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처제 상습 성폭행 혐의 무죄···시민단체, “가해자 중심 판결” 비판

법원, "별다른 저항하지 않아···강간 인정할 증거 없어"
시민단체, "피해자 증언 외면···왜 저항하지 못했는지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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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3 14:38 | 최종 업데이트 2019-02-13 23:48

캄보디아에서 온 처제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성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자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나섰다. 법원은 성폭행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시민단체는 법원이 피해자의 증언을 외면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13일 오전 10시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등 6개 단체는 대구시 달서구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해자 중심의 잘못된 판단으로 피해자는 물론 수많은 여성의 분노를 일으킨 재판부는 겸허히 성찰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캄보디아 국적인 A 씨는 지난 2014년 한국에 와 한국인 남성 B 씨와 결혼한 언니 집에서 언니 대신 조카를 돌봤다. 형부인 B 씨는 ‘초청비자’를 통해 직접 A 씨를 불렀다. 초청비자 체류 기간은 90일 이내지만, 체류 기간이 길어지면서 B 씨의 협조 아래 체류 연장을 해야 했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B 씨는 지난 2016년부터 수차례 A 씨를 강간, 강제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B 씨는 “언니를 정신 병원에 보내 못 나오게 한다”, “너도 캄보디아로 보내버린다”는 등 말도 했다.

하지만 지난달 17일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이봉수)는 B 씨의 성폭력 특례법 위반(친족 관계에 의한 강간·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A 씨는 “형부의 큰소리가 무서워서”, “저항하면 때릴까봐”, “엄마가 알게 될까봐” 등 취지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한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보아 성관계 당시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유형력 행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피해자 진술 외에 다른 증거가 없고, B 씨가 강간이나 강제추행했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재판부는 처음 성폭력을 당할 때 왜 소리치지 않았느냐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묻고 있다”며 “한국에 온 어머니가 충격을 받을까 걱정돼 말을 못 했고, 한국어가 서툴러 어려움을 호소할 수 없었다는 피해자의 말을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이수진 보현이주여성쉼터 시설장은 “이주 여성이 성폭력을 겪고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불안정한 체류 문제가 가장 크다. 또, 모든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게 되는 창피함과 수치심으로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하기도 한다”며 “재판부는 왜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았느냐고 물을 것이 아니라, 왜 알리지 못했느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2심 재판부는 여성이자 이주민으로서 복합적인 차별을 겪는 피해자의 목소리에 세심하게 귀 기울여야 한다”며 “사법 정의, 성평등 정의를 실현하는 판결을 내릴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후 2심 재판부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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