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조국 사태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 /박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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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9 13:29 | 최종 업데이트 2019-09-09 13:29

지난 한달 동안 너무나 많은 관련 보도와 칼럼이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리되어야할 부분이 남아있기에 글 하나 더 보태기로 한다. 누군가에게 조국 사태는 ‘불법도 아닌 가족문제에 대한 수구세력·검찰·언론의 광기어린 물어뜯기’로 정의된다. 그러나 또 누군가에게 이 사태는 ‘위선적 강남좌파의 불공정한 기득권 세습 행태’로 요약된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주목하는 면이 ‘본질’이며 나머지는 ‘현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다소 플라톤주의적인 생각 같긴 하지만 여기서 그걸 가지고 철학논쟁을 할 생각은 전혀 없다. 아마 당신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에겐 틀렸을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조국 사태 역시 다면체(多面體)다. 여러 면들을 지니고 있다.

‘야만성’

먼저 짚어야할 면은 사태의 ‘반인권성’ 내지 ‘야만성’이다. 법무부 장관은 중요한 공직이며 공개적으로 검증받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검증에 한계가 없는 건 아니다. 누군가의 미성년 시절 생활기록부를 본인 양해 없이 공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설령 그 사람이 살인 용의자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주광덕이라는 자가 태연하게 후보자 딸의 생기부를 공개했고 일부 기자는 그걸 받아 적었다.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잘못이다. 이런 잘못이 향후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와 풍토가 어떤 형태로든 개선되어야 마땅하다.

다음으로는 “기레기”라는 말로 상징되는 ‘언론’ 문제가 있다. 조국 사태 관련 기사가 70만 건에 이른다거나 심지어 120만 건에 달한다는 주장이 웹에서 크게 회자되었다. 이들 주장은 조국 후보가 터무니없이 과도하게 공격받고 있음을 강조한다. 유사한 맥락에서 ‘한국언론사망’ 검색어가 실시간 검색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 문제는 앞서의 ‘반인권성’ ‘야만성’과 뒤섞여 언급되곤 하지만 따져보면 사실 다른 문제다.

조국 관련 기사의 ‘양(量)’에 대한 부분, 조국 보도가 수십만 건에서 심지어 1백만 건에 이른다는 주장은 팩트부터 틀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디어오늘』 이정환 대표가 본인 페이스북에 올린 조사내용에 따르면 “네이버에서 조국+후보자로 1개월을 검색하면 89만4107건이 나오는데 네이버의 기사 집계에 문제가 있거나 애초에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또 이 대표는 “방송통신이 37만 건이나 된다는 것도 이상하다”면서, “기사가 많은 『연합뉴스』와 『뉴시스』, 『뉴스1』이 각각 4243건, 4236건, 3341건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정환 대표는 “네이버 기사 검색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10배 이상 부풀려진 것 같다”면서, ‘다음’ 검색에 나타난 6만 800여건 정도가 실제에 가깝지 않겠냐고 말한다.

물론 6만도 적지 않은 수다. 하지만 조국 사태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유례없이 뜨거웠음을 감안하면 그 정도 수치는 나올 수 있다. 물론 소위 ‘보수세력’의 언론플레이는 늘 그랬듯 상수로 존재하며 이번에도 여지없이 작동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여론이 크게 출렁인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 코어 지지층이 결집하는 움직임과 동시에, 상당수 부동층과 대통령 지지자가 실망하거나 돌아서는 현상도 나타났다.

여기에 더해 하나 더 이유를 꼽자면 일종의 인지편향도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누구나 아는 유명한 언론계 속담을 떠올려보자.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 유서 깊은 ‘차떼기당’의 후예인 어느 정치인이 또 비슷한 짓을 했다는 보도는 사람들 관심을 그다지 끌지 못한다. 화는 나지만 기사를 꼼꼼하게 읽어볼 생각조차 안 든다. “OO당이 OO당 같은 짓 했네”라며 넘어가는 게 태반이다. 반면, 평소 입바른 소리 잘하고 청렴해보이던 인사의 허물이 드러나면? 평소 정치면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들까지 기사를 찾아 읽는다. “야, 그렇게 안봤는데 뒤에서 호박씨를 이렇게 깠어?” 운운. 특히 ‘위선자 프레임’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한번 위선자로 찍히면 같은 잘못을 하거나 심지어 훨씬 경미한 잘못임에도 상대적으로 더 심하게 가중처벌 되곤 한다.

‘기레기’

그런데 기사의 양 외에 기사 내용, 질(質)도 “기레기” 담론의 중요한 축이다. 확실히 일부 언론의 보도는 극히 악의적이고 저열했으며, 따라서 자체로 사태의 ‘야만성’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하지만 그런 보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국 후보에 비판적이라 할지라도, 언론별로 논리와 논조는 제각각이었다. 『한겨레』의 경우, 편집국장이 조국 사태 보도를 일방적으로 톤 다운하는 등의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나자 주니어 기자들이 국장단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까지 냈다. 지난 한달 주요 언론사의 사태 관련 보도 내용을 꼼꼼하게 분석해보면, 아마 차이는 더 명확히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딸 입시에 모든 이목이 쏠린 와중에도 법무부 장관 공약이 가진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은 언론매체들이 있었다는 점은 기억되어야 한다.

이렇게 언론사별로 보도의 내용과 톤이 달랐기 때문에 조국 사태를 두고 ‘한국언론사망’이라는 말로 싸잡아 비난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 ‘조중동’이 잘못한 건 ‘조중동’을 비난하고,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잘못한 건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비난하면 된다. 이건 일반론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일반론이 통하지 않는다. 그 기저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집단 트라우마가 놓여 있다.

이른바 친노·친문세력에게 “논두렁 시계”로 상징되는 당시의 언론보도는 노 전 대통령을 죽게 한 결정적 흉기였다. 그 점에서 소위 ‘진보언론’은 ‘조중동’과 똑같다. 아니, 어떤 면에선 ‘진보언론’이 더 나쁜 놈들이다. ‘조중동’이야 원래 기대도 안했지만 ‘진보언론’은 같은 편인 척, 진보인척 위선을 떨다 노무현 등에 칼을 꽂았기 때문이다. 이들 언론은 진보를 참칭하면서도 문재인 정부를 돕기는커녕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왔을 뿐 아니라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가장 신뢰하는 이를 또다시 물어뜯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위선자 프레임’은 여지없이 작동한다.

그러므로 조국 사태에서 ‘언론’ 문제처럼 보이는 것은 언론, 그러니까 언론학자들이 연구하는 저널리즘 이슈가 아니다. 이것은 언론 문제라기보다 정치 문제이며 구체적으로는 어떤 시대, 어떤 세대, 어떤 집단의 정치적 열망과 상처에 관한 문제다. 나는 그 진정성(authenticity)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진정성은 시대적·세대적 공통경험 속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지만, 반대로 그 공통경험 속에 편입되지 않거나 못한 사람에게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하기도 한다. 특히 중요한 포인트는, 국정농단 사태 당시 최순실 씨와 그 딸에게 분노했던 많은 대학생들이 이번 조국 사태에도 강한 반감을 드러낸 데 비해 기성세대, 그중에서도 50대 이상 진보성향 장년층은 당시와 완전히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사안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조국 후보를 최순실 씨와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어쨌든 조국 씨 딸 사례가 불공정하다는 인식은 대학생들 사이에도 상당히 널리 공유된 게 사실이다. ‘조국 퇴진’ 촛불은 최순실 씨 케이스와 비례 평가되어 지금 숫자로 나타났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적어도 대학생들은 일관되게 ‘공정성’ 침해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혹자는 대학생들이 자유한국당 등 극우세력에 선동당해 촛불시위에 나섰다고 폄하했지만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대학생의 반자한당 정서는 기성세대보다 크면 컸지 결코 작지 않다는 점을 다시 강조해둔다. 반면 진보성향 50대가 조국사태에 보인 반응은 지금 청년들 눈에 어떻게 비쳤을까. 그야말로 ‘내로남불’로 보이지 않았을까.

‘결정적 장면’

조국 사태라는 다면체는 이러한 한국사회의 세대적 분절 뿐 아니라 계급적 분절 또한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들이 셋 있었다. 감히 ‘가장 결정적인 세 장면’이라고 이름붙이고 싶다. 하나는 서울대·고려대 학생들이 조국 사퇴를 요구하며 내건 요구사항들, 다른 하나는 경북대학교 총학생회의 성명서, 마지막은 노동자단체 ‘청년 전태일’이 주최한 ‘조국 후보 딸과 나의 출발선은 같은가’ 대담회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서울대와 고려대 학생들의 요구는 ‘조국 딸에 대한 전면조사와 조국 후보 사퇴’였다. 경북대 학생들의 요구는 달랐다. “이건 조국 후보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위 공직자 전수조사하고 입시제도 전면재검토하라!” 한편 ‘청년 전태일’ 대담회서 발언한 청년들의 목소리는 이들 두 집단과도 또 달랐다. “대학을 일찌감치 포기한 채 19살 때부터 노동을 해야만 했던 우리에게는 논문이니 입시제도 같은 것조차 딴 세상 이야기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출발선에 청년들은 분노한다.”

어느 사회든 신분 피라미드 최상층부는 ‘평등’을 요구할 필요가 없는 집단이다. 이해관계는 명확히 인식하는 편이지만 특권이 숨쉬듯 자연스러우니 질투도 별로 없다. 화가 나려면 뭘 좀 알고, 자녀 교육에 적지 않은 자원을 투입해본 계층이어야 한다. 시쳇말로 조금은 “비벼볼” 구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국 사태에 가장 격렬하게 분노하는 집단은 큰 틀의 중산층-상대적 고학력자일 수밖에 없다. 피라미드의 상부와 중간층에 속한 이들은 교육을 통한 지위상승 욕망과 능력주의 성향이 가장 강하다. 자기 성취가 온전히 자기 재능과 노력 덕분이라 여기는 비율도 높기 때문에 이들은 진정으로 분노해서 조국 사퇴 시위에 나갔을 공산이 크다. 전설적 미식축구 코치 배리 스위처는 이런 사람들을 절묘하게 묘사한 적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자신이 3루타를 친 줄 안다(Some people are born on third base and go through life thinking they hit a triple.)” 반면 피라미드 최하층부는 조국 같은 사람들이 보여준 ‘합법적 세습곡예’를 별나라 얘기처럼 느낀다. 너무 아득히 떨어져 있는 귀족놀음인지라 실감도 없고, 따라서 그렇게까지 화도 나지 않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 쏟아져 나온 대한민국 청년들의 목소리임에도, 그 목소리들은 전혀 동질적이지 않았다. 같은 대학생임에도 서울대·고려대와 경북대 사이의 거리는 사뭇 멀고, 대학생과 노동자 사이의 거리는 더욱 멀었다. 바로 이 차이, 이 거리감이야말로 조국 사태에서 진정 주목해야할 대목이다. 모두의 고민과 논의가 출발해야할 지점 역시 입시제도 따위가 아니라 바로 여기, 청년들의 이토록 다른 기회의 구조여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 결정적 장면들이 진지한 사회적 논의로 연결되기 전에 86세대 특유의 정치적 기동이 먼저 튀어나왔다. 지방대 학생들과 청년 노동자를 입에 올리며 서울대·고려대 학생들을 비난하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 지방대 학생의 처지에 관심조차 없던 자들이, “공부안하면 저렇게 된다”며 노동자를 멸시하던 자들이, “세상이 바뀌었는데 아직 데모나 하는 정신 빠진 새끼들”을 욕하던 자들이 ‘학벌 기득권’과 ‘노동’과 ‘운동’을 운운하며 대학생을 준열히 꾸짖는 광경은 그로테스크하다 못해 구토를 일으킬 지경이었다. 빈곤의 비참도, 모욕당한 노동도, 사회적 불평등도 모두 그들에겐 진영논리의 도구에 불과했다.

기대 이하의 말들

조국 사태에서 가장 과소하게 언급된 문제가 바로 조국 후보 자신이 내세운 정책이다. 검찰개혁에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 부분이었고, 그래서 몇몇 전문가와 일부 언론이 문제제기도 했으나, 사실상 묻혀버린 쟁점이다.

8월 20일 발표한 정책공약집의 경우, “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사건이 국민들 일상의 안전을 위협한다”며 진한 글씨로 강조하는 등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고 있을 뿐 아니라 실효 있는 대안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항의가 잇따랐고, 전문가들 역시 심각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안전에 대한 시민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데 정신질환자를 도구로 사용한 게 아니냐는 격앙된 반응까지 나왔다.

9월 6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조국 후보의 답변이 문제가 됐다. 조국 후보는 군형법 92조의 6에 대해 “군대 내 동성애는 영내외 여부를 세부적으로 따져야 한다. 영내 동성애는 더 강하게 처벌해야 하고, 영외 동성애 처벌은 과하다”라고 답했다. 기본이 안된 답변이었다. 동성애와 동성간 성행위를 구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동성애 자체를 이성애와 차별해 낙인찍는 발언이었다. 동성애와 이성애를 구별하지 말고 영내 성행위를 처벌한다고만 답변했어도 충분했던 상황이었다.

‘그 나물에 그 밥’인 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이 아니라 진보 법학자 출신의 법무부 장관이라면 그에 걸맞은 역량과 비전을 보였어야 했다. 딸 입시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조국 후보의 정책과 발언은 소수자를 포함한 많은 시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정신질환자와 성소수자 입장에서는 실망을 넘어 환멸을 느낄만한 발언들이었다.

조국 사태의 여러 측면 중 ‘정치검찰’ 내지 ‘검찰개혁’ 이슈도 중대하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검찰의 정치개입은 도를 넘은 것이었고, 더 이상 검찰개혁을 미룰 수 없다는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검찰개혁 문제는 전문가의 글도 많기에 이 글에서 새삼 논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검찰개혁이라는 문제의식은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 당시 검찰의 행보를 향해서도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옳다는 것 정도만 밝혀두기로 한다.

당신과 나는 위에 열거한 조국 사태의 다양한 측면 중 어디를 주로 바라보고 있을까? 속된 말로는 어디에 ‘버튼’이 눌리는가, 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각자의 대답은 다를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조국이라는 이름의 다면체 어느 면에 주목하는가가 당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말해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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