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디씬부터 성평등한 무대를,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23일 대구 클럽헤비서 '음악에는 성별이 없다' 공연
"여성이 주된 구매자, 여성이 떠나는 무대는 전망 없다"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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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인디씬은 다른 장르보다는 나은 것 아냐?’ 그런 반응도 있죠. 맞아요. 그래서 인디씬부터 성평등한 무대를 시작해보려고요”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디밴드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이 오는 23일 대구 남구 대명동 클럽헤비에서 성평등을 주제로 한 연합공연을 펼친다.

처음부터 ‘성평등’, ‘페미니즘’에 관심갖고 작품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2012년 배미나(36) 씨와 김명진(34) 씨가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을 처음 꾸려 활동을 시작했을 당시, 이들은 그저 어떤 공연이든 어떤 뮤지션이든 가리지 않고 섭외 받기 위해 노력했다. 쉽게 이뤄지지는 않았다. 가끔 서게 되는 무대에서, 그리고 다른 뮤지션의 무대를 관람하는 자리에서 이들은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문제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인디씬에 섞여 어울리려 한들, 그 이질적인 느낌 때문에 쉽지 않았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그리고 2020년 ‘n번방 사건’으로 이어지는 시간 동안, 이들은 그간 인디씬에서 느꼈던 이질감을 구체적인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여성은 문화콘텐츠의 주된 구매자이면서도 공연이 시작되면 향유자가 아닌 소비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했다.

▲19일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배미나, 김명진 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여성이 펑크처럼 소리 지르고 같이 즐기는 음악을 싫어하는 게 아니에요. 떠나는 이유도 그게 아니에요. 공연장 와서 소리도 지르고 즐기고 싶어 합니다. ‘엉만튀, 슴만튀’ 아시죠? 여성이 공연장에서 추행 당하거나 위험을 느끼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점점 떠나고 있어요. 염증을 느끼는 거예요. 우리가 주최하는 공연에서만큼은 그런 일이 없도록 하려고요.” (명진)

“문화예술 콘텐츠의 주류 구매자는 여성이에요. 여성이 떠나지 않는 공연을 만들고 싶어요. 2019년부터 관객에게 공연 관람 매너 안내를 배포했어요. 그랬더니 우리 공연이 안전하다고 느낀 분들이 많았어요. 무대에 서는 사람에 따라서 공연장 분위기가 많이 바뀌거든요.” (미나)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이 공연 전에 배포하는 안내문은 ‘성평등한 인디음악계를 위한 행동강령’이다. ▲차별과 배제가 없는 무대 ▲성폭력에 대해 문제제기할 권리 ▲’싫다’고 할 때 강요하지 않기 ▲여성을 예술적 영감의 대상으로 표현하거나 성적대상화하는 표현을 지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행동강령은 미투 운동 등을 겪으면서 2019년 문화예술계에 마련됐다.

이들의 시도에는 양분된 반응이 나온다고 한다. “그래도 분위기는 도제식인 클래식, 국악 장르보다 낫잖아?”, “조선시대도 아니고, 가사에 여자 얘기를 담지 말라는 말이냐?”하는 반응도 있다. 반면에 여성 관객의 호응도 이어졌다. 이들이 집중하는 것은 후자다.

“우리가 배포하는 건 안내문 몇 줄이에요. 그런데 그걸 보고 고맙다면서 찾아와서 우는 관객도 있었어요. SNS 통해서도 고맙다는 말을 듣고요. 여성 팬들도 안전한 공연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거예요. 생소한 반응도 있긴 하지만, 인디씬 전체가 더 나은 방향으로 진일보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계속 시도하고 있습니다.” (명진)

“말도 못 꺼내는 클래식 국악보다 사정이 낫지 않느냐고 하죠. 맞아요. 그래서 인디씬부터 더 나은 방향을 먼저 보여주려고요. 인디씬도 미투운동 이전에는 심각했어요. 성추행 사건이 누적됐고, 그래서 여성 관객이 인디씬을 떠났어요. 뮤지션이 왕이 아닌데, 고객인 팬을 존중하지 않았던 거예요.” (미나)

무대란 뮤지션에게 주어진 ‘발언권’이자 ‘주도권’이다. 그래서 공연하는 동안 뮤지션은 관객에게 기쁨을 줄 수도, 또는 원치 않는 분위기를 강요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들은 무대를 이끄는 뮤지션으로서 좀 더 관객을 존중하는 길을 고민했다.

이들은 뮤지션의 작품, 가사에 담긴 성차별적 요소도 뮤지션 스스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호소한다. ‘표현의 자유’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전가의 보도로 쓰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들 식으로 표현하자면, ‘예술병에 빠지면 안된다’. 예술에서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가치이지만, 그렇다고 무의미하게 성을 소비하거나 여성이 거부감을 느끼는 표현을 고집하는 것은 문제라는 설명이다.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제공 ⓒ김영준

“‘예술병’이라고, 예술이라면서 아무 말이나 다 해도 되는 건 아니죠. 앉아서 관람하는 관객 손을 잡고 끌어와서 즐기라고 한 뮤지션이 있는데요. 그 사람은 아직 뭘 잘못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 여성은 씬을 떠났어요. 행동강령에 거부감이 있다는 뮤지션도 있는데요. 공연하면서 매너 지키고 성폭력 없는 공연 하자는 말이 당연한 거 아닌가요. 거기에 거부감을 느끼는 게 지금 씬의 현실입니다.” (미나)

“섹슈얼은 당연히 예술의 영감이 될 수 있죠. 여성을 대상으로 예술의 영감을 얻거나, 그런 가사를 쓰지 말자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노래 들어보면 대체로 ‘여자 엉덩이가 어떻고, 성공해서 여자 많다’ 그런 내용이잖아요. 그런 기존의 문화를 한번 되돌아보자는 거예요. 창작할 때 무의미하게 성을 소비하는 건 아닌지도 생각해보자는 거죠.” (명진)

“말하자면 후진 겁니다. 사실 우리가 후지다고 말 안해도 시간이 흐르면 알아서 뒤떨어질 겁니다. 인디씬이 시대 흐름에 맞춰서 따라가자는 얘기예요.” (미나)

23일 오후 7시에 열리는 공연 ‘음악에는 성별이 없다’에서도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은 ‘관객이 안전한’ 무대를 펼칠 계획이다. 이날 공연은 뮤지션 ‘전복들’, ‘오늘도 무사히’, ‘빈달’도 함께 한다. 공연과 관련한 구체적 정보는 예매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도 더 다양한 사람들과 연대하는 방법도 고민할 겁니다. 한때 명진이가 사고가 나서 공연을 쉬면서 주말을 보내보니, 주말이 너무 소중하더라고요. 주말을 소진해서 공연을 보러 오는 분들이 고맙더라고요. 그때 공연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관객의 주말에 대한 값어치를 하는 공연, 앞으로도 이어가겠습니다.” (미나)

이건 너와 나를 위한 노래
이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세상에서
우리 함께 웃고 싶어
우리 함께 웃고 싶어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wish’ 중-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