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왜 제1야당은 ‘좌파 독재’를 부르짖는가 /김민하

13:19

트로피코는 일종의 독재 시뮬레이터로 잘 알려진 게임 시리즈다. 올해 3월 6편이 발매됐다. 시리즈에 따라 지을 수 있는 건물과 내릴 수 있는 명령 등이 달라지지만 핵심 구조는 언제나 거의 같다. 카리브해 어딘가에 있는 트로피코라는 작은 섬을 다스리는 독재자가 되어 장기집권하며 비자금을 모으는 것이 목표이다.

나라를 마구 주무르며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한다는 컨셉으로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수 있을까? 게임에는 ‘승패’의 요소가 들어가야 한다. 트로피코6에서 독재자가 패배하는 경우의 수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해당 스테이지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경우, 또 하나는 어떤 방식이든 권력을 상실하는 경우다.

후자는 또다시 3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는데 바로 이 대목이 인기의 핵심 요인이다. 플레이어는 반란이나 외국 군대의 침공으로 군사적 패배를 당한 경우와 선거에서 진 경우, 그리고 국가 재정이 파산에 이르는 경우에 게임오버를 당한다. 반대로 선거에서 이기고, 반란이나 외국 군대의 침공을 막고, 그러면서도 재정의 선순환을 만들어야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세력들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지지도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 만일 선거를 거부하고 반대파를 폭력적으로 제압하면 반란군 세력이 늘어나 군사적 위협이 된다. 문제는 그저 각 세력들이 해달라는 것을 다 해주는 것으로는 재정 파탄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경제 성장과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

트로피코의 경제 시스템은 수출의존의 전형이다. 플레이어는 독재자로서 섬의 지형이나 자원 등을 고려해 가장 이윤을 효율적으로 낼 수 있는 산업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세계대전이나 냉전시대에는 연합국이나 추축국, 서구권이나 동구권을 택해 한쪽을 대상으로 수출을 하는 구조를 만들면 쉽지만 미국, 유럽연합, 러시아, 중동, 중국 등으로 패권이 다극화 된 현대에 이르면 문제가 매우 복잡해진다.

가령 미국은 기업의 활발한 활동이 가능한 자유를 중시하지만 유럽연합은 공해 대책과 노동조건 향상을 통한 공정한 경쟁을 요구한다. 각 세력마다 이런 요구조건을 맞춰줘야 한다. 이런 점은 나름 현실을 단순화해서 잘 반영한 것처럼 느껴지는데, 어느 한쪽을 대상으로만 무역 전략을 세우면 소외된 강대국이 반란군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내정 간섭을 시도하거나 아니면 직접 쳐들어온다. 강대국이 단지 무역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만 군사적 침공을 감행하는 것은 비현실적이지만, 이 대목은 어쩔 수 없는 게임적 허용으로 봐야할 것 같다.

플레이어가 겪게 되는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세운 전략과 이익집단의 요구가 거의 언제나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돈이 되는 산업 구조를 먼저 만들고 이렇게 확보된 돈으로 치안이나 종교, 유흥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를 충족시킨다는 식의 계획은 제대로 지켜지기 어렵다. 시민을 대표하는 이해집단들은 정부의 사정이나 독재자의 어떤 장기적 계획을 고려하지 않고 무언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예정에 없는 지출이 발생한다. 돈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도 주거 환경을 개선하거나 종교 시설을 늘린다거나 병원이나 학교를 더 지어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이런 요구가 생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그나마 낫다. 시대가 발전할수록 상황은 점점 더 황당해진다.

초기에는 주거환경 개선을 요구하던 공산주의자들이 현대에 이르면 불필요한 전체주의적 감시체계를 구축하는데 집착하게 된다. 자본주의자들은 금융과 관광산업의 발전을, 산업자본가들은 제조업의 고도화를 요구하는 식으로 동시에 수용하기 어려운 제안을 각자 해오기도 한다. 이들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무시하면 최후통첩을 해오는데, 이때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경제 시스템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위기가 발생하거나 쿠데타, 소환투표 등의 치명적 페널티가 발생한다.

이쯤되면 독재자를 해먹기도 쉽지 않다는 현실에 절망하게 된다. 물론 현실의 독재자도 나름의 고충을 안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트로피코의 플레이어가 겪는 어려움은 사실 독재자이기 때문에 겪는 일이라기보다는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서술한 내용에 따르면 트로피코의 주민들은 투표도 하고, 시위도 하고, 이익집단을 통해 정부에 나름의 압력도 넣는다. 혁명을 일으켜 대통령을 쫓아낼 수도 있다. 전형적인 독재 체제로 보기는 어렵다. 물론 플레이어는 게임 상의 선택지들을 통해 이런 체제를 다 무력화시킬 수 있지만, 쉽지는 않다. 게임에서조차 독재자들처럼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게임은 독재라기보다는 국가 통치 시뮬레이터로 규정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이 게임을 국가 통치 과정의 모사로 본다면, 플레이 중에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여느 국가에나 있는 관료가 중심이 된 엘리트 정치 체제의 경험이 될 것이다. 엘리트의 시각에서 이익집단의 요구와 로비와 최후통첩은 지속 가능한 경제구조를 만들기 위한 통치 로드맵의 이행을 방해하는 조건에 불과하다. 그러나 관점을 시민 개인으로 옮기면 경찰서나 병원 등의 공적 인프라 확충은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이다. 서로 다른 인식을 갖고 있는 양쪽 사이에서 이해를 조정하며 체제를 존속시키는 일은 보통 현실 정치가 감당한다.

트로피코 시리즈는 바로 이 구조를 단순한 형태로 재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을 바꿔보자. 트로피코 시리즈가 독재뿐만이 아닌 엘리트주의적 국가 통치 전반을 모두 재현하고 있다면 이것을 ‘독재자 게임’으로 불러서는 안 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어쨌든 게임 내에서 어떤 독재자적 행위들은 하나의 선택지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우리가 새삼스럽게 얻을 수 있는 통찰은 우리가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통치 체제는 이미 독재를 포괄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재 국가에서 독재가 가능한 것은 어떤 독재자의 강한 의지나 어떤 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독재가 과거 파시즘이 그랬던 것처럼 현실 문제의 해결 방법 중 하나로 호출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제1야당이 이런 시국에 길거리에서 “좌파 독재”를 부르짖으며 ‘투쟁’할 수 있는 이유가 사실 여기에 있다. 통치의 로드맵은 결국 집권 세력과 결탁한 엘리트 집단이 만들고 실현한다. 때문에 권력을 잃은 쪽은 가진 쪽을 향해 언제든지 ‘독재’라는 레토릭을 동원해 비판을 제기할 수 있다. 이런 인식에 따르면 통치는 오직 ‘우리편 독재’와 ‘상대편 독재’라는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만을 통해 가능하다. 이것은 현대 정치의 외면할 수 없는 단면이다.

물론 제1야당의 거리 전술은 정치 윤리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어떤 신실성을 갖춘 걸로 평가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차원을 떠나서 우리가 이상적인 정치의 어떤 형태를 고민하고자 한다면 21세기적인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면서 엘리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중정치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지속적으로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종착점은 분명하다. 그것은 대중이 통치 계획을 모두 공유하고 세상만사를 직접 결정해도 모두에게 오직 이익이 되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통치의 계획과 실패를 모두가 함께 하고 이 경험이 사회적으로 퇴적되고 전승되는 여러 장치들이 필요하다. 이걸 현실정치와 언론과 지식인과 대중이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물론 대중의 감정이 분노와 혐오가 혼란스럽게 뒤섞인 것으로 표출되는 이 시대에는 그저 막막한 이야기다. 생산을 위해 하루에 4시간 정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가 사회를 함께 경영하는데 쓰는 꿈같은 세상은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엔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이 때가 되면 트로피코와 같은 게임은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게임이 현실을 대신하는 게 아니라 현실이 게임을 대신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