 예전보다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집집마다 개인 자동수레를 가질 필요가 없다. 도시 안에서는 승용차를 타면 오히려 이동에 불리하니까 평일에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을 것이다. 주말에는 여행을 가거나 친지를 방문하는 등으로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할 일이 생기고, 이 경우에 열차나 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가족단위 행사에서는 개인 승용차가 편안함을 줄 수 있다. 이런 용도로 사용하기 위하여 공동체가 여러 대의 차를 마련해 두고 미리 신청하고 약속한 것에 따라 필요한 사람이 그 차를 쓰면 된다. 동사무소, 아파트 단지마다 경차, 5인용 승용차, 여러 명이 타는 승합차를 준비하고 주민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자동차를 사기 위하여 가정마다 큰 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없고, 도시지역에서 편리하지도 않은 승용차를 끌고 다니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불합리도 없어진다.

적어도 탈것과 관련해서 보면 이런 것이 행복한 삶이다. 그런데 이런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한다. 한국 자동차 기업의 매출이 대폭 축소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한국경제가 현재와 같은 규모로 유지될 수 없다. 그러한 전환이 급격하게 이루어지려면 경제의 후퇴. 대량실업, 그로 인한 서민층의 생존 위기가 올 수 있다. 자동차와 휴대전화로 대표되는 한국의 수출주도형 경제를 포기해야 온전히 실현될 수 있는 삶이다. 소박한 협동의 삶이 시작되고 확산되어야 공동체가 이런 혁명적인 전환을 견딜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한국경제도 바뀔 수 있다. 사람이 진정 필요한 것을 만들어 내는 살림의 경제로.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풀빛의 삶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자동수레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뛰어넘어 생각하고 움직인다. 일단 이 좁은 한반도 남쪽에서 움직이는 자동수레의 숫자를 크게 줄여보자!

tele
Print Friendly, PDF &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