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 칼럼] 결혼이주여성 인권을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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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5 17:11 | 최종 업데이트 2019-07-15 17:11

베트남 이주여성이 한국인 배우자에게 폭행당하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결혼이주민 인권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주여성이 폭력적인 배우자에게서 벗어나 자립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결혼이주민이 폭력적인 관계를 떠나지 못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불안정한 체류신분 때문이다. 한국의 현행법상 결혼이주여성의 체류비자 발급과 귀화는 한국인 배우자의 지속적인 협력에 달려 있다. 이런 힘의 우위 관계로 인해 폭력피해 이주민이 외부 도움을 요청하거나, 폭력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가정폭력과 학대로 인해 이혼하는 경우라도, 혼인파탄 원인이 전적으로 상대 배우자 때문이라는 법원 판결이 없으면, 체류자격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혼인파탄 원인이 백퍼센트 상대 배우자 잘못 때문이라는 판결을 받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 대부분의 경우 이혼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소송보다는 협의 이혼이나 조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협의이혼을 하거나 조정을 거쳐 이혼하면 폭력피해 이주여성은 결국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설사 이혼재판을 한다 해도 혼인파탄 사유가 전적으로 한쪽에게만 있다고 판결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가정폭력이 있는 경우라도 말이다.

일부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그냥 본국으로 돌아가면 되지 않느냐고, 폭력까지 당하면서 왜 굳이 한국에 남으려고 하냐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결혼이주여성 대부분은 더 나은 삶을 찾아 고국을 떠나온 사람들이다. 피해 여성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라도 힘겹게 새로 일군 삶의 터전에서 강제로 쫓겨나는 또 다른 피해는 없어야 한다.

작년 10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이주여성 성폭력 피해 현황과 체류권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방안”이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나는 이 토론회에 참석해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을 당한 이주여성에게 미국에서는 어떤 법적 보호와 절차를 거쳐 체류권을 인정해 주는지에 대해 발표했다. 미국의 법제도가 아무런 문제없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폭력피해 이주민에 대해서는 한국보다 더 관대한 체류구제 방안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현재 미국 폭력피해 이주민 구제의 대표적인 방법으로 연방법인 ‘여성에 대한 폭력반대법(Violence Against Women Act)’ 하의 ‘자기구제신청(Self-Petition)’이 있다. 법안 이름과 달리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일정 자격을 갖추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미국도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지닌 배우자와 결혼한 경우 한국처럼 배우자의 협조를 통해서만 결혼이민 비자를 신청할 수 있다. 보통의 혼인 관계에서는 별로 큰 문제가 없지만, 가정폭력이 있다면 이주민 배우자의 불안정한 신분을 이용해 협박과 통제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경우 폭력 피해자인 이주민 배우자가 가해 배우자의 도움 없이 혼자서 영주권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자기구제신청’이다.

영주권 획득만을 목적으로 한 위장결혼이 아니었고, 결혼 기간 중 단 며칠이라도 같이 살았으며, 배우자에게 신체적 폭력이나 ‘극심한 학대’를 당했고, 당사자인 이주민에게 심각한 범죄기록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면 피해를 당한 배우자가 가해 배우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영주권과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다.

이 법안이 가정폭력에 대한 정의를 비교적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욕설과 비하 같은 언어폭력,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고립시키기, 경제적인 학대나 체류신분을 이용한 협박, 원치 않는 성행위 강요 등 성적, 정서적인 ‘극심한 학대’도 구제받을 수 있는 피해에 포함된다.

한국처럼 이혼이 전적으로 상대 배우자의 잘못 때문이라는 판결을 요구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혼하지 않은 경우라도 ‘자기구제신청'이 가능하다. 이혼이 이미 확정된 경우에는 반드시 이혼판결로부터 2년 안에 신청해야 한다는 제한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혼 사유가 무엇이던, 판결문에 혼인파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시 되지 않은 경우라도 ‘자기구제신청’을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또한 미국에서는 폭력 가해자가 배우자가 아니어도 피해이주민이 독자적으로 체류신분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 이주민에게 폭력을 가하는 가해자는 배우자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가해자가 친족이나 지인, 고용주, 직장 상사 등 배우자가 아닌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몇 년 전 크게 보도된 한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의 경우가 그 한 예이다.

그녀는 시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이를 신고했지만, 시아버지에 대한 형사재판 과정에서 그녀가 한국에 오기 전, 어린 나이에 아동 성폭력인 ‘약탈혼’을 당해 아이까지 출산한 게 드러났다. 그러자 한국인 남편이 그녀를 상대로 혼인취소 소송을 했다. 친족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 여성은 용기 있게 신고했지만, 과거의 또 다른 피해사례가 폭로되면서 사기결혼을 한 ‘가해자’ 취급을 당했고, 결국에는 마치 하자 있는 물건 ‘반품’되듯이 베트남으로 돌아가야 했다.

만약 그녀와 같은 일이 미국에서 일어났다면, 여전히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그 결말은 크게 달랐을 것이다. 피해 이주민여성은 성범죄를 신고하고, 수사와 재판에 협조했기 때문에 체류신분인 U-1 비자를 받을 수 있다. 가정폭력, 성폭력을 비롯한 특정범죄 피해자에게 발부되는 U-1 비자는 4년 동안 유효하다.

비자 소지 기간 중 미국에 계속 체류하고, 중대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없다면, 3년이 지난 후 영주권까지 신청 할 수 있다. U-1 비자는 폭력 가해자가 배우자가 아닌 친족이나 지인, 낯선 이들인 경우라도 폭력범죄를 신고하고 수사에 협조하면 체류신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피해자들이 혜택받을 수 있는 구제 방안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제도를 도입한다면, 성폭력 같은 범죄의 피해자가 되고도 추방 위협 때문에 신고하기 어려워하는 이주여성노동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보도가 되었듯이, 이주여성노동자는 특히 성폭력 위험이 높은 노동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2016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발표한 ‘이주여성농업노동자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주여성 농업노동자 202명 중 25명(12.4%)이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가해자는 주로 고용주나 감독자인 경우가 많았다. 결혼이주민과 구체적인 상황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체류신분 때문에 피해자가 쉽게 폭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은 같다.

최근 대법원은 이혼 후에도 결혼이주민이 체류자격을 연장하려면 이혼의 ‘주된’ 책임이 한국인 배우자에게 있다는 것만 증명하면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기존의 한국인 배우자가 ‘전적으로’ 혼인파탄에 책임이 있는 경우에만 이혼 후 결혼이주민의 합법 체류를 허용하던 것에서 한발 나아간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이주여성들이 불안정한 신분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폭력 피해를 당했을 때 배우자의 협조 없이 혼자서도 안정적인 체류신분을 얻을 수 있도록 더 문턱을 낮춰야 한다. 이혼 여부나 판결문 내용에 상관없이, 폭력의 피해자라면 인도적 차원에서 체류신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현재 결혼이주민에게 발급되는 F-6 비자는 체류 자격 요건을 ‘우리 국민과 결혼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거나 양육하려는 부 또는 모’, ‘국민 배우자의 부모 또는 가족을 부양하는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이주여성의 존재 가치를 혈통을 잇는 배우자나 부양자일 경우로만 국한하는 것이다. 이주여성도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이주여성을 수단이 아닌 사람 그 자체로 바라보는 것이 제도 보완에 대한 모든 논의의 첫 출발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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