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74미터 상공에 핀 꽃기린 : 영남대의료원 고공농성장 방문기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다’. 꽃기린의 꽃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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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3 15:08 | 최종 업데이트 2019-09-03 15:20

[편집자주] 영남대의료원 해고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이 60일을 넘기고 있습니다. 지난 2일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노태맹 노동인권위원장과 김성아 회원은 영남대의료원 해고노동자 고공농성장을 찾아 건강 검진을 실시했습니다. 김성아 회원은 이날 처음 고공농성장을 방문했고, 방문기를 <뉴스민>에 보내왔습니다.

▲천막 노끈과 서로에 지지한 채 아래를 보는 두 해고노동자

비가 옵니다. 가을장마랍니다. 이제 시원하니 살 것 같다고들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하고 한낮엔 잠깐 더울똥 말 똥한, 그래서 가을바람이 고마운 계절이지요. 그런데 그럴 새도 없이 가을장마랍니다. 반백 년을 더 살아온 저에게 가을장마란 말이 처음인 듯 낯섭니다. 무엇이든 처음은 낯섭니다. 설레임, 떨림, 흥분, 긴장, 두려움···. 여러 생각과 여러 감정의 혼합 상태이지요. 생애 첫 고공농성장 방문을 앞둔 제가 그랬습니다. 이 나이쯤이면 그 무엇에도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슬퍼하는 따위는 아주 덜한 데도 말입니다.

영남대의료원 13층 옥상, 그 위 조금 더 올라간 작은 공간에서 두 여인이 63번의 밤을 보낸 날이었습니다. 한여름 두 달간 직사광선과 먼지바람을 74미터 고공에서 맞는다면 나는 뭐가 제일 그리울까, 뭐가 제일 먹고플까. 단식 농성은 아니니 뭐라도 들고 갈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힘내시라는 빈말만큼 서로 머쓱한 것도 없으니 말입니다.

부당하게 해고된 지 14년. 노조 파업 후 10명이 해고되었고 7명은 법에 의해 복직되었는데 3명만은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14년. 사십 중반이었던 박문진은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이십대 후반이었던 송영숙은 사십대 초반이 되었습니다. 나이가 쌓이는 속도보다 울화는 더 빠르고 진하게 쌓였습니다.

단식은 하지 않는다지만, 그런 울화가 점령해버린 몸뚱아리로 고공농성장에서 1,512시간을 보낸 사람이라면 지상에서의 일상 중 뭐가 제일 그리울까요. 진료 지원하러 가는 의사이니 혈압과 혈당 체크, 채혈은 하겠지만, 두 여성의 중간 나이대인 여성으로서 생각해보았습니다. 한여름이었다면 씻지 못하는 게 제일 고역일 것 같았습니다. 화장실 문제도 골치 아플 것 같았습니다. 폐경기를 지나지 않은 나이라면 생리도 아주 큰 골칫거리일 겁니다. 이런 건 제가 어쩌지 못하니 제 수준에선, 지상에서의 호사랄 것도 없는 호사를 잠시나마 누리게 해 드리는 게 최선이었습니다.

대구 시내 제일 높은 곳에서 360도 파노라마로 일출과 일몰을 감상하며 커피 한잔하면 그 순간만큼은 불행감이 덜하겠지요. 이왕이면 폼나게 드립 커피백을 준비해야겠지요. 커피를 내리는 시간만큼 불행감이 덜한 시간이 길어지니까요. 아, 전기 포트가 없겠네요. 가스버너는 있겠죠? 철조망으로 막아놓은 철제계단 위 얼기설기 엮어놓은 농성 텐트에 있는 그녀들의 결연한 의지에 흠을 내는 걸까, 인스턴트 커피 봉지 딱 네 개만 넣었습니다.

웬만큼 운동해도 근육의 자연소실량을 채우기 힘든 중장년 여성이 허리 펴고 제대로 걸을 공간이 직선거리 대여섯 걸음인 곳에서 90,720분을 보냈으니 단백질 공급원을 들고 가면 좋겠지요. 압력밥솥에 소금물과 녹차잎을 넣고 1시간을 돌려 훈제란을 만들었습니다. 몇 알을 챙길까, 소풍 간 건 아니지만, 74미터 고공농성장에서도 있을, 그리고 있어야 할 일상에 걸맞은 달걀 개수는 몇 개일까, 네 알을 챙겼습니다. 깨질세라 뽁뽁이로 감싸고 예쁜 천 주머니에 달걀 네 알과 봉지 커피 네 개를 챙겼습니다. 예쁜 천 주머니를 보면 마음이 좀 느긋해질 수 있으니까요.

▲대경인의협 회원 의사들이 영남대의료원 해고노동자들의 건강을 살피고 있다. (사진=대경인의협)

버스에서 내려 영남대의료원으로 오르는 길, 꽃집을 지나치며 '스베틀라나 머시기(제 기억력이란 게 이렇습니다)' 작가의 책이 떠올랐습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여성들은 전쟁 중 전투에도 참여하지만 뜨개질을 하고 꽃을 보면 좋아했습니다. 화분? 꽃다발? 과한가 싶어 참았습니다. 가방 속에 넣은 훈제란 네 알과 봉지 커피 네 개도 분위기 봐서 여차하면 내놓지 않으려 했거든요.

잠시 비가 멈춘 때 13층 옥상에 올랐습니다. 직업환경 의사인 저랑 가정의학전문의, 대경인의협 사무팀장, 그리고 영남대의료원 노조지부장. 네 명이 그 위 농성 텐트를 쳐다보았습니다. 이름을 부르자 천 더미를 헤치며 두 개의 얼굴이 빼꼼히 나왔습니다. 네, 천 더미였습니다. 두 사람이 겨우 누울만한 텐트 위로 청테이프로 얼기설기 붙인 광목과 지문 무늬의 천 조각(무려 르완다에서 온 패브릭이라고 자랑했습니다.)이 뒤엉킨 천 더미에서 나온 얼굴은 해사한 웃음을 띠고 우리를 맞았습니다. 희끗한 짧은 머리칼의 안경 쓴 얼굴, 양 갈래 땋은 머리칼의 화장한 얼굴. 예상보다 표정이 밝아서 놀랐고, 갈래머리라 놀랐고, 화장한 얼굴이라 놀랐습니다. 웃음은 해사하지만 슬픔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취재 온 기자 말고는 우리가 처음 올라온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루 두 번 음식을 올려주는 노조 지부장도 그 텐트에는 처음 올라온 것이었지요. 천 더미 아래 스펀지 매트에 여섯 명이 무릎을 세워 앉았습니다. 짧은 커트 머리의 박문진은 낮은 목소리의 서울 말씨로 호탕하게 웃어가며 말하였습니다. 양 갈래머리의 송영숙은 마른기침을 하며 몸살기가 있는 듯 힘들어 보였습니다. 청진, 채혈 등속을 하기 전에 달걀과 커피 봉지를 내밀었습니다.

아뿔싸, 한 명은 채식주의자라는군요. 이런 말에도 서로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74미터 고공에선 크게 웃는다고 뭐라 할 사람이 없기도 하지만 바로 옆 굴뚝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리를 이기려면 크게 웃어야 하거든요. 밤새 시끄러운 소리에 귀마개를 하고 잔다지만, 그게 어디 잠이겠습니까. 무슨 꿈을 꾸느냐는 제 질문에 뒤척이다 보면 꿈을 꾸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떨어지는 꿈을 제일 자주 꾸고, 자다가 가위눌리듯 ‘으, 으’ 신음소리를 낸다고 하였습니다. 10센티미터 턱이 난간의 다인 공간에서 내려다보니 원근감을 금방 상실하여 어찔하였습니다. 떨어지는 꿈, 당연하다 싶었습니다.

▲농성장 한 켠에 자리잡은 소국과 꽃기린(사진=노태맹)

제 시선 오른쪽에 화분 두 개가 걸렸습니다. 노란 소국과 하얀 꽃이 핀 꽃기린이었습니다. 고공농성 경험 선배가 올려준 선물이랬습니다. 무너지지 않으려면 그래도 일상 비슷한 것을 유지해야 하고 그러려면 꽃이 피는 식물이 좋습니다. 10년 전 하나원에서 3개월 교육 후 대구지역으로 배정된 북한이탈주민들을 데려오던 때가 생각납니다. 키 작은 중년 여인은 작은 화분 하나를 내려오는 내내 품에 소중히 안고 있었지요. 죽을지도 모를, 죽을 것 같은 환경에 놓인 사람들은 꽃 화분을 품나 봅니다.

다행히 혈압, 맥박, 혈당은 괜찮았습니다. 피 뽑아본 지 오래된 의사들의 채혈도 한 번에 성공하였습니다. 저는 몸보다도 두 사람의 마음이 걱정되었습니다. 공들인 그녀의 화장은 정신을 부여잡으려 애쓴 노력을 고스란히 드러냈고 ‘옴 마니 반메 훔’을 소리내어 읊는다는 또 다른 그녀는 울화가 치밀어 오르면 힘들다 하였습니다.

30분 정도만 있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90분이 쑥 지났습니다. 세워 앉은 무릎이 아파왔습니다. 힘드실 텐데 우리는 그만 내려가겠다 하니 손사래를 치며 더 있으라 하였습니다. 사람이 그리웠다 하였습니다. 그녀는 웃으며 말하였고 저는 슬펐습니다. 초면에 허그는 과할 테니, 악수로 헤어지는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다’. 꽃기린의 꽃말입니다. 노조 파괴의 진상규명과 해고자 복직을 74미터 고공에서 65일째 외치는 그녀들의 주장이 수용되기가 그렇게나 어려운 시절인가 싶네요. 그 고난의 깊이를 그녀들만 간직하게 두지 말고 우리가 나누어야겠습니다. 가을 햇살과 가을바람을 즐기기도 전에 가을장마가 와버렸습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에 벌써 두꺼운 양말과 장갑을 낀 그녀들을 생각하니 가을장마에 걱정이 더해집니다. 두 사람이 잘 버티시길 응원합니다. (저에게 고소공포증이 있는 줄 알았는데, 없거나 미약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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