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먹칠] 버닝썬은 영화가 아니다 / 이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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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버닝썬 사건 영화 캐스팅 유출됨 ㄷㄷ” 축구 커뮤니티인 ‘에펨코리아’의 1월 29일자 게시글이다. 이 게시글의 조회수는 2월 27일 기준 6만 5천회였다. 구글에 ‘버닝썬 시나리오’라고 검색하면 관련한 게시글이 셀 수 없이 많이 뜬다. 내용은 얼추 비슷하다. 클럽 관계자 역할에 어떤 배우를 캐스팅할지를 고민하거나, 말 그대로 영화 시나리오를 짠다. 기자들이 이름을 걸고 쓰는 기사도 크게 다르진 않다. “반전에 반전 ‘버닝썬’···마약·성추행·경찰 유착 ‘영화’가 따로 없다” 조선일보 2월 17일자 기사 제목이다. “마약? 성폭력? 경찰? 승리?···볼수록 영화 같은 ‘버닝썬’ 진행 상황” MBC의 온라인뉴스 채널인 엠빅뉴스가 2월 8일에 업로드한 유튜브 영상 제목이다. 이들은 버닝썬 사태를 그저 오락영화를 보듯 소비한다.

살인과 강간이 포르노로 소비되는 사회다. 그러니 버닝썬 사건이라는 ‘범죄’가 같은 방식으로 소비되는 것도 크게 놀랍지는 않다. 영화에서 잔인한 방식으로 강간 살해되는 여자가 이름조차 없듯, 이번 사태에서도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사내이사로 재직 중인 유명 연예인의 약물 투여 여부와 조직적인 약물 유통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정도다. 저도 모르게 ‘물뽕’을 맞고 손님에게 ‘제공’되었던 여성들은, 국가적 범죄인 마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흥미로운 도입부 정도로 치부된다. 영화가 끝나면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 대한 이미지는 그저 끔찍함 정도로 남을 것이다. 그 여성들은 극의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서사에 자신을 투사해 분노하는 이들은 같은 위험을 경험해봤거나 마주한 이들뿐이다.

버닝썬 사건이 담고 있는 성폭행, 불법촬영, 약물투여, 경찰 유착설은 여성이 마주하는 실존하는 공포다. 살면서 그런 공포를 한 번도 느껴보지 않은 사람만이 이를 오락으로 소비할 수 있다. 불법촬영을 금지하라는 시위가 몇 달째 이어지고 있음에도, 일반인 성관계 영상이 버젓이 유포된다. 향정신성 의약품인 ‘물뽕’은 ‘데이트 약물’로 가볍게 소비된다. ‘no means no’라는 것을 몇 번씩이나 강조해도 강간과 섹스를 착각하며, 걸핏하면 ‘꽃뱀’론이 등장한다. 이런 것들에 문제제기를 하는 이유는 감정이나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다. 피해자의 서사를 ‘굳이’ 상상해보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일상에서 생존을 위협하는 공포에 무관심해도 된다는 것, 이것이 남성으로 태어나는 순간 권력을 지니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다.

피해당사자가 여성임에도 수사, 대책, 그리고 정치는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물뽕’을 살 정도의 돈과 여성의 가치는 등가 교환된다. ‘클럽에 간 여자가 잘못했네’ 식의 대상화와 이미지 소비는 끊이지 않으며, 그것이 왜 잘못되었는지조차 모르거나,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여성을 2등 시민쯤으로 치부한다. 그런 사회에서 대통령이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는 것이 그리 큰 의미로 다가오진 않는다. 여전히 정부는 페미니즘에 ‘반감’을 지닌 20대 남성들을 설득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 효과적인지에 대해 골몰하느라 바쁘고, 성차별적 구조를 살피는 대신 ‘젠더 갈등’을 ‘봉합’하겠단 공허한 말을 내뱉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엑스트라로 소비되는 것은 지겹다. 그래서 정부가 나서 무언가를 해주길 기다리는 대신, 직접 정치적 연대를 구축하려 한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답한 20대 여성이 42.7%에 달했단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최근 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여전히 버닝썬 사건이 느와르 영화로 보이는가? 여전히 마약 사건과 거기에 연루된 국가적 음모를 파헤치는 남성 형사 주인공에 자신을 대입시키고 있는가? 영웅이 되었다 착각하며 여성과 접대용 안주를 동일시하는 것에 무감각했던 것은 아닌가. 그런 무감각함이 유흥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지 않기 위해선, 버닝썬과 같은 유흥업소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범죄행위에 대해 제대로 수사하고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래서 최소한의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정치가 여성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고, 국가권력이 여성의 실존하는 공포에 대해 무감각하며, 남성들이 지금처럼 최소한의 상상력조차 발휘하지 못한다면, 여성들은 정치적 연대를 중심으로 국가가 그렇게 두려워하는 ‘젠더 갈등’의 전면전에 나설지도 모르겠다. 그 투쟁방식이 지금처럼 평화로울 것이라는 보장 또한 없음을 기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